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행정체제개편, 해답은 20년 전에 있었다

한형진 기자 2026. 8. 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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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자치도 20년] (10) 행정체제개편
몸집 커지고 제도 남았지만 도민은 없어

변방의 섬으로 불리던 제주는 국제자유도시와 특별자치도를 향한 여정 속에 양적 성장과 방대한 권한 이양을 이뤄냈다. 동시에 환경 훼손과 부동산 폭등, 쳇바퀴 도는 행정체제 개편 등 도민의 삶과 괴리된 짙은 그림자도 함께 남겼다. '5극 3특'의 새로운 분권형 지방시대까지 도래하면서 제주는 또 다른 전환점에 서 있다. 제주의소리는 특별자치도 출범 20주년을 맞아 20회에 걸친 연재에 나선다. 특별자치도의 완성이 과연 그 자체로 목적이었는지, 도민 행복을 위한 수단이었는지 지나온 길을 함께 고민해 보는 기획이다. 특별자치도의 명과 암을 냉철히 분석하고 포스트 국제자유도시 시대에 걸맞은 제주만의 자치 모델을 함께 모색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 글]

글 싣는 순서
Ⅰ. 세차례 약속(1~4회)
Ⅱ. 설계와 작동(5~10회)
Ⅲ. 권한과 체감(11~16회)
Ⅳ. 새로운 간판(17~20회)
올바른 행정계층구조개편을 위한 도민연대(준)가 2005년 7월 개최한 기자회견 현장.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주민투표 과정에서 제주도의 개입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행정의 효율성을 위해 개발의 편의를 위해서, 주민들의 참정권과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하려는 반 자치, 반 분권 '도발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지난 2005년 6월 13일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열린 기자회견의 내용 가운데 한 대목이다. 이날 기자회견을 연 단체는 '올바른 행정계층구조개편을 위한 도민연대(준)'이다.

당시만 해도 제주도는 제주도, 제주시, 북제주군, 남제주군, 서귀포시까지 다섯 개의 독립된 행정체제로 운영됐다. 그런데 제주도는 주민투표를 통해 다섯 가지 행정체제를 통합해 '제주특별자치도'라는 단일 체제로 개편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계획에 반발하는 내용이다.

'올바른 행정계층구조개편을 위한 도민연대(준)'가 기자회견을 연 지도 21년이 지났다. '행정의 효율성', '개발의 편의', '반 자치·반 분권'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오늘날에 돌아볼 때 과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우리 곁에 늘 있지만, 때로는 먼 행정체제

'행정'이란 용어는 공무원들에게는 마치 동물의 꼬리처럼 늘 달고 다녀야 하는 친숙한 개념이다. 다만, 큰 관심 없이 살아온 이들에게는 뜬구름처럼 막연하게 다가온다.

행정은 행할 행(行), 정사 정(政)이 합쳐진 단어다. 의미를 풀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법률과 같은 규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운영되는 구조나 서비스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행정체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여러 관점에 따라 다르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피부에 와닿게 풀어보면 국민의 권리를 대신해 크게는 국가 단위부터 작게는 읍·면·동까지 운영되는 공공 시스템으로 여겨도 무방하겠다. 

이런 흐름에서 제주지역 행정체제는 그동안 여러 풍파를 거치며 오늘 날까지 왔다.

탐라국부터 특별자치도까지, 기나긴 여정

제주의 행정체제는 독립국가였던 탐라국에서 시작해, 고려에 편입되고 난 뒤에 낯선 원나라의 지배도 받았다. 조선시대 때는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이라는 3개 체제가 자리 잡았고, 조선 말기에는 전라남도의 일부분으로 관리됐다. 오늘 날 익숙한 '도'라는 개념은 1946년에야 등장했다.

1955년부터 제주도는 서두에 설명한대로 다섯 개의 행정체제로 운영됐다. 광역자치단체인 '제주도', 기초자치단체인 제주시·서귀포시·북제주군·남제주군이다. 

