[포커스] 원유 덜 돌리고도 이익 5배…中 시노펙이 보여준 '정유 호황·석화 불황'

장지현 기자 2026. 8. 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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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펙, 원유 처리량 줄었지만 정제마진 개선…화학은 적자 지속
韓 석화도 중국 공급과잉·원료 변동성에 '제자리'
LG화학 3Q 역래깅 우려·롯데 기초화학 영업이익률 0.1% 하회
사진=셔터스톡

같은 원유를 원료로 쓰는 정유와 석유화학 업종의 수익성이 엇갈리고 있다. 중동발 공급 차질로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공급이 빠듯해지면서 정유업계는 높은 정제마진을 누리는 반면, 석유화학은 원료인 나프타 가격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중국발 공급과잉 탓에 제품 가격을 충분히 올리지 못하고 있어서다.

세계 최대 정유·석유화학업체 중 하나인 중국 시노펙의 올해 상반기 실적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정유사들의 수익성이 빠르게 회복되는 가운데 범용 석유화학은 여전히 손익분기점을 오가는 모습이어서 3분기 양 업종의 실적 온도차가 더욱 벌어질지 주목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석유화공(시노펙)의 올해 상반기 정유부문 영업이익은 170억2100만위안으로 전년 동기 35억3500만위안보다 381.5% 증가했다.

이 기간 시노펙의 원유 처리량은 1억1331만톤으로 전년보다 5.6% 감소했다. 그럼에도 정제마진이 톤당 314위안에서 453위안으로 44.1% 개선되면서 정유부문 수익성이 크게 뛰었다. 시노펙의 상반기 지배주주 순이익도 256억3000만위안으로 19.3% 늘었다.

반면 화학부문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노펙 화학사업은 상반기 약 2억위안의 영업손실을 냈다. 전년 동기 42억위안 수준에서 적자 폭을 크게 줄이기는 했지만 정유부문의 가파른 수익성 개선과는 대조적이다.

에틸렌 생산량도 639만4000톤으로 전년 대비 15.5%, 합성수지는 920만5000톤으로 16.6% 감소했다. 중국 내 에틸렌 환산 소비량 역시 9.9% 줄었다.

시노펙은 약한 수요와 화학산업의 마진 축소에 대응해 설비 가동률과 원료·제품 구성을 조정하고 수출을 늘렸지만 상반기 화학사업 흑자전환에는 실패했다.
LG화학 나프타 분해시설(NCC). 사진=LG화학

정제품은 부족한데 화학제품은 넘친다

양 사업의 실적을 가른 핵심은 원유 가격 자체보다 '완제품 수급'이다.

정유사는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등을 생산한다. 통상 원유가격이 상승하면 원가 부담도 커지지만 최근에는 중동 지역 정제설비 차질과 러시아산 석유제품 공급 감소 등이 겹치면서 정제품 가격이 원유가격보다 더 강하게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원유를 비싸게 사더라도 제품을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어 정제마진이 확대되는 구조다.

실제로 시노펙은 중동 지역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비중동산 원유 조달 확대와 구매 시점 조정, 수익성이 높은 제품 위주의 생산 최적화 등을 통해 정제마진을 끌어올렸다. 중국 내 석유제품 소비가 상반기 8.6% 줄어든 상황에서도 정유사업 이익이 급증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시노펙은 상반기 중국 내 휘발유 소비가 7.9%, 경유 소비가 11.5% 감소한 것으로 집계했다.

국내 정유업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분기 연결 기준 3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전년 동기 4020억원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정유사업의 정제마진 개선이 실적 반등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혔다.

S-OIL 역시 3분기 정제마진이 여름철 이동 수요와 전력 수요, 일부 국가의 수출 제한 등에 힘입어 견조하게 유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정유사의 최근 호실적을 정제마진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국제유가가 빠르게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정유사가 저가에 들여온 원유와 제품의 장부가치가 올라가는 재고평가이익도 함께 발생하기 때문이다.

