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기후리포트] 땅속이 끓고 있다...폭염이 내려간 도시의 지하
지표의 여름은 석 달 뒤 땅속에 도착한다
지하철·건물 폐열 겹쳐 장기 축적
지하수·지반까지 바꾸는 도시의 보이지 않는 기후
폭염은 아직 땅 밑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지상은 여전히 뜨겁다. 기상청 서울관측소의 23일 최고기온은 33.1℃였다. 24일 오전 현재 최저기온은 25.7℃다. 지하 5m는 하루 단위의 폭염에 즉각 반응하지 않는다. 깊어질수록 계절에 따른 온도 변화 폭이 줄고 최고·최저온도가 나타나는 시점도 늦어진다.
근거는 53년에 걸친 기상청 관측이다. 강릉원주대 이지훈·윤찬영 연구진은 서울·대전·부산·강릉·춘천의 1970~2022년 자료를 이용해 지표와 지하 0.5m, 1m, 1.5m, 3m, 5m 온도를 분석했다. 서울 지하 5m의 53년 평균온도는 15.06℃였다. 대전 15.41℃, 부산 16.55℃, 강릉 14.42℃, 춘천 16.05℃였다. 서울 지표가 조사기간 -12.6~40.1℃까지 움직이는 동안 지하 5m는 10.0~20.5℃에 머물렀다. 부산도 지표는 -7.2~40.1℃였지만 지하 5m는 13.2~21.0℃였다. 깊어질수록 계절의 온도 진폭이 크게 줄었다.
계절 변화는 줄었지만 장기적인 가열화(온난화)는 땅속까지 이어졌다. 서울 지하 5m의 온도 상승률은 10년당 0.268℃였다. 대전 0.372℃, 강릉 0.263℃, 부산 0.204℃였다. 춘천은 0.045℃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춘천을 제외한 4개 도시는 지하 5m에서도 10년당 0.20~0.37℃의 상승률을 보였다. 서울은 지표 상승률 0.279℃와 지하 5m의 0.268℃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시간차도 뚜렷했다. 대도시에서 최저온도는 지표의 1월 17일에서 지하 5m의 5월 13일로 117일 늦어졌다. 강릉·춘천은 124일 지연됐다. 최고온도는 각각 93일과 97일 늦었다. 지상의 여름 신호가 지하 5m에 도달하는 데 석 달가량, 겨울 신호는 넉 달 가까이 걸리는 셈이다.
도시 지하를 데우는 열원은 지표에만 있지 않다. 건물 지하층과 지하주차장, 지하철과 각종 지하시설도 열을 주변 지반으로 방출한다. 최근 연구들은 건물 지하공간과 교통시설, 설비와 기반시설에서 나오는 폐열을 지하 도시열섬의 주요 인공 열원으로 지목한다. 지표에서 내려오는 열과 도시 내부에서 발생하는 폐열이 함께 지하의 열환경을 바꾸고 있다.
지표의 열과 도시가 만든 열이 만난다
자연 지반의 열환경은 지표 온도에 좌우된다. 도시는 다르다. 지하에서도 열이 발생한다. 지하철의 제동과 운행, 조명과 공조설비가 열을 낸다. 건물 지하층과 주차장도 주변 지반을 데운다. 냉방 과정에서 옮겨진 열도 일부가 지하공간과 지반으로 방출된다.
2026년 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은 미국 61개 도시·교외 지역의 지중온도를 분석했다. 지하철 운행과 제동, 조명·공조설비, 지하건축물의 인공열이 주요 열원으로 지목됐다. 조사 지점의 지중온도는 최고 69.4℃, 온도 이상 증가율은 연간 최대 2.21℃였다. 도시 지하의 열이 지표 온난화와 겹쳐 형성된 결과였다. 땅속에서는 열 확산이 느리게 진행돼 거대한 축열층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 규모는 지역마다 크게 달랐다. 알레산드로 로타 로리아 노스웨스턴대 교수 연구진은 2026년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에 미국 지하 도시열섬을 처음으로 종합 분석했다. 논문·기술보고서·공개자료·현장측정을 모아 미국 61개 지역의 지중온도를 검토했다. 보스턴의 한 지점에서는 최고 69.4℃가 측정됐다. 다른 지점에서는 온도 이상 증가율이 연간 최대 2.21℃에 달했다. 연구진은 두 수치 모두 일반적인 도시 지하를 대표하지 않는 국지적 극값이라고 명시했다.
