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유리 목마'… 구글 AI의 대중문화 침투, 예술은 어디로 가는가
AI 시대, 예술의 가치와 창작자의 역할은
2026년 8월, 구글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제미나이(Gemini)와 대중예술을 선도하는 세계적인 슈퍼스타 방탄소년단(BTS)의 협업 소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구글은 라스베이거스의 랜드마크 스피어(Sphere)의 초대형 LED 외벽 엑소스피어(Exosphere)에 제미나이와 BTS의 협업을 예고하는 미디어 아트 형태의 영상을 상영했습니다. 압도적 스케일의 곡면 디스플레이 위로 제미나이와 BTS의 로고,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 BTS 정규 5집 《ARIRANG》의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경복궁의 야경이 순차적으로 펼쳐졌습니다.
며칠 뒤에는 ‘모든 여정은 질문에서 시작된다(Every journey starts with a question)’라는 글귀와 함께 BTS 멤버들이 등장하는 영상이 구글 제미나이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올라왔습니다. 영상은 리더 RM의 목소리로 바로 이 문장을 읊으며 포문을 엽니다. 이어 멤버들은 "지금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뭐지?", "언어가 달라도 진심이 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직접 말로 전해야만 닿는 마음도 있을까?", "무대 밖에서의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지?"와 같이 정체성과 예술, 창작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집니다. AI가 모든 답을 내놓는 전능한 도구가 아니라, 창작과 변화의 진짜 출발점은 언제나 인간이 던지는 고민과 질문에 있음을 BTS의 목소리가 담긴 서사로 영상화한 것입니다. 구글은 공식 발표를 통해 이 캠페인의 취지를 ‘제미나이의 AI 기술’과 ‘방탄소년단의 창의성’을 결합해 기술과 예술이 함께 만들어낼 새로운 미래 경험을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설명했습니다.

대중예술과 스타 마케팅에 주력한 구글의 AI 마케팅 전략
구글과 BTS가 AI를 계기로 첫 번째 협업을 시도한 도시는 지난 6월 부산이었습니다. 도시형 복합 문화 프로젝트 'BTS 더 시티 아리랑 부산(BTS THE CITY ARIRANG BUSAN)'에 AI 컴패니언으로 제미나이와 BTS가 함께한 것입니다. 제미나이는 글로벌 팬덤 플랫폼 위버스(Weverse) 안의 'BTS 더 시티 아리랑 부산' 스탬프 투어 페이지에 연동되어, 이용자들이 코스 곳곳에서 제미나이와 한국의 전통·문화를 주제로 대화하며 미션에 참여하고 디지털 스탬프를 모을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부산역, 해운대 등 도시의 주요 거점에는 팬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오프라인 체험 공간도 조성되었습니다. 현장 QR코드로 실행하는 '제미나이 라이브'는 음식이나 관광지를 사진으로 찍어 물으면 그 유래와 즐기는 방식을 대화 형태로 안내했고, 부산역 키오스크는 간단한 질문을 통해 관람객 취향에 맞는 여행 코스를 추천하여 영수증 형태로 출력해 주는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그렇다면 구글은 왜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는 걸까요? 추측건대 그 주요 이유 중 하나는 AI 기술 경쟁이 급격히 치열해지는 가운데, 구글이 기술적 스펙 경쟁을 넘어 대중문화와의 접점을 확장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통해 제미나이의 브랜드 인지도를 넓히고 이용자 확보를 시도하려는 것이지요. AI를 추상적인 알고리즘이나 차가운 기술로 설명하기보다, 대중적 파급력이 높은 아티스트의 스타 파워와 결합하면 이용자들에게 한층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구글이 K팝 아이돌 르세라핌, 올데이 프로젝트, 배우 변우석 등을 앞세워 제미나이의 브랜드 인지도를 넓히려 했던 행보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보입니다.


