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소 폐기물이 도로가 됐다…수명 두 배 늘린 ‘에코스틸 아스콘’의 비밀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고 전기차와 전기버스처럼 무거운 차량이 빠르게 늘면서 도로가 과거보다 훨씬 빨리 늙고 있다. 균열과 포트홀이 잦아지면서 도로 유지보수 비용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철소에서 나오는 산업 부산물인 제강 슬래그를 도로 포장재로 활용하는 새로운 아스콘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일반 아스콘보다 수명을 크게 늘리고 유지보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데다 제철소의 폐기물 처리 부담까지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개발된 에코스틸 아스콘은 이미 인천과 수도권 일부 도로에 적용됐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와 인도네시아의 대규모 도로 인프라 사업까지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도로 유지보수 문제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여름철에는 도로 표면 온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여기에 갑작스러운 폭우가 반복되면서 도로 내부로 물이 침투한다. 차량은 더 무거워지고 있다. 특히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와 전기버스의 확산은 도로가 받는 하중을 높이는 요인이다.
도로가 손상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유지보수 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국내 도로 유지보수 비용은 연평균 10% 이상 늘면서 약 1조5000억원 수준까지 증가했다. 도로를 새로 포장하는 비용만 문제가 아니다. 도로에 포트홀이 발생하면 해당 구간을 통제해야 한다. 작업 인력과 포장 장비를 다시 투입해야 한다. 불과 몇㎡를 보수하더라도 대형 포장 장비와 인력은 그대로 필요하다.
도로가 막히면 교통 정체가 발생한다. 물류비용도 늘어나고 사고 위험도 커진다. 도로의 경제성은 처음 얼마나 싸게 만들었느냐보다 얼마나 오랫동안 보수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다. 도로업계에서 생애주기비용인 LCC가 중요해진 이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스팔트라고 부르는 도로 포장재의 정확한 명칭은 아스콘이다. 아스팔트는 석유를 정제하고 남은 검은색 점성 물질이다. 여기에 돌을 잘게 부순 골재를 섞어 만든 것이 아스콘이다. 아스팔트는 접착제 역할을 하고 골재는 도로의 뼈대 역할을 한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골재다. 아스콘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골재가 필요하다. 현재 사용되는 골재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먼저 순환골재가 있다. 기존 도로를 보수할 때 표면을 깎아내면서 나오는 오래된 아스콘을 다시 가공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천연골재다. 산을 깎아 암석을 채취한 뒤 잘게 부숴 사용는데 환경 문제 때문에 석산 개발 인허가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골재가 필요한 아스콘 업체 SG와 제강 슬래그 처리가 필요한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회사가 손을 잡았다. 이 두 문제를 연결한 것이 에코스틸 아스콘이다. 아스콘 회사인 SG는 제강 슬래그를 천연골재 대신 아스콘 골재로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에코스틸 아스콘의 핵심 경쟁력은 단순히 값싼 골재를 사용한다는 데 있지 않다. 제강 슬래그 자체의 물성 때문에 오히려 일반 천연골재를 사용한 아스콘보다 내구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스콘의 강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아스팔트가 골재와 얼마나 강하게 붙느냐가 중요하다. 두 번째는 골재끼리 얼마나 단단하게 맞물리는가다. 제강 슬래그는 일반 천연골재보다 표면이 거칠다. 철이 빠져나온 기공에 아스팔트가 스며들어 흡수한느 양도 많다. 일반 천연골재에 아스팔트가 약 2% 수준 흡수된다면 제강 슬래그는 약 4%까지 흡수할 수 있다.
표면도 거칠기 때문에 골재끼리 서로 맞물리는 힘이 강하다. 아스팔트가 골재를 붙잡고 골재끼리 다시 기계적으로 맞물리면서 도로가 강해지는 구조다.
이 특성은 특히 포트홀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 포트홀의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는 물이다. 비가 오면 아스콘의 공간 사이로 물이 스며든다. 그 상태에서 차량이 지나가면 도로 내부에 순간적인 압력이 발생한다. 차량 하중에 눌린 물이 빠져나갈 공간을 찾으면서 아스팔트와 골재 사이의 결합을 밀어내고 골재끼리의 맞물림을 깨뜨린다. 이 현상이 반복되면 골재가 떨어져 나오고 도로 표면에 구멍이 생기는 포트홀이 발생한다.

도로 수명도 차이가 난다. 인천 경원대로에는 에코스틸 아스콘을 적용한 시험 구간이 있다. 시공 후 약 8년~9년이 지났다. 주변 일반 아스콘에서는 균열과 표면 노후화가 나타난 반면 에코스틸 아스콘 구간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도로의 수명이 길어지면 재포장 비용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재포장을 하려면 장비, 인력 등이 필요하고 교통 통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가장 경제적인 도로는 처음 가장 싸게 깔린 도로가 아니라 보수 횟수가 가장 적은 도로다.

단순히 제강 슬래그와 아스팔트를 섞는다고 도로 포장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도로의 용도에 따라 골재 크기를 달리해야 하고 아스팔트 함량도 조정해야 하며 첨가제 배합도 최적화를 해야 한다.
최적의 배합비를 찾은 뒤에는 실험실 검증만으로 끝낼 수 없다. 실제 도로에 깔아 수년 동안 차량 하중과 폭염과 폭우와 동결을 견디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는데 약 10년이 걸렸다. 실도로 시험과 품질 검증을 거쳤고 건설 신기술과 재난안전 기술 등록까지 진행했다.
SG는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에코스틸 아스콘 기술을 전국 아스콘 업체에 공유하고자 한다. 보유하고 있는 관련 특허를 전국 아스콘 업체에 기술 이전해 생산과 사용 권한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개발된 기술이 해외 도로시장으로 향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철광석 매장국으로 여러 곳의 대형 제철소가 운영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곳곳에 제철 부산물인 제강 슬래그가 쌓여 있다.
전쟁 이후 대규모 인프라 재건도 필요하다. 도로와 교량을 다시 건설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골재가 필요하다. 농업국가인 우크라이나는 광활한 평야가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산에서 캐내는 도로 건설용 천연 골배를 구하기 쉽지 않다. 에코스틸 아스콘이 제강 슬래그 처리와 도로 인프라 구축용 골재 확보라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구조다.

우크라이나 사업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전쟁 직후의 재건 수요 때문만은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2023년부터 유럽연합 가입 절차를 밟고 있다. 향후 EU 가입이 본격화될 경우 유럽의 지원을 받아 도로와 물류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정비할 가능성이 크다. 전후 재건이라는 일회성 수요를 넘어 장기간의 도로 인프라 투자가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인도네시아도 비슷한 구조다. 인도네시아는 해수면 상승과 환경 문제가 국가적인 과제로 떠오르면서 정부가 골재 채취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고 천연 골재 확보가 어렵다. 골재 부족으로 인도네시아 아스콘 가격은 한국보다 약 1.5배 높은 수준이다.

에코스틸 아스콘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신소재의 등장이 아니다. 철강산업에서 버려지던 부산물을 다시 도로산업의 원료로 돌려보낸다. 석산을 캐내지 않아 환경을 보호할 수 있고 도로 수명을 늘려 재포장에 수반되는 비용도 줄인다. 전형적인 산업 간 순환경제 구조다.
정부와 도로 운영기관은 유지보수 비용을 낮추고 운전자는 포트홀과 균열이 적은 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한국의 도로에서 시작된 이 실험이 한국을 넘어 우크라이나의 재건 도로와 인도네시아의 고속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