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정맥류 진료기준, 환자 증상 반영해야”
“과잉진료 막되 치료 필요한 환자 배제하는 과소진료도 문제”
[의학신문·일간보사=김현기 기자] 대한정맥통증학회가 기존 대한정맥학회의 진단·치료 기준에 대한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과잉진료도 문제지만 환자가 배제되는 과소진료도 문제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혈관의 육안적 돌출이나 직경, 역류시간 등 정형화된 수치만으로 치료 필요성을 판단할 경우 실제 정맥부전으로 통증을 겪는 환자가 치료에서 배제될 수 있는 만큼, 환자의 임상 증상과 초음파 검사, 혈관 맵핑 등을 종합한 새로운 진료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우선 노 회장은 정맥질환과 통증의 연관성이 그동안 의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말초의 미세한 정맥 혈류를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초음파 기술에 한계가 있었던 데다 혈관질환과 근골격계 통증을 서로 다른 전문영역에서 다뤄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정맥부전에서 비롯된 발바닥 통증이나 저림, 시림, 열감 등이 족저근막염이나 지간신경종을 비롯한 신경·근골격계 질환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노 회장의 주장이다.
노 회장은 "정맥성 통증은 기존 신경근골격계 질환에서 설명하지 못했던 영역을 채울 수 있는 분야"라며 "학회 창립 당시 별다른 홍보 없이도 303명이 사전등록했고, 이 가운데 99명이 정형외과 의사였다는 점은 통증을 진료하는 의료진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날 노 회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하지정맥류 비급여 진료비 격차에 대해서도 문제를 인정했다.
노 회장에 따르면 하지정맥류 치료는 병변의 위치와 범위에 따라 치료법이 크게 달라진다. 대복재정맥이나 소복재정맥 등 주요 혈관의 역류에는 레이저·고주파·의료용 접착제 등을 이용한 폐쇄술이 필요할 수 있지만, 작은 가지정맥이나 표재정맥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낮은 혈관경화요법만으로 치료할 수 있다.
또 주요 정맥을 폐쇄한 뒤 통증을 유발하는 미세 가지정맥을 초음파로 맵핑해 수개월에 걸쳐 추가 경화치료까지 시행하는 의료기관이 있는 반면 주요 혈관 시술만 시행하는 곳도 있어 치료 과정과 범위에 따라 총 진료비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일부 의료기관에서 실제 치료 필요성을 넘어 다수 혈관에 고가 시술을 적용하는 행태에 대해서는 학회 역시 명확한 과잉진료라고 선을 그었다.
노 회장은 "한 환자에서 치료가 필요한 주요 정맥은 통상 1~2개 정도이고 하트웰의원의 경우 평균 1.9개 수준"이라며 "그럼에도 3~4개 혈관을 일률적으로 고가 시술해 진료비가 1000만~1700만원까지 올라가는 사례가 있다면 과잉진료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환자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반드시 필요한 주요 혈관에 시술하고 나머지는 경화요법으로 치료하는 방식도 가능하다"며 "단순히 진료비가 높고 낮은지를 따지기보다 실제 환자에게 필요한 범위의 치료가 이뤄졌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과잉진료 막겠다고 치료 문턱 높여선 안 돼
정맥통증학회가 더욱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은 과잉진료를 억제하는 과정에서 반대로 치료가 필요한 환자까지 배제될 가능성이다. 기존 하지정맥류 진료에서 '육안상 3mm 이상 돌출된 혈관'이나 초음파 검사에서 확인되는 '0.5초 이상의 역류' 등 정량적 기준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CEAP 분류처럼 외형적인 임상 양상을 중심으로 환자를 구분하는 기준을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잣대로 활용할 경우 겉으로 혈관이 돌출되지 않았지만 실제 정맥부전으로 통증을 겪는 환자를 놓칠 수 있다는 것.
노 회장은 "실제 진료에서는 겉으로 혈관이 튀어나오지 않고 역류가 수치상 경미해 보여도 심한 통증이나 보행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있다"며 "이런 환자까지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해 치료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과소진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맥통증학회는 기존 대한정맥학회의 하지정맥류 진단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특히 가이드라인 제정 배경에서 하지정맥류 치료 증가에 따른 비용 문제가 강조된 점을 두고 의료비나 실손보험 지출을 줄이는 논리가 환자의 치료 필요성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다.
노 회장은 "임상 진료지침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환자의 안전과 적절한 치료에 있어야 한다"며 "보험사의 지급 기준이나 비용 문제가 의료계의 진료기준을 좌우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정맥학회와 갈등 끝내고 새 기준 만들어야
다만 정맥통증학회는 이번 문제 제기가 기존 대한정맥학회와의 갈등을 확대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오히려 과잉진료와 과소진료라는 양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두 학회가 공동으로 새로운 임상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정맥통증학회가 제시하는 방향은 혈관 직경이나 역류시간 등 객관적인 초음파 지표를 기본적으로 활용하되 이를 절대적인 치료 기준으로 삼지 않고, 환자가 실제 호소하는 증상과 통증 양상, 혈관의 위치와 혈류 변화, 정밀 초음파 맵핑 결과 등을 종합해 치료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노 회장은 "불필요한 고가 시술을 남발하는 과잉진료는 당연히 바로잡아야 한다"며 "그러나 이를 막겠다는 이유로 실제 정맥질환 때문에 통증을 겪는 환자의 치료 기회까지 제한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정맥학회가 국내 정맥질환 연구와 진료 발전에 기여해 온 만큼 이제는 어느 학회의 영역인지를 놓고 다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임상적 근거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며 "환자의 진료받을 권리와 의사의 정당한 진료권을 함께 보호할 수 있는 합리적인 진료지침을 만드는 데 양 학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