환호와 반발 사이
글로벌 팬덤 사이에서는 기술과의 결합을 환영하는 시선과 동시에 거센 반발이 터져 나왔습니다. 스피어 영상이 공개된 직후 엑스(X, 옛 트위터) 등 SNS에서는 팬들을 중심으로 '#ARMYAgainstAI'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확산했습니다. 이들은 생성형 AI가 유발하는 막대한 전력 소비 등 환경적 영향과 딥페이크 등의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는 한편, BTS가 쌓아온 음악적 진정성과 노고가 단지 AI의 상업적 마케팅에 소비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했습니다. AI가 직접 만든 생성물을 전시한 것이 아니라 단지 협업을 알리는 영상이었음에도, 팬덤 내부에서는 AI라는 기술 그 자체에 대한 즉각적이고 날 선 거부 반응이 나타난 것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AI는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현실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K-팝 아이돌 뮤직비디오의 VFX(시각특수효과, Visual Effects) 영역에서는 레퍼런스 탐색과 스토리보드 기획 같은 사전 단계부터 최종 후반 작업에 이르기까지 AI가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몇 줄의 프롬프트로 완성작을 뚝딱 만들어내는, 이른바 'AI 딸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티스트들은 AI 기술을 활용하되 여전히 수없이 많은 시간을 투여해 프레임 단위의 수정을 반복하며 비로소 완성도를 구축해 나갑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고는 AI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에 가려지곤 합니다. 실제로 일부 글로벌 팬덤은 AI 도구가 쓰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작업에 참여한 창작자들을 아티스트가 아니라 프롬프터라 낮춰 부르며 비난합니다. 물론 이러한 반발에 아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AI가 창작을 전담하거나 몇 번의 입력만으로 나온 결과물로 인간의 예술과 노동을 대체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그에 대한 비판은 정당합니다. AI 기업이 원저작자의 동의와 정당한 보상 없이 학습 데이터를 활용했다는 이유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진행 중인 소송들 역시 매우 중요한 쟁점입니다. 어떤 데이터로 AI를 학습시키는지, 그 과정에서 기존 창작자의 권리가 어떻게 다뤄지는지, 결과물에서 인간의 기여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는 지속적으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술 윤리적 쟁점과 별개로, 완성도 높은 미감을 추구하는 현업 창작자들에게 'AI 딸각'이라는 프레임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숙련된 미감을 지닌 창작자라면 프롬프트 몇 번으로 나온 단순 생성물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AI를 활용하는 현업 아티스트의 다수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AI의 작동 방식을 터득하며 창작의 폭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웠음에도, 단지 AI를 활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인간이 들인 시간과 정성, 피와 땀이 함께 지워져 버리는 평가절하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술과 창작을 둘러싼 현재진행형 논쟁
비슷한 시기 보도된 글로벌 산업의 다른 뉴스들 역시 AI를 둘러싼 복잡한 갈등을 보여줍니다. 영상 제작 플랫폼 힉스필드(Higgsfield)는 총상금 100만 달러 규모의 '힉스필드 글로벌 필름 페스티벌(Higgsfield Global Film Festival)'을 개최하며 픽사 공동창업자이자 컴퓨터 그래픽스의 개척자인 에드윈 캣멀(Edwin Catmull)을 심사위원단에 합류시켰다고 밝혔습니다. 생성형 AI로 제작한 영화를 출품해 선정하는 페스티벌에 캣멀이 참여한다는 소식은 업계 일각에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한편, 신작 영화 〈오디세이〉로 박스오피스를 정복 중인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 역시 최근 인터뷰에서 AI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프랑스 유튜버 휴고데크립트(HugoDécrypte)와의 인터뷰에서 AI를 '트로이의 목마'에 비유했습니다. 전설 속 트로이의 목마가 '선물'의 탈을 쓰고 들어와 내부를 몰살시켰듯, AI 역시 우리 일상에 유용한 선물처럼 들어왔다가 결국 어둡고 위협적인 존재로 변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던져진 것입니다. 이에 놀란 감독은 웃음을 터뜨리며 AI는 "안에 그리스 병사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투명한 유리 목마"라고 응수했습니다. 