핵심은 극값보다 온도의 불균일성에 있다. 미국과 유럽의 기존 연구에서 도시의 평균 지중온도는 주변지역보다 1℃에서 4℃ 이상 높았다. 장기 상승률도 10년당 0.5℃에서 2℃ 이상까지 차이가 났다. 열원의 종류와 지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깊이라고 같은 온도가 아니다. 지하철 터널과 지하주차장 주변, 공원 아래의 지반은 서로 다른 열환경을 가진다. 지상의 도시열섬이 평면에 나타난다면 지하는 깊이와 열원, 구조물이 얽힌 '3차원 열지형'에 가깝다.
땅은 열을 기억하고 지하수는 옮긴다
짧은 폭염의 열 신호는 깊어질수록 빠르게 약해진다. 하지만 수십 년간 이어진 온난화는 더 깊이 스며든다. 달하우지대 서스앤 벤츠 연구진은 2024년 『Nature Geoscience』에서 전 세계 지하 100m까지 온도 변화를 계산했다. 2000~2100년 지하수면의 세계 평균 수온은 SSP2-4.5에서 2.1℃, SSP5-8.5에서 3.5℃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장기 온난화 신호가 나타나는 지온 역전 깊이도 2100년 평균 45m와 60m까지 내려갔다. 연구진은 도시처럼 지표가 더 뜨겁거나 지하수가 아래로 많이 스며드는 곳에서는 지상의 열이 땅속으로 더 많이 전달돼 지하수 온도가 더 크게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카고에서 땅이 움직인 이유
흙과 암반은 온도에 따라 팽창하거나 수축한다. 노스웨스턴대 알레산드로 로타 로리아 교수는 2019년부터 시카고 루프의 지하철과 건물 지하층, 주차장 등에 150개가 넘는 온도센서를 설치했다. 루프 지하는 그랜트파크보다 10℃나 높은 곳도 있었고 지하구조물의 공기는 교란되지 않은 지반보다 최대 25℃ 높았다. 이 자료를 토대로 1951~2051년 지반 변화를 계산했다.
2023년 『Communications Engineering』에 발표된 모델에서 연약·단단한 점토는 열을 받으면 수축하고 경질 점토와 모래, 석회암은 팽창했다. 국지적 융기는 12㎜, 침하는 8㎜를 넘었다. 건물 아래에서는 수㎜의 차등변위도 나타났다. 작은 움직임이지만 기초와 벽, 슬래브에는 변형과 기울어짐을 일으킬 수 있는 규모다. 연구의 초점도 붕괴보다 장기간 누적되는 구조물의 성능 저하에 맞춰졌다.
국내 지반에서도 열에 따른 변화가 확인됐다. 전남대·국립목포해양대 연구진은 2025년 광주 도시철도 공사현장의 화강풍화토를 20·40·60℃에서 시험했다. 건조한 흙은 변화가 작았지만 물로 포화된 흙은 온도가 오를수록 전단강도와 체적 팽창, 내부마찰각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세립분 25% 시료의 내부마찰각은 20℃에서 37.0도, 60℃에서 39.0도로 높아졌다. 토질과 지하수, 지하시설이 도시마다 다르다. 국내 도시 지하의 영향을 판단하려면 온도와 지반 변위를 같은 지점에서 장기간 함께 측정하는 자료가 필요하다.
서울 송월동 지하 5m, 10년당 0.268℃ 상승…한 점으로는 열지도를 못 그린다
우리나라도 땅속 온도를 재고 있다. 기상청은 지하 0.5·1·1.5·3·5m 지중온도를 관측하고 국가지하수관측망은 수온을 측정한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상·하수도와 전력, 가스, 지하철, 터널, 시추·관정·지질 등 지하정보 16종을 3차원으로 구축한다. 그러나 온도는 이 지도에 포함되지 않는다. 시설의 위치는 보여도 주변 지반이 얼마나 뜨거운지는 알 수 없다.
서울의 장기 지중온도 자료도 공간적으로는 한 점이다. 강릉원주대 연구진이 분석한 1970~2022년 자료 8만9,483건은 종로구 송월길 52 서울기상관측소에서 측정됐다. 1991~1994년 지하 0.5~5m 자료는 빠졌다. 이 지점의 지하 5m 온도는 10년당 0.268℃ 상승했다. 53년의 변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지만 서울 전역의 상승률로 볼 수는 없다.
