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량 10분의 1토막"...확산되는 골목상권 공동화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 (중)]

권준호 2026. 8.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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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한 인쇄소 사이로 '임대 문의'가 붙은 점포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네 곳 건너 한 곳꼴로 임대 매물로 나왔거나 영업을 종료한 모습이었다.

서울·부산 일부 인기 상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매출 감소와 공실 장기화로 임대시장이 약세를 보였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시점에도 상권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하는 배경에는 높은 임대료 부담이 있다"며 "임대료는 하방경직성이 있어 한 번 올라가면 수요가 줄더라도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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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실률 28% 방산시장 가보니
4곳 중 1곳은 문 닫거나 임대
마트, 식당 등에도 사람 없어
세종, 대구 등 지방은 더 심각
"지역 단위 인프라 마련해야"
24일 서울 중구 방산시장 내 한 인쇄소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사진=권준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 24일 서울 중구 방산시장. 빼곡한 인쇄소 사이로 '임대 문의'가 붙은 점포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네 곳 건너 한 곳꼴로 임대 매물로 나왔거나 영업을 종료한 모습이었다. 물건을 사러 온 소비자보다 상인과 현장 근무자들이 더 많이 보일 정도로 거리는 한산했다. 골목상권이 위축되자 이곳 종사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았던 인근 식당과 마트도 차례로 문을 닫고 있다. 이른 저녁 시간이었지만 문을 연 식당에서도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곳에서 평생 일했다는 60대 A씨는 "옆집만 해도 나간 지가 벌써 몇 개월째인데 아직도 공실"이라며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급감해 우리도 고정 거래처로 겨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상권 강자'도 빈 가게 속출

폐업한 점포가 새 임차인을 찾지 못하면서 전통시장과 동네상권, 지방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공실이 장기화하고 있다. 올해 4~6월의 경우 서울, 제주 정도를 제외하면 전국 대부분 지역 공실률(일반상가)이 두 자릿수 이상일 정도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업종과 그렇지 못한 곳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모양새다.

24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2·4분기 전국 일반상가 공실률은 13.4%로 전분기보다 0.3%p 상승했다. 중대형상가는 14.3%, 소규모상가는 8.5%를 기록했다. 서울과 제주 등을 제외하면 일반상가 공실률이 두 자릿수인 지역이 대부분이다.

특히 올해 2·4분기 방산시장 일반상가 공실률은 28%에 달했다. 과거 인쇄업 호황기에는 대를 이어 운영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지만 온라인 거래 확대와 인쇄물 수요 감소가 겹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수요 감소는 생산량 급감으로 이어졌다. 방산시장 한 상인은 "코로나19 전 1000장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100장 정도만 만들어 판다"며 "생산량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버티는 상인들도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마트를 운영하는 40대 B씨는 "주말 아르바이트생 한 명도 쓰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며 "장사가 안되자 관리비가 저렴한 곳으로 옮기는 상인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공실로 신음하는 곳은 방산시장뿐만이 아니다. 신촌·이대(12.1%), 성신여대(11.8%), 홍대·합정(9.4%) 등 전통적인 대학가 상권도 높은 공실률을 보이고 있다. 반면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북촌(1.6%), 광화문(4.5%), 명동(6.3%) 등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논현(16.2%), 신사(18.0%) 등 과거 대표적인 인기 상권에서도 두 자릿수 공실률이 나타났다.

소비 줄고 임대료는 안 내려…지방은 인구 감소까지

공실 증가에는 소비 부진과 온라인 소비 확대, 높은 임대료의 하방경직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 조사에서 올해 2·4분기 전국 통합 상가 임대가격지수는 전분기보다 0.03% 하락했다. 서울·부산 일부 인기 상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매출 감소와 공실 장기화로 임대시장이 약세를 보였다.

문제는 매출이 줄어도 기존 임대료가 즉각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시점에도 상권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하는 배경에는 높은 임대료 부담이 있다"며 "임대료는 하방경직성이 있어 한 번 올라가면 수요가 줄더라도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온라인 소비가 생활화된 것도 전통 상권의 회복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지방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2·4분기 일반상가 공실률은 세종이 22.8%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대구 17.8%, 충북 17.4%, 경북 16.7% 등이 뒤를 이었다. 그나마 서울 일반상가 공실률은 9.4%로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지방은 지역 인구 감소가 가장 큰 문제"라며 "인구가 서울 등 대도시로 이동하면서 지역 내 소비 기반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실 증가는 단순히 개별 건물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빈 점포가 늘면 유동인구가 감소하고 주변 점포 매출도 떨어진다. 이는 다시 추가 폐업과 공실을 부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상권 침체가 장기화하면 건물 가치뿐 아니라 지역 소비와 고용, 지방세 기반까지 약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최 교수는 "결국 지역 단위에서 경제와 문화가 지속될 수 있는 인프라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상권마다 적정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찾아가면서 지역 여건에 맞는 재편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kjh0109@fnnews.com 권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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