2분기 정유사의 실적에는 이 같은 재고효과가 상당 부분 반영된 만큼 3분기 실적의 질을 판단하려면 재고손익을 걷어낸 정유 본업의 마진을 따로 살펴봐야 한다.

석유화학은 상황이 정반대다.

나프타를 열분해해 에틸렌을 만들고 이를 다시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 등으로 가공하는 석유화학업체도 고유가의 영향을 받는다.

문제는 정유제품과 달리 범용 화학제품은 공급 자체가 부족하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과 중동을 중심으로 대규모 신규 설비가 가동되면서 에틸렌 등 범용제품 공급능력이 빠르게 늘었고, 경기 둔화로 수요 회복마저 더디다.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오르더라도 이를 제품가격에 그대로 전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롯데케미칼 접착성 소재(왼쪽) 및 식품 포장용기(오른쪽). 사진=롯데케미칼

LG화학 흑자도 '래깅 효과'…롯데 기초화학은 4조 매출에 이익 23억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의 2분기 성적표 역시 범용 화학사업의 업황 회복 여부는 안갯속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LG화학 석유화학부문은 2분기 매출 5조3289억원, 영업이익 4265억원을 기록했다. 비교적 견조한 실적이지만 회사는 수익성 개선의 주요 배경으로 원료가격 상승에 따른 긍정적인 재고 래깅 효과와 제품 스프레드 확대를 들었다.

래깅 효과는 과거 낮은 가격에 구입한 원료가 일정 시차를 두고 생산에 투입되는 과정에서 원료가격 상승분이 이익으로 잡히는 현상이다.

LG화학은 오히려 3분기에는 원료가격 하향세에 따른 부정적 래깅 효과와 물류비 상승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롯데케미칼은 2분기 연결 기준 110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사업별로 뜯어보면 실적의 상당 부분을 첨단소재가 책임졌다.

기초소재사업과 LC타이탄, LC USA, 롯데대산석화를 합친 기초화학부문의 매출은 3조9403억원에 달했지만 영업이익은 23억원에 그쳤다.

첨단소재부문은 매출 1조1551억원에 영업이익 1325억원을 기록했다. 롯데케미칼 역시 3분기 글로벌 수요 회복 지연과 원료가격 변동성 확대를 주요 불확실성으로 꼽았다.

업계가 정유와 석유화학의 실적을 가르는 것을 공급과 수요의 힘이라고 보는 지점이다.

정유는 원유 확보 부담이 커졌지만 글로벌 정제설비 차질로 정제품 공급이 더 빠르게 줄면서 마진을 확보하고 있다. 석유화학은 원료비 부담을 떠안는 상황에서도 중국발 공급과잉 때문에 제품가격을 충분히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한편 3분기는 이 같은 차이가 일시적인 재고효과인지, 구조적인 수익성 격차로 굳어지는지를 확인하는 분기가 될 전망이다.

정유업계에서는 중동 정제설비 정상화 시점과 국제유가, 경유·항공유 등 주요 제품의 정제마진이 핵심 변수다. 석유화학업계는 나프타와 에틸렌 간 스프레드 회복 여부와 중국 신규설비 가동률, 국내 NCC 감산 및 구조조정 속도가 관건이다.

시노펙 역시 하반기 정유사업에서는 원유 조달 최적화와 고부가 제품 생산 확대를 이어가는 한편 화학사업에서는 원가 절감과 고부가·신소재 확대, 수출시장 개척을 주요 대응책으로 제시했다.

상반기 화학제품 수출량은 전년보다 70%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중국 최대 석유화학업체마저 내수 공급과잉을 피해 해외 판매를 늘리고 있다는 점은 국내 석유화학업계에도 부담이다.

같은 원유에서 출발하는 두 산업의 희비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정유에는 세계적인 정제품 공급 부족이 방패가 되고 있지만, 석유화학은 중국발 공급과잉이라는 구조적인 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3분기 국내 정유·석화업계의 실적 격차는 '원료를 얼마나 싸게 샀느냐'보다 '만든 제품을 제값에 팔 수 있느냐'에서 결정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