더 깊은 곳에서도 온난화 흔적은 확인됐다. 다니구치 연구진은 2007년 서울 15개 시추공의 온도를 분석했다. 깊이는 498~968m였다. 평균 온도곡선에서 추정한 지표 온난화 규모는 약 2.5℃였고 열의 교란은 약 50m 깊이까지 나타났다. 도쿄는 140m, 오사카는 80m, 방콕은 50m였다. 2.5℃는 실제 기온 상승값이 아니다. 시추공에 남은 열 흔적으로 역산한 값이다. 지하수 흐름도 개별 시추공의 온도를 바꿀 수 있다.
두 연구는 서로 다른 단면을 봤다. 송월동은 한 지점을 53년간 추적했다. 시추공 연구는 서울 15곳을 수백m 깊이까지 들여다봤지만 상시 관측은 아니었다. 서울에는 긴 시간의 한 점과 깊은 곳의 15개 점이 있다. 그 사이를 촘촘하게 연결한 도시 지하의 열지도는 비어 있다.
바젤은 온도가 아니라 열의 이동을 추적한다
스위스 바젤은 지하의 온도뿐 아니라 열이 어디서 생겨 어디로 이동하는지 추적한다. 바젤대 연구진은 2025년 『Philosophical Transactions A』에 10년 넘게 축적한 지하수 열 관측 결과를 발표했다. 7개 관측지점에는 깊이별로 8~16개의 센서를 0.5~1m 간격으로 설치했다. 한 지점의 온도 하나가 아니라 지하수층을 따라 달라지는 수직 온도분포를 연속 측정했다.
도심 지하수에서는 최고 20℃ 안팎의 열점이 확인됐다. 바젤의 자연적인 지하수 온도는 10~11℃로 평가했다. 과거 연구에서는 도심 지하수가 자연 상태보다 최대 9℃ 높은 곳도 나타났다. 연구진은 여기에 지하수 수위와 라인강 수온·수위, 지하수 이용량을 결합해 4개 지하수체의 3차원 열·수리모델을 구축했다. 6년 자료로 모델을 보정하고 5년 자료로 검증했다. 일부 지역의 연평균 지하수 온도는 2010년 14.3℃에서 2021년 14.9℃로 상승했다. 국지적으로는 연간 0.25℃까지 오르는 곳도 있었다.
핵심은 온도계 숫자가 아니다. 깊이별 온도와 지하수 흐름을 함께 재야 지표에서 내려온 열과 건물·하수도·터널에서 나온 열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구분할 수 있다. 서울도 송월동의 53년 장기기록과 수백m 시추공 자료는 있다. 비어 있는 것은 그 사이의 공간이다. 여러 지점과 깊이에서 온도와 지하수 흐름을 동시에 측정하고 지하시설과 결합해야 서울 지하의 3차원 열지도를 그릴 수 있다.
여름은 지하에서 늦게 끝난다
지상의 폭염은 빠르게 드러난다. 기온이 35℃를 넘으면 경보가 울리고 달궈진 도로와 건물이 열화상카메라에 잡힌다. 비가 오고 밤 기온이 내려가면 여름의 열도 물러난 것처럼 보인다. 땅속 시계는 다르게 간다.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에서 지표의 최고온도는 지하 5m에 평균 93일 뒤 도착했다. 53년 장기관측에서는 5m의 평균온도 자체가 10년마다 0.268℃씩 높아졌다. 더 깊은 시추공에는 수십m 아래까지 지표 온난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하수는 그 열을 옮기고 토양과 암반은 온도 변화에 반응한다. 시카고에서는 그 반응이 수㎜의 지반 변위로 계산됐다.
도시는 지금까지 더위를 주로 지표에서 관리해 왔다. 폭염특보와 냉방, 그늘과 녹지, 도로와 건물의 표면온도가 정책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열에는 지하로 내려간 뒤의 시간이 있다. 지하철과 건물에서 새로 더해지는 열도 있다. 지상에서 하루의 폭염이 끝난 뒤에도 땅속에서는 수개월, 수십 년의 열이 겹쳐진다.
가장 큰 위험은 지하가 당장 몇 도 더 뜨겁다는 사실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오랫동안 열이 쌓이고, 어디로 이동하며, 지하수와 지반과 구조물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모른 채 도시를 운영하는 데 있다. 서울은 지상에 촘촘한 기상지도를 갖고 있다. 지하에는 수많은 터널과 배관, 건물과 관정이 있다. 이제 그 사이에 온도를 넣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열을 측정하지 않으면 변화가 위험이 되는 경계도 알 수 없다. 지상에서 끝난 여름은 땅속에서 계속 이동한다. 21세기 도시의 기후지도는 하늘에서 끝날 수 없다. 도시가 관리해야 할 다음 기후는 이미 발밑에 들어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