겉으로는 위대한 기술적 선물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어떤 위험과 상업적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이미 대중이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놀란 감독은 이토록 빠르게 발전하면서 동시에 대중에게 이토록 철저히 배척당하는 기술은 처음 본다며, 특히 자신의 자녀 또래인 젊은 세대가 온라인상의 AI 콘텐츠를 보자마자 'AI 쓰레기(AI slop)'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내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부감을 기술과 기업을 향한 '건강한 회의주의(Healthy Skepticism)'라 부르며 지지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기보다, 그 기술을 내놓는 자들의 의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기술로부터 최선의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놀란 감독의 이러한 견해는 상당 부분 고개가 끄덕여지는 지점이 많습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이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인간의 철학과 주체성이야말로 예술과 창의성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영화 산업의 다른 한편에서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구글은 〈미나리〉와 〈백룸〉 등을 제작한 독창적인 영화사 A24에 약 7,500만 달러(약 1,000억 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하며 장기적인 AI 연구·개발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구글이 영화 스튜디오에 직접 지분을 취득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파트너십을 통해 구글 딥마인드는 A24 창작자들과 협력하여 영화 초안의 스토리보드를 구성하는 등 실무에 접목할 AI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게 됩니다. 다만 이번 협약은 A24의 작품 라이브러리를 구글의 AI 학습 데이터로 제공하는 계약이 아니며, 구글 딥마인드 측 역시 미래의 창작 도구는 이를 직접 다룰 현장 아티스트들의 필요와 관점 위에서 완성되어야 함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럼에도 발표 직후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실망과 반발이 흘러나왔습니다. 특히 A24와 영화 〈백룸〉을 작업한 케인 파슨스(Kane Parsons) 감독이 그간 생성형 AI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는 점은 이 협업을 둘러싼 논쟁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캣멀의 AI 영화제 심사위원 합류, 놀란 감독의 비판적 시선, A24와 구글 딥마인드의 협력, 그리고 BTS와 구글 AI의 협업을 둘러싼 팬들의 반발까지. 저마다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듯 보이는 이 장면들은 사실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됩니다. 기술이 가파르게 확장되는 시대 속에서, 인간이 쏟아붓는 창작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간 고유의 창의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지켜낼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입니다.
AI 예술 초기 역사에서 발견한 예술가의 창의성
이미 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이 현재진행형으로 부딪치며 공존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AI 시대의 풍경입니다. 이러한 다사다난한 장면들을 바라보며, 문득 제가 처음 AI와 예술의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던 10여 년 전이 떠올랐습니다. AI를 비롯한 최첨단 과학기술이 문화예술 및 콘텐츠 영역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감을 품었던 건 2015년 무렵이었습니다. 예술 창작에 AI를 도입한 사례가 하나둘 등장하고 국내외 언론에서도 흥미로운 보도가 이어지던 시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누구나 생성형 AI로 이미지와 영상, 글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미학에 뿌리를 둔 저의 시선은 AI가 창의성이 발휘되어야 하는 예술 영역에 스며들고 있다는 뉴스에 자연스럽게 끌렸습니다.
이 질문을 오래전부터 품었던 선구적 예술가가 있습니다. 바로 해럴드 코헨(Harold Cohen, 1928~2016)입니다. 2015년 무렵 BBC는 '지능형 기계: AI, 아트 전문가들에게 도전장을 던지다'라는 기사로 AI 예술에 관한 화두를 던졌는데, 이 기사가 조명한 핵심 인물이 바로 1970년대부터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컴퓨터 프로그램 '아론(AARON)'을 개발한 코헨이었습니다.
코헨은 1966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전시 작가였으며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개인전과 테이트 갤러리 전시 이력을 지닌 유명한 추상화가였습니다. 그는 1968년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UCSD)로 자리를 옮기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접했고, 스탠퍼드대학교 인공지능연구소를 오가며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을 발전시켰습니다. 201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여년간 AI와의 협업에 몰두하며 예술 창작에서 AI가 지닌 잠재력을 탐구한 그의 궤적을 기리듯, 2024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은 그의 회고전 《Harold Cohen: AARON》을 개최했습니다.


