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이 만든 혐오 없는 ‘대안수어’…LGBT 배워볼까

김영원 기자 2026. 8. 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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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

그는 일찍이 혐오 없는 대안수어가 있었다면 "애초에 커밍아웃한 농인들이 많았을 것이고, 농인 성소수자가 잘못된 게 아니라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농인 성소수자들을 모아 대안수어를 만들게 됐다.

우 활동가는 "대안수어가 농인 성소수자 사이에선 많이 사용되고 있다"면서도 "국립국어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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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성별 이분법 해체한 ‘대안수어’
우지양 한국농인엘지비티플러스(LGBT+) 상임활동가가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대안수어 ‘성소수자’를 보여주고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성’, ‘소수’, ‘자’를 차례로 표현한다. 레이어 합성.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말은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 머릿속의 단어장이 두꺼울수록 우리는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다. 소리로 소통하는 청인이든 손으로 소통하는 농인이든. 이성애자이든 성소수자이든.

한국수어가 제1 언어인 농인이자 게이인 우지양(36) ‘한국농인엘지비티플러스(LGBT+)’(이하 한농퀴) 상임활동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더 깊이 탐색하고, 자긍심을 느끼고 싶었다. 자신을 혐오 없이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것은 큰 장벽이었다. 그는 “학생 때 성교육 시간에 강사가 게이에 대해서 ‘에이즈 병 조심해라’라고 했고, 교회에서도 ‘게이 하지 마라’는 식의 교육을 받았다”며 “내 정체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이성애자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었다”고 했다. 한국수어에서 게이는 ‘항문 성관계를 하는 남자’, 레즈비언은 ‘여자와 몸을 비비는 여자’로 표현된다. 그는 일찍이 혐오 없는 대안수어가 있었다면 “애초에 커밍아웃한 농인들이 많았을 것이고, 농인 성소수자가 잘못된 게 아니라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했다.

우 활동가가 대안수어 ‘게이’를 보여주고 있다. 레이어 합성. 김영원 기자
우 활동가가 대안수어 ‘레즈비언’을 보여주고 있다. 레이어 합성. 김영원 기자
우 활동가가 대안수어 ‘양성애자’를 보여주고 있다. 레이어 합성. 김영원 기자

2019년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수어 통역 감수를 의뢰받은 것이 한농퀴 대안수어의 출발점이 됐다. 부탁받은 영화는 성소수자가 주제였는데 혐오 수어로 통역되고 있었다. 우 활동가는 게이이지만, 그 외 성소수자 정체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농인 성소수자들을 모아 대안수어를 만들게 됐다.

우 활동가가 대안수어 ‘트랜스젠더’를 보여주고 있다. 레이어 합성. 김영원 기자
우 활동가가 대안수어 ‘퀴어’를 보여주고 있다. 레이어 합성. 김영원 기자

이들의 대안수어는 농사회의 뿌리 깊은 성별 이분법적인 문화를 해체한다. ‘결혼’이 기존에는 ‘남자’(주먹에서 엄지를 세움)와 ‘여자’(주먹에서 새끼를 세움)의 결합으로 표현된다면, 대안수어에서는 기존 수어 ‘잔치’의 폭죽을 터트리는 듯한 동작을 빌려 머리 위로 아치를 그린다. 누구나 성별과 관계없이 결혼할 수 있음을 내포한 것이다. ‘성별 정체성’이라는 수어는 성별 이분법을 거부한다는 뜻으로 남자와 여자를 상징하는 손 모양을 몸통에서 떨어뜨리며 불쾌한 표정을 짓는 동작을 넣었다.

우 활동가가 대안수어 ‘결혼’을 보여주고 있다. 레이어 합성. 김영원 기자
우 활동가가 대안수어 ‘성별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레이어 합성. 김영원 기자

우 활동가는 “대안수어가 농인 성소수자 사이에선 많이 사용되고 있다”면서도 “국립국어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농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수어는 혐오적이어도 공식 수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우 활동가는 “퀴어 행사에서 대안수어를 사용하던 수어 통역사가 뉴스에서 혐오 수어를 사용하는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이 공식적으로 혐오 없는 수어를 사전에 등재해야 하는 이유다.

우 활동가가 대안수어 ‘여섯 빛깔 무지개’를 보여주고 있다. 레이어 합성. 김영원 기자
우 활동가가 대안수어 ‘앨라이’를 보여주고 있다. 레이어 합성. 김영원 기자

국립국어원은 올해 안에 성소수자 대안수어 등재를 심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이 한농퀴에 대안수어의 사용 빈도 자료를 요구하는 등 진정성 있게 농인 성소수자를 위한 심의를 고민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수어를 쓸 때마다 영상을 찍을 수도 없거니와, 대안수어를 사용하다 아우팅 당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우 활동가는 국립국어원을 향해 “진심으로 소수자를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며 “농인 성소수자도 수어가 제1 언어다. 우리를 농사회에서 배제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2026년 8월 24일치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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