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비전공’ 청년, 그리고 이상적 인재상

노성철 2026. 8. 24.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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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부터 일본 정보기술(IT) 기업에 취업해 도쿄로 건너오는 청년들을 만나 그들을 일본으로 이끈 삶의 여정을 인터뷰 형식으로 듣고 있다.

"현재 20대 중반인 지민(가명)은 초등학교부터 엘리트 체육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뛰어난 운동능력과 동료들을 이끄는 리더십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국가대표 발탁이라는 스포츠 선수로서 일생일대의 성취를 20대 초반에 이뤄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부상이 찾아왔고, 몇 차례의 수술과 재활 끝에 결국은 커리어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동시에 인생의 새로운 장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열어갈지 고민이 시작됐다. 그때 우연히 일본 IT 기업 취업으로 유명한 대구 A대학 광고를 보게 됐다. 'IT 분야 일본 취업, 코딩경험 없어도 환영.' 반신반의했지만, 프로그램 담당 교수와 면담 후에 소프트웨어(SW) 개발자로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고, 두 번째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Hello, World'를 화면에 표시하는 것도 벅찼지만, 지난 2년 동안 운동을 했을 때처럼 노력한 결과, 최근 일본의 유명 AI 스타트업에서 취업 제의를 받았다. 내년 4월 입사를 앞두고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수학 공부다. 엘리트 체육을 시작한 후 수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는데, 코딩 공부를 하면 할수록 수학의 중요성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EBS의 <수포자 탈출> 시리즈를 통해 중학교 과정을 마쳤고,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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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철 히토츠바시대학 상학부 준교수
▲ 노성철 히토츠바시대학 상학부 준교수

수년 전부터 일본 정보기술(IT) 기업에 취업해 도쿄로 건너오는 청년들을 만나 그들을 일본으로 이끈 삶의 여정을 인터뷰 형식으로 듣고 있다. 개개인의 사연 속에 한국과 일본의 노동시장 차이, IT업계 조직문화,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고용변화 등 중요한 화두들이 녹아 있기에, 인터뷰할 때마다 굵직굵직한 생각거리를 얻게 된다. 특히 지난 8월 초 대구에서 만났던 청년의 이야기는 AI 시대의 교육과 숙련에 대한 화두를 던져줬다.

"현재 20대 중반인 지민(가명)은 초등학교부터 엘리트 체육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뛰어난 운동능력과 동료들을 이끄는 리더십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국가대표 발탁이라는 스포츠 선수로서 일생일대의 성취를 20대 초반에 이뤄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부상이 찾아왔고, 몇 차례의 수술과 재활 끝에 결국은 커리어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동시에 인생의 새로운 장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열어갈지 고민이 시작됐다. 그때 우연히 일본 IT 기업 취업으로 유명한 대구 A대학 광고를 보게 됐다. 'IT 분야 일본 취업, 코딩경험 없어도 환영.' 반신반의했지만, 프로그램 담당 교수와 면담 후에 소프트웨어(SW) 개발자로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고, 두 번째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Hello, World'를 화면에 표시하는 것도 벅찼지만, 지난 2년 동안 운동을 했을 때처럼 노력한 결과, 최근 일본의 유명 AI 스타트업에서 취업 제의를 받았다. 내년 4월 입사를 앞두고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수학 공부다. 엘리트 체육을 시작한 후 수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는데, 코딩 공부를 하면 할수록 수학의 중요성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EBS의 <수포자 탈출> 시리즈를 통해 중학교 과정을 마쳤고,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

인터뷰 시작부, 지민은 담담하게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설명했지만, 필자는 내내 입을 다물 수 없었다. AI의 영향으로 전 세계적으로 주니어 개발자의 취업 문이 닫히고 있다고 들은 터라 더더욱 놀라웠다. 자연스럽게 운동선수에서 개발자로 방향을 전환한 과정에 대해 더 높은 해상도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나누고자 한다.

AI가 낮춘 숙련 쌓기의 문턱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 청년이 대학 졸업 후 IT업계에 진입하는 가장 전통적인 경로는 '국비교육과정'이었다. 내일배움카드를 통해 민간 학원에서 6개월 과정의 코딩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데, 주로 강의식으로 진행된다. 교육과정 참가를 위한 자격요건은 없고, 수료생들은 주로 시스템통합(SI)으로 불리는 외주 개발업체에 취업한다. 한편 2010년대 중후반 이후 개인 이용자를 위한 서비스를 개발해 제공하는 IT 기업들이 성장했고, 그들은 SW 공학 기반 지식을 갖춘 개발자를 선호했다. 새로운 인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 SW 부트캠프라는 교육과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기주도적 학습의 철학 속에서, 수강생들이 짝을 이뤄서 서로의 학습을 돕는 '짝 코딩'이 대안적 방법으로 부상했다. 다만 그러한 자기주도적 접근은 수용할 수 있는 참가자수에 제약이 있었다. 유명 스타트업이 주최하는 부트캠프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참가자를 선발했다.