그리고 2006년 7월 다섯 개에서 한 개의 광역자치단체로 통합된다. 바로 특별자치도다. 특별자치도 체제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문제들로 인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출범 전부터 계속 끊이질 않았다.
2005년 6월 21일 행정자치부가 제주도로 보낸 주민투표 실시 요구서. ⓒ제주의소리

투표율 36.73%가 결정지은 제주의 운명

2005년 6월 21일 행정자치부장관의 직인이 찍힌 공문이 제주도지사에게 전달된다. 바로 '주민투표 실시 요구서'다. 제주지역 행정체제를 개편하기 위해 두 가지 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내용의 주민투표를 설명한다.

두 가지 안은 현행유지안(점진적 대안)과 단일광역자치안(혁신적 대안)이다. 현행유지안은 당시 체제처럼 도(道)와 시·군의 자치계층을 유지하고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직접 선출하면서 도·시·군의 기능과 역할을 조정하는 계획이다.

반면, 단일광역자치안은 도를 하나의 광역자치단체로 개편하는 내용이다. 4개 시·군은 2시로 통합하고, 시장은 선출이 아닌 도지사가 임명한다. 동시에 시·군 의회를 폐지하면서 기존에 있던 도의회를 확대한다. 대한민국 헌정 이후 유례가 없던 행정체제다. 

우려 속에 주민투표는 실시됐고, 결과는 단일광역자치안이 선택됐다. 다만, 이런 선택을 과연 도민 전체의 여론으로 봐도 무방하냐는 질문에는 지금도 물음표가 붙기에 충분하다.

당시 주민투표 투표율은 36.73%를 기록했다. 단일광역자치안은 57.03%(8만2919표)를 얻었고 현행유지안은 42.97%(6만2469표)에 그치며 특별자치도 출범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지역별로 살펴보면 여론은 확연하게 차이를 보였다. 제주시와 북제주군은 단일광역자치안이 앞섰지만,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은 현행유지안이 우세했다. 36.73%라는 저조한 투표율에 그 중에서 절반이 조금 넘는, 전체 유권자의 고작 21%가 선택한 결정은 갈등의 씨앗이 됐다. 
2005년 6월 21일 행정자치부가 제주도로 보낸 주민투표 실시 요구서. ⓒ제주의소리

관광객도 늘고 예산도 커졌는데, 도민의 삶은?

특별자치도가 출범한 2006년과 2026년 제주도를 비교하면 확연한 양적 성장을 확인할 수 있다. 인구는 56만명에서 66만명으로 증가했고, 관광객 수는 531만명에서 1384만6961명으로 껑충 뛰었다. 

제주도 예산은 2조6000억원이 7조8000억원으로 3배 증가했다. 지방세 수입은 4337억원에서 1조8762억원으로 약 4배, 지역내총생산은 8조7000억원에서 26조9000억원으로 약 3배 늘어났다. 여기에 이양 받은 국가사무, 확보한 특례까지 몸집은 분명 커졌다. 하지만 특별자치도민들의 삶도 과연 규모에 비례해 나아졌을까? 

모든 권력이 도지사에게 집중되는 일극 체제, 도민들이 내손으로 시장을 뽑을 수 없는 참정권 박탈, 행정시장은 도청 국장보다 못하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올 만큼 권한도 예산도 사라지며 역량까지 감퇴하는 행정시, 자연스레 민원은 제주도로 집중되는 악순환의 반복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문제에 대한 공감은 각종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특별자치도 출범 5년을 맞아 2011년 6월, [제주의소리]는 각계 전문가 302명에게 '특별자치도로 전환된 이후 도민 삶의 질이 어느 정도 향상됐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그 결과 '그저 그렇다'는 응답이 52.01%로 가장 높았고, '대체로 향상되지 않았다'가 32.55%로 뒤를 이었다. '전혀 향상되지 않았다'(7.05%)까지 합하면 낮은 체감도에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했다.

특별자치도 출범 15년째인 2021년 10월, 제주도의회와 제주와미래연구원이 실시한 도민인식조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확인됐다. 제주도민 성인 1007명을 1대1 면접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이 제주발전에 기여했는지 묻는 질문에 긍정은 '27.6%', 부정은 '22.6%'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49.8%가 보통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기초자치단체 부활 필요성은 긍정 36.1%, 부정 23.5%로 10% 이상 차이를 보였다. 도지사가 임명하는 행정시장을 직접 뽑아야 한다는 직선제의 필요성은 더 큰 차이로 긍정이 앞섰다.