코헨이 생전에 남긴 작업과 인터뷰를 보면, 그는 오늘날 우리가 AI를 둘러싸고 던지는 질문들을 텍스트 프롬프트 기반의 생성형 AI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화가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AI를 단순한 자동화 도구로 보지 않고, 직접 개발한 플로터와 페인팅 머신을 통해 디지털 코드의 결과물을 종이와 캔버스라는 물질세계로 끌어냈습니다. 평생 화가로 살아온 경험은 그가 AI를 개발하는 순간에도 이미지와 표현, 재현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놓지 않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에서 최종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AI라는 기술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신만의 시선을 고집하며 기술의 이면에 명백한 존재감을 새겨 넣은, 한 인간 예술가의 치열한 창의성입니다.
숲을 바라보는 지혜, 창의성은 사라지지 않고 진화한다
AI 시대의 창의성에 관한 고민은 올가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초청 연사로 예술교육 전공생들을 위한 강의를 준비하면서 한층 깊어졌습니다. 앞으로 교육 현장을 이끌 예비 교사이자 순수미술에 깊은 애정을 품은 학생들은 AI에 대해 뚜렷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반발이 비단 AI 예술의 미적 가치 판단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케이팝 아이돌의 글로벌 팬들이 AI를 향해 품고 있는 정서적 반감과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AI가 청년 세대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까지 겹치면서 거부감은 더욱 클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 역시 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순수미술이 지닌 고유한 가치와 예술사의 맥락을 깊이 존중하기에, AI 예술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학생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예술가들이 역사 속에서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만나고 다뤄왔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진과 영화, 디지털 매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어떤 치열한 논쟁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시간이 흐르며 어떻게 예술의 언어를 넓혀왔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이야기를 이미 끝난 과거의 역사 속에서 이론적으로만 찾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 동시대의 AI 아티스트들이 어떻게 창의성을 발휘하고, AI를 하나의 도구로 삼아 자신만의 목소리가 담긴 창작을 이어가고 있는지에 더 주목하고자 합니다. AI 예술은 아직 빠르게 변화하는 현재진행형의 영역인 만큼 누구보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저널리스트의 시선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의 역사를 긴 시간의 축에서 보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예술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예술가들은 새로운 도구를 만나 창의성을 발휘하며 기존의 예술 개념과 표현 방식을 끊임없이 확장해 왔습니다. 사진은 회화가 오랫동안 맡아온 사실적 재현의 역할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고, 영화는 시간과 움직임을 예술의 언어 안으로 끌어들였으며, 디지털 기술은 작품이 존재하고 경험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기술들이 시간이 흐르며 예술의 새로운 언어와 영역으로 자리 잡았듯 AI 역시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차피 반대한다고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AI는 음악과 공연, 영상과 미술, 브랜드와 대중문화가 교차하는 곳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을 향한 무조건적인 찬양도 일방적인 두려움도 아닐 것입니다.
저는 기술에 대한 일방적인 옹호도, 무조건적인 배척도 모두 경계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과 예술, 산업과 대중문화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변화하는지 숲을 보듯 넓은 시야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창의성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이제는 'AI가 예술가를 대체할 것인가'라는 식상한 질문에만 머무르기보다, AI 시대에 오히려 더욱 선명해지는 예술의 가치와 창작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AI로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고 음악을 생성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인간 예술가의 역할이 사라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어떤 이야기를 건넬 것인가에 대한 인간의 판단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생성물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 그 결과에 어떤 의미와 서사, 해석을 부여할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을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두려워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고 무엇을 변화시키는지 깊이 바라보는 일일 것입니다. 기술이 예술을 어떻게 바꾸는지 지켜보면서도, 그 변화 속에서 예술이 왜 인간에게 필요한지 끝까지 질문하는 일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AI 역시 예술의 끝을 알리는 기술이라기보다, 인간의 창의성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확장되고 진화할 수 있는지를 새롭게 묻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김민지 아트 커뮤니케이터
[참고문헌]
- Higgsfield Global Film Festival: How to Enter, Rules, and the $1,000,000 Prize Pool
- A24
- 구글 블로그(‘BTS 더 시티 아리랑’에서 제미나이를 만나보세요)
- 테크크런치(‘Odyssey’ director Christopher Nolan calls AI an obvious ‘Trojan ho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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