지민의 학습 과정은 위의 두 방식과 궤를 달리했다. 지민의 입학을 상담했던 교수는 두 방식의 장점만을 살려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코딩경험이 전무한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해 기본 강의를 두텁게 하되, 코딩을 통한 창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자율주행 자동차 만들기 같은 다양한 팀 프로젝트를 배치했다. "코딩 기초가 아직 없는데, 어떻게 학생끼리 만들어 낼 수 있었어요?" 이 질문에 지민은 주저 없이 과외 선생님이자 학습 파트너 역할을 함께 해준 AI 얘기를 시작했다. 강의 내용 중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줘'라고, 과제나 프로젝트를 위해 코딩을 할 때는 '내가 짠 코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알려줘'와 같이 AI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본인의 눈높이 맞춰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녀는 비슷한 과정을 통해 일본 IT 기업에서 취업 내정을 받은 동기들의 사례도 열거하며, 필요할 때마다 맞춤형 도움을 줬던 AI 덕분에 모두가 노력한 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누구나 의지만 있다면 빠른 속도로 일정 수준의 (코딩) 실력에 도달할 수 있는 세상에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의 IT 기업은 무엇을 보고 지민과 그녀의 동기들을 채용하기로 했을까?

인성, 잠재력 채용의 귀환

능력주의! IT 기업 채용 담당자들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핵심원칙이다. 실전경험이 없는 인재를 키워 쓰기보다는, 즉시 현업에 투입할 수 있는 숙련 개발자를 영입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채용 방식은 국경을 넘어 IT산업의 표준이 됐다. 코딩 테스트, 알고리즘 설계, 현직자 심층면접 등 다각도로 숙련을 측정하기 위한 장치들이 길고 긴 채용 과정에 겹겹이 배치됐다. 하지만 AI 확산은 채용의 판을 바꾸고 있다. 판을 떠받쳐 왔던 능력(또는 숙련)의 정의 자체가 변하고 있는데, 누구도 변화의 방향에 대한 확신이 없다.

일본 IT 기업에 취업한 지민과 그녀의 대학 동기들 사례로 돌아가 보자. A대학 재학생들을 일본 IT 기업과 연결해 주는 국제 채용중개업체 관계자에게 그들의 일본 취업 성공비결을 물었다. 첫 번째로 회사는 지민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순수 코딩 실력만 보자면 지민보다 높은 수준의 지원자들이 많았지만, 채용 담당자들은 AI를 학습 파트너로 삼아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현 수준까지 실력을 키운 과정 자체에 주목했다. 눈 뜨면 새로운 AI 기술 혁신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길을 잃지 않고, 팀의 목적에 부합하는 기술을 선별해 빠르게 학습할 수 있는 이를 이상적 인재로 설정했다고 한다. 두 번째로 '인성'이 언급됐다. 구체적으로 혼자 달려 나가기보다는 배운 것을 나누고, 팀 내 견해차를 조율할 수 있으며, 실패를 겪어도 추스르고 다시 앞을 바라볼 수 있는 태도와 성격 등이 언급됐다. 지민의 경우 삶의 여정 자체가 증명서였다.

논의와 고민의 지점들

A대학 조사를 마치고 이 내용을 동료 연구자들과 나눴을 때 주된 반응 중 하나는 "일본 기업이니까 가능한 얘기 아닌가?"라는 질문이었다. 공채 제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 기업은 여전히 대졸 신입사원을 그들의 '잠재력과 인성'을 중심에 두고 뽑고 있기 때문이다. 일리 있는 질문에 고민하던 와중에, AI 네이티브 조직을 자처하는 국내 스타트업들의 온라인 합동 채용설명회가 있다기에 호기심을 갖고 참여했다. 'IT 백그라운드 필요 없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 '자괴감에 빠지지 않는 사람'과 같은 인성과 태도에 기반한 이상적 인재상이 열거됐다. 따로 만나 인터뷰한 스타트업 대표는 '개발자가 아무리 잘해도 AI가 그 수준을 아득히 넘어가는 시대'에 필연적인 인재상의 변화라고 설명해 줬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가 청년 노동시장에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AI 노출도가 높은 업계일수록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우울한 통계 속에서도(경향신문 2026년 8월18일자 "청년 일자리 증발, 주범은 'AI'") 지민의 사례는 본인 의지와 A대학 프로그램 같은 잘 설계된 교육환경이 결합하면 새로운 출발선에 서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하지만 가까운 동료는 내 희망회로에 냉정한 냉각수를 끼얹었다.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양과 인성이 채용 기준이 된다면 자라온 환경에 따라서 격차는 더 커질 것이라는 논리였다.

지민과 그녀의 동기들은 우여곡절 끝에 SW 엔지니어로서 첫발을 일본에서 내딛게 됐다. 그리고 너그럽게도 본인들의 커리어 여정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유해 주기로 했다. 그들의 경험을 통해 위의 두 가설 중 미래는 어느 쪽으로 수렴해 가고 있는지 내년 이맘때 다시 한번 이 지면을 통해 논의를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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