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력난 구원투수로 뜬 SMR…원전이 ‘공장’으로 간다 [7대 첨단기술 투자지도]

안옥희 2026. 8. 2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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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은 오랫동안 크게 짓는 산업이었다.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원자로와 주요 계통을 하나의 용기에 통합하고 필요한 만큼 모듈을 추가한다.

i-SMR은 원자로, 증기발생기, 가압기 등 주요 계통을 하나의 원자로 용기에 통합한다.

i-SMR 같은 경수형 SMR과 소듐냉각고속로(SFR), 용융염로 등 4세대 비경수형 원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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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7대 첨단기술 투자지도 SMR] 

2026 CES 전시회 두산밥캣 부스에 전시된 SMR 모형. 사진=연합뉴스

원전은 오랫동안 크게 짓는 산업이었다. 수천 MW급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냉각계통, 터빈을 현장에서 연결하는 방식이다.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원자로와 주요 계통을 하나의 용기에 통합하고 필요한 만큼 모듈을 추가한다. 공장에서 모듈을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발전소 전체를 하나의 건설사업으로 추진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반복 생산을 전제로 한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SMR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미국에서는 빅테크가 SMR 개발사와 전력 공급 협력을 시작했다. 한국 기업들은 원자로 설계보다 기자재·제조·EPC·사업개발 분야에서 공급망을 확보하는 모습이다.

정부도 SMR을 미래산업으로 끌어올렸다. 8월 12일 발표한 ‘미래성장동력 7대 SEED’에 SMR을 포함했다. 7대 SEED 가운데 SMR·핵융합·재생에너지는 미래 청정에너지 분야로 묶였다. AI 시대 전력수요와 탄소중립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 성장동력이라는 의미다.

 커지던 원전, 다시 작아진 이유

1950년대 상업화 이후 원전은 대형화와 표준화를 통해 경제성을 높였다. 2세대에서 가압경수로(PWR)와 비등경수로(BWR)가 주력으로 자리 잡았고 3세대·3세대+에서는 안전 계통을 강화했다. 한국의 APR1400도 이 계열이다.

문제는 건설 규모다. 원자로 하나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공사 기간도 길다. 일정이 늦어지면 금융비용까지 늘어난다. SMR은 원자로를 작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원자로를 표준화해 공장에서 제작하고 현장에서 조립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일반적으로 전기 출력 300MWe(대형 원전의 약 100분의 1 규모) 이하를 SMR로 분류한다. 경제성의 관건은 반복 생산이다. 첫 호기보다 두 번째, 세 번째 원자로의 제작비와 공사 기간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가 상용화의 시험대다.

뉴스케일파워 SMR. 사진=뉴스케일

한국이 개발 중인 혁신형 SMR(i-SMR)은 170MWe급 경수형 원자로다. 지난 2월 27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표준설계인가를 신청했다. i-SMR은 원자로, 증기발생기, 가압기 등 주요 계통을 하나의 원자로 용기에 통합한다. 대형 배관을 줄이고 피동형 안전 계통을 적용해 사고 발생 시 중력과 자연순환 등을 이용해 냉각하도록 설계했다.

개발 방향은 두 갈래다. i-SMR 같은 경수형 SMR과 소듐냉각고속로(SFR), 용융염로 등 4세대 비경수형 원자로다. 테라파워의 나트륨(Natrium)은 SFR 계열로 345MW급 원자로와 에너지저장시스템을 결합했다.

미국 와이오밍주 캐머러 프로젝트는 3월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건설허가를 받았고 4월 건설에 들어갔다. 상업운전 목표는 2031년이다.

한국 정부는 경수형은 2035년 상용화, 비경수형은 2030년대 건설 착수를 목표로 제시했다. 2030년까지 기술중립·성능기반형 규제체계도 마련할 계획이다. SMR 한 노형에 베팅하지 않고 상용화가 가까운 기술과 차세대 기술을 동시에 확보하는 전략이다.

SMR 밸류체인 투자 포인트. 그래픽=박명규 기자

 AI가 바꾼 전력시장

SMR 부상의 직접적인 배경은 AI 데이터센터가 만든 새로운 전력 수요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필요로 한다. 발전량이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재생에너지나 건설 기간이 긴 대형 원전만으로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면서 필요한 만큼 단계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발전원으로 SMR이 부상한 이유다.

빅테크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테라파워와 메타는 올해 1월 최대 8기의 나트륨 원자로를 개발하는 협약을 맺었다. 최대 2.8GW의 무탄소 기저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아마존은 엑스에너지(X-energy)와 손잡고 미국 내 5GW 이상 규모의 Xe-100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첫