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서리꽃' 마지막 장편…자본주의 험악해도 사랑은 못 막죠"(종합)

김기훈 2026. 8. 2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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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이제 사랑 이야기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나이는 자꾸 들어가고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고, 인생을 마무리해 나가면서 '독자들이 원했던 사랑 이야기를 쓰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조정래는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역사와 사회 문제에 대한 소설만 쓰고 사랑과 연애 소설은 왜 쓰지 않느냐는 독자들의 질문과 요청이 많았다며 '서리꽃'을 쓰게 된 배경을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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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신작 출간…등단 56년 만에 사랑 주제로 한 첫 작품
"사랑은 삶을 존속시키는 희망"…"AI 영리해도 예술은 인간 영역"
"글 쓰다 책상에 엎드려 죽는 게 마지막 소원…단편 쓰고 싶어"
조정래 작가 신작 출간기념 기자간담회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태백산맥' '아리랑'의 조정래 작가가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신작 장편소설 '서리꽃' 출간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6.8.24 cityboy@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어느 날 '이제 사랑 이야기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나이는 자꾸 들어가고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고, 인생을 마무리해 나가면서 '독자들이 원했던 사랑 이야기를 쓰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이른바 '대한민국 근현대 3부작'으로 불리는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으로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소설가 조정래(83)가 3년 만에 신작 장편 소설 '서리꽃'(해냄 펴냄·전 2권)으로 돌아왔다.

조정래는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역사와 사회 문제에 대한 소설만 쓰고 사랑과 연애 소설은 왜 쓰지 않느냐는 독자들의 질문과 요청이 많았다며 '서리꽃'을 쓰게 된 배경을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후배 소설가 김훈과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도 소개했다.

"김훈씨가 말하기를 '태백산맥'에서 소화와 정하섭의 부분을 쏙 빼내서 보면 '춘향전'을 능가하는 사랑 이야기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태백산맥'에서 소화와 정하섭은 이념의 대립 속에서도 사랑과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연인이기 때문이다.

조정래는 197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신작을 포함하면 그간 발표한 작품만 68권에 달하지만, 사랑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생 거대한 역사의 굴곡과 사회의 모순을 소설로 기록해온 작가는 신작에서 인간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감정을 파헤치며 이 시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묻는다.

조정래 작가 신작 출간기념 기자간담회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태백산맥' '아리랑'의 조정래 작가가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신작 장편소설 '서리꽃'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8.24 cityboy@yna.co.kr

조정래는 "슬픈 사랑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면서도 이번 작품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슬픈 사랑 이야기가 현실과 밀착된 사회적 문제와 깊이 연관돼있다는 것을 주제로 설정했다"며 천민자본주의의 무한한 탐욕과 이로 인해 벌어지는 비인간적 행위로 인해 건강한 시민의 삶이 몰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이런 현실에서 사랑이 파괴되고 인간이 어떻게 사랑을 재창조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풀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서리꽃'은 한 편의 시와 그림으로 시작된 사랑이 고난의 세월을 거쳐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담아낸 작품이다.

대학 시절 시 동아리 '글밭'에서 활동하던 이재이와 미대생 윤소인은 시화전을 계기로 서로에게 끌린다.

이재이의 시에 매료된 윤소인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변용해 시화를 그리고, 두 사람의 예술적 교감에서 사랑이 싹튼다.

하지만 이재이는 사업가인 아버지에게 등 떠밀려 미국 유학을 떠나고, 5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다.

그렇게 다시 만난 윤소인은 부친의 사업 실패로 과거의 밝고 아름다운 모습을 잃고 피폐하고 병든 상태. 이재이는 그런 윤소인을 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녀를 다시 살게 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돈과 권력을 중시하는 아버지의 세계에 편입되는 대신, 형인 이재균과 은밀한 계약을 맺어 윤소인의 빚을 해결하고 치료와 요양을 위한 자금을 마련한다.

이처럼 '서리꽃'은 이별 끝에 다시 만난 두 남녀가 천민자본주의와 가부장주의 사회·경제적 모순을 견디며 사랑을 완성해가는 이야기다.

조정래 작가 신작 출간기념 기자간담회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태백산맥' '아리랑'의 조정래 작가가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신작 장편소설 '서리꽃' 출간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6.8.24 cityboy@yna.co.kr

'서리꽃'이 혹시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았는지 묻자 조정래는 "저는 스물다섯 살에 결혼한 김초혜 이외의 다른 여자를 알지 못한다(웃음)"며 "이 소설은 완전히 픽션"이라고 답해 좌중을 웃음 짓게 했다.

'서리꽃'에는 아내 김초혜(83) 시인이 쓴 시 두 편이 인용됐다.

조정래는 남편의 소설에 자기 시가 인용되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아내가 만류했다면서도 주제와 잘 맞아서 인용했을 뿐, 누구의 어떤 시인지는 작품 속에서 밝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조정래와 김초혜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만나 1967년 1월에 결혼했다. 동갑내기 부부인 두 사람은 내년에 회혼(결혼 60주년)을 맞는다.

조정래는 "사랑은 인간이 삶을 존속해 나가는 데 희망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랑의 가치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인간이 세끼 밥을 먹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사랑을 창조하게 돼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아무리 험악해도 사랑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사랑의 영원성에 대한 확신이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주제가 되겠죠."

아울러 그는 인공지능(AI) 시대 소설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는 "상상력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AI가 아무리 영리해도 따라올 수 없다"며 "소설과 음악 그리고 모든 예술 분야는 인간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조정래는 또 '서리꽃'이 장편 소설로는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저 스스로가 소설 앞에서 겸손해지고 싶고 제 몸에 대한 자유를 조금은 허락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100m 달리기 식으로 마치 투쟁하듯이 써왔기에 앞으로는 제 인생도 좀 쉬엄쉬엄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장편 소설을 길게 50년 쓰다 보니 단편을 쓰는 데 많이 소홀해졌다"며 "단편의 세계를 다시 살려내 단편을 쓰고 수상록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조정래는 또 '작가의 말'에서 지난해 9월 복부대동맥 수술을 받으며 죽음의 문턱을 넘긴 사실을 전하며,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 "글을 쓰다가 책상에 엎드려 죽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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