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 좋다고 무조건 안 쓴다”...美 기업, 이젠 성능보다 가성비 AI 모델 택해

성능이 뛰어나 미국 정부가 한때 출시까지 막았던 앤스로픽의 첨단 인공지능(AI) 모델 ‘클로드 페이블 5’가 뚜껑을 열어보니 기업 시장에서 외면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 요금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성능 개선 효과를 기대하며 첨단 AI가 나올 때마다 앞다퉈 도입했다. 하지만 중소형 AI 모델의 성능도 빠르게 향상되면서 복잡한 작업에만 최첨단 모델을 쓰고 나머지 업무에는 저렴한 모델을 배정하는 ‘이중 전략’이 확산하고 있다. AI 시장의 경쟁 기준이 ‘최고 성능’에서 ‘가격 대비 성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성능보다 가격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기업 결제 플랫폼 ‘램프’의 자료를 인용해 페이블 5에 대한 기업 수요가 출시 두 달이 지나도록 정체됐다고 2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지난달 기업들이 페이블 5에 지출한 금액은 전체 앤스로픽 AI 모델 지출액의 11.4%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앤스로픽이 기업용 AI로 1000달러를 벌 때, 페이블 5에서 나온 돈은 114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면 7월 말 기준 페이블 5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오퍼스 4.8은 전체 중 지출 비율이 34.9%, 오퍼스 5는 19.1%였다. 기업 사용자들이 페이블 5보다 낮은 성능 AI 모델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페이블 5를 덜 택하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페이블 5는 자타공인 현재 최고 성능 AI 모델이다. 하지만 성능만큼 가격도 높다. 페이블 5의 100만 토큰당 이용료는 질문·문서 등을 넣을 때 부과되는 입력 비용이 10달러, AI가 답변을 생성할 때 부과되는 출력 비용이 50달러다. 오픈AI의 최고 성능 모델인 ‘GPT-5.6 솔(입력 5달러, 출력 30달러)’의 2배 수준이다.
문제는 기업들이 더는 최고 성능 AI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렴한 중급형·구형 AI도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향상되면서, 기업들은 비용 효율을 따지기 시작했다. 페이블 5보다 성능이 한 단계 낮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인 앤스로픽 ‘오퍼스 5′는 지난달 말 출시 직후 기업들의 페이블 5 지출액을 넘어섰다. 페이블 5보다 성능이 다소 낮지만 가격이 저렴한 GPT-5.6 솔은 오픈AI 전체 기업용 토큰 사용량의 25%를 차지했다. AI 업계 관계자는 “문서를 요약하거나 자료를 정리하는 일상적인 업무에는 첨단 모델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며 “이제 AI를 사용하는 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 성능이 아니라, 필요한 성능을 얼마나 낮은 가격에 확보하느냐”라고 했다.
◇중국 AI 입지 커진다
이런 흐름에 따라 AI 기업들은 소비자 선택을 받기 위해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오픈AI는 지난달 GPT-5.6 루나(경량형)의 가격을 80%, 테라(중급형) 가격을 20% 인하했다. 이달에는 최고 성능 모델인 GPT-5.6 솔 이용 가격을 11월 21일까지 기존보다 20~33% 내렸다.
중국 딥시크 역시 주말과 평일 비혼잡 시간에는 최고급 모델인 V4 프로를 절반 가격에 제공한다. 앤스로픽은 중급형 모델 소네트 5의 가격을 9월부터 50% 인상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테크 업계에선 이 같은 ‘AI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경쟁 흐름이 중국 개방형(오픈웨이트) AI의 입지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문샷AI의 키미 K3와 즈푸AI의 GLM-5.3은 앤스로픽과 오픈AI 최고급 모델 성능을 턱밑까지 추격했지만 가격은 3배 이상 저렴하다.

중국 모델들은 이러한 ‘가성비’를 바탕으로 세계 AI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AI 모델 중개 플랫폼 오픈라우터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모델의 토큰 사용 비율은 60%를 넘어섰다. 지난해 초만 해도 10%에 못 미쳤지만,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미국 모델을 추월한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팟캐스트에서 “기업들이 최첨단 AI에 쓰는 비용을 줄이려 한다”며 “상당수는 더 저렴한 중국 오픈소스 모델로 전환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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