같은 해 제주도가 실시한 도민인식 조사에서 특별자치도 이후 제주 자치역량 수준을 묻는 질문은 응답자 절반(50.1%)이 '낮다'고 응답했다. 특별자치도 체제에 대한 낮은 인지도는 꾸준히 지적된 문제다. 더욱이 그해 국무총리실이 실시한 제주특별자치도 성과 평가는 양호(85점)로 나타나면서 도민 정서와 행정의 괴리를 증명했다.

실패로 끝난 행정체제개편, 다시 원점으로

특별자치도를 도입한 김태환 도정 이후 모든 도정이 행정체제를 수정하기 위해 시도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우근민 도정은 행정구역을 3개 이상 늘리고, 의회 부활 없이 행정시장만 주민이 선출하는 '행정시장 직선제'를 시도했다. 원희룡 도정도 비슷하게 4개로 재조정하면서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오영훈 도정은 3개의 기초자치단체를 설치하는 계획을 모색했지만 역시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세 도정 모두 정부와의 협의가 원만하지 못했고, 내부 조율에도 실패하면서 세 도정 모두 행정체제 개편은 구호로만 남겼다.

2026년 출범한 민선 9기 위성곤 제주도정은 도지사 개인은 기초자치부활에 찬성한다는 입장이지만, 당장은 행정시장 책임제에 중점을 두면서 현행 체제에서 효율성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제2공항 갈등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처리하고 나서, 임기 중후반기에 행정체제 문제를 제대로 다룰 것으로 보인다.
2025년 3월31일 제주도의회 옛 도민의방에서 '올바른 제주도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위한 도민연대 준비위원회' 결정 기자회견이 열리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도민' 중심으로 20년 과정을 돌아봐야

2005년 6월 '올바른 행정계층구조개편을 위한 도민연대(준)'가 우려했던 "행정의 효율성을 위해 개발의 편의"와 "반 자치, 반 분권"의 문제는 뼈아픈 예언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특별자치도라는 행정체제가 작동되는 과정에서 도민 일상의 변화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행정효율·개발 등 거대 영역에 치중됐다는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2007년 출범한 특별자치도는 2002년 처음 등장한 '국제자유도시'라는 목적을 시행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초기 국제자유도시는 규제 완화를 통한 자본 유치를 주된 목표로 삼았기에, 필연적으로 행정 효율성을 극대화하고자 행정체제가 통합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제자유도시라는 이상향과 특별자치도라는 수단이 결합한 결과는 난개발과 관광산업 편중, 도민 삶의 질 악화를 불러왔다. 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이 3차까지 이어오면서 문제점을 수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민선 9기는 직전 도정에서 제시한 행정체제개편 구상이, 20년 전 주민투표 대안 가운데 하나였던 점진적 현행유지안에 가까웠다는 아이러니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급격한 변화로 인한 부작용은 이미 20년 동안 모든 도민들이 충분히 겪었다. 설사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목표로 삼는다고 해도 도민 공감대 없는 무리한 추진은 힘을 받기 힘들다.

무엇보다 행정체제의 목적이 '도민 체감, '균형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 20주년을 맞아 미래 발전 전략 수립 연구를 진행하면서, 도민과 공무원 각 513명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했다. 의견 조사 결과에서도 "도민과 공무원 모두 자치권 확대 그 자체보다 이를 통한 삶의 질 개선 등 실질적 성과를 미래 비전의 중심에 두고 있다. 향후 20년 전략의 목표 체계도 성과 중심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제시됐다.

지난 21일 열린 제주특별자치도 발전 전략 포럼에서 제주연구원 윤원수 도민행복연구실장은 "시군 폐지에 따른 지역 간 불균형 문제에 행정 서비스 약화, 주민 참정권 제한 등 특별자치도로 인한 문제가 지난 20년 간 지속적으로 발생했다"며 "도민이 결정하는 행정체제 구축과 도민이 체감하는 특별자치도 추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