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제청 합의 안되자 후보군 다시 뽑으려 했나…조희대 코트의 추천위 무력화 시도 비판

김정화·허진무 기자 2026. 8. 24.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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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이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제청하기에 앞서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이 후보자들을 상대로 후보 추천 절차 재진행을 타진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장의 독점적인 제청권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제도를 무력화하려는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23일 취재를 종합하면, 노 처장은 지난주 초쯤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후보추천위에서 추려진 후보 4명에게 연락해 후보 추천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앞서 후보추천위는 지난 1월 노 전 대법관 후임 후보로 김민기·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4명을 조 대법원장에게 추천했다.

조 대법원장이 이 대통령에게 제청할 최종 후보에 대한 합의가 약 7개월 동안 이뤄지지 않자, 기존 후보 추천을 사실상 무르고 새로운 후보군을 추리는 방안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청와대와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손 부장판사를 이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노 처장은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법관 후보 4명에게 전화를 한 것을 놓고 “일부 후보가 거부해 바로 폐기됐다”며 “대법원장의 지시는 없었고, 사퇴하라고 말한 게 아니라 자유롭게 의견을 물어봤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법원 안팎에서는 법원행정처가 대법관 후보 추천 과정에 개입해 후보추천위 제도를 형해화하려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조직법은 대법관 제청 때마다 후보추천위를 구성하고, 대법원장이 제청할 때는 후보추천위의 추천 내용을 존중하도록 규정한다. 이는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제청권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법에 규정된 절차를 통해 나온 결과에 법원행정처장이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은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후보추천위의 공식 절차를 거쳐 후보들이 나온 건데, 사퇴할 의향이 있느냐는 식으로 물어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대법원장이 어떤 지시를 내렸든 아니든, 법원행정처장이 나서서 (절차 재진행을) 후보들에게 물어본다는 건 후보추천위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국민의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법관 인선 절차가 밀실에서 짬짬이 과정을 거쳐서 이뤄진다는 게 개탄스럽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판사도 “과거에 대법원장이 추천위에 ‘쪽지’를 내려보내 특정 후보를 요구하던 것이 제도 개선으로 사라졌는데, 이번 사태를 보면 사실상 후보추천위 결정을 무시하려는 시도로 읽힌다”면서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을 때는 계속 후보추천위를 다시 돌려서 뽑을 수 있다는 식의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김승원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를 비롯한 여당 소속 법사위원들이 21일 국회 소통관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대법관 제청을 둘러싼 각종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인선 절차 전반 등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센터는 지난 20일 성명을 내고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대법관 제청권 남용을 통제할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고, 사법행정권 남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법원행정처를 폐지할 것을 국회에 요구했다. 참여연대도 논평에서 “대법원장 제청권을 포함한 법원조직법 개정과 헌법 개정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는 조 대법원장이 손 부장판사를 서면 제청 형식으로 제청한 것을 ‘협의를 건너뛴 유례없는 일방 통보’라고 규정하고 후속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노 전 대법관 후임 후보를 다시 재청할 것을 조 대법원장에게 요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 경우 대법원은 후보자를 천거받는 절차부터 다시 밟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노 전 대법관 후임 후보추천위를 새로 구성하거나, 신속한 인선을 위해 지난해 12월 구성된 후보추천위를 재가동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이 대법관 제청을 반려했을 때 조 대법원장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승수 변호사는 “앞으로 제청권자와 임명권자 간의 이런 문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라며 “권한쟁의 심판을 통해 헌재의 판단을 받으면, 제청권과 임명권 사이에 교통정리가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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