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덩이 같은 마당에 쓰러진 92세 노인… 그를 살린 전화 한 통의 기적

박경담 2026. 8. 2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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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째 이어진 열대야 탓에 제주 전역이 지쳐 있던 지난달 12일.

정씨는 어머니 같은 노인이 걱정돼 근무 시간을 초과해 평일 내내 그의 집에 가 생활을 살펴왔다.

경북 경주시 재가노인통합지원센터 소속 생활지원사 임옥경(61)씨도 지난달 28일을 잊지 못한다.

올여름 정씨, 임씨 같은 생활지원사 3만6,000명이 전국 55만 명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확인한 안부는 지난 19일 기준 959만 건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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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지원사, 폭염 노출 노인에 안부 확인
불구덩이 같은 마당에 쓰러져 있던 90대
긴급 방문·응급 조치로 병원 이송해 회복
7월 12일 제주 서귀포시 남성마을에 거주하는 92세 어르신이 온열질환으로 집 마당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각색했다. 제주사회서비스원 서귀포시센터 소속 정금숙 생활지원사는 재빠른 응급 조치로 이 어르신을 살릴 수 있었다. 제미나이 제작

닷새째 이어진 열대야 탓에 제주 전역이 지쳐 있던 지난달 12일. 수화기를 붙든 생활지원사 정금숙(64)씨의 표정은 초조했다. 제주사회서비스원 서귀포시센터에서 일하는 그는 지역에 홀로 사는 노인의 일상 생활과 안전을 챙긴다. 정씨는 일요일이었던 그날 경북 포항과 경산에 사상 첫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졌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자신이 맡은 12명의 노인 중 고위험군 3명에게 전화해 안부를 확인하던 참이었다. 이때 문제가 생겼다. 남성마을에 사는 92세 노인이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다. 불길한 느낌이 떠나질 않았다. 딸의 차를 얻어 타고 노인의 집으로 급히 향했다.

10분 남짓 이동하는 동안 정씨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오랜 농사일로 허리가 굽어 서지 못해 기어서 생활해왔다. 집 마당 앞 텃밭은 몇 해 전부터 텅 비어있으나 종종 기어가 잡초를 뽑곤 했다. 최근 들어 집에 있는 노인 전용 가스레인지 잠금장치를 풀지 못하거나 쌀을 안치고도 전기밥솥 코드를 꽂는 일을 까먹는 등 부쩍 인지 기능이 떨어졌다. 정씨는 어머니 같은 노인이 걱정돼 근무 시간을 초과해 평일 내내 그의 집에 가 생활을 살펴왔다.

비좁은 골목 어귀에 있던 노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 믿고 싶지 않은 상황이 정씨의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아침부터 뜨겁게 데워진 시멘트 마당에 쓰러져 있었다. "마당이 마치 불구덩이 같았어요." 정씨는 당시를 떠올렸다. 다행히 의식은 있었으나 정씨 홀로 집 안으로 옮기기엔 버거웠다. 급히 마당 수돗가에서 적신 수건으로 노인의 온몸을 닦아 체온을 낮추고 물을 조금씩 마시게 했다. 젊었을 적 자격을 딴 요양보호사 교육 때 응급상황에선 온열질환자 몸을 식히는 게 급선무라고 배운 것이 떠올랐다.


"10분만 늦었어도 큰일"

경주시재가노인통합지원센터 소속 임옥경 생활지원사가 7월 28일 병원에 모셔가 진료받는 80대 온열질환 환자. 경주시재가노인통합지원센터 제공

정씨가 119 구급대, 가족, 센터 팀장에게 재빠르게 연락을 취하는 사이 노인은 정신이 돌아왔다. 이날도 기어서 텃밭에 가려다가 탈이 난 것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119 구급대원은 "10분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는데 응급조치를 너무 잘했다"고 칭찬했다. 정씨는 노인의 가족과 함께 병원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저녁에 어르신 따님이 너무 고맙다고 연락이 왔다"며 "팀장님이 한 생명 살렸다고 했는데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올해 역대급 폭염 속에서 생명을 살린 생활지원사는 정씨 외에 또 있었다. 경북 경주시 재가노인통합지원센터 소속 생활지원사 임옥경(61)씨도 지난달 28일을 잊지 못한다. 이날 찾은 80대 어르신 안색은 평소와 달랐다. 40도에 가까운 무더위가 경북 지방을 휩쓸고 있던 터라 자세히 물어보니 어르신은 밤새 뒤척이고 구토까지 했다. 임씨는 온열질환을 의심하고 어르신을 자신의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갔다. 그는 어르신이 기력을 되찾도록 수액주사를 맞는 동안 기다렸다가 다시 집에 모셔왔다. 점심도 거른 채였지만 임씨는 고맙다는 어르신 인사에 뿌듯했다.

폭염이 이어지며 온열질환자 발생도 늘어나고 있는 7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수원소방서 정자119안전센터에서 문연호 소방장과 김승태 소방사가 얼음조끼와 아이스팩 등 폭염 관련 물품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여름 정씨, 임씨 같은 생활지원사 3만6,000명이 전국 55만 명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확인한 안부는 지난 19일 기준 959만 건으로 집계됐다. 생활지원사의 안부 전화·방문이 더위에 가장 취약한 연령대인 노인의 건강을 지키는 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한 분 한 분 안부를 살핀 생활지원사 헌신 덕분에 많은 독거노인이 여름을 안전하게 넘길 수 있었다"며 "생활지원사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처우 개선 등 지원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종= 박경담 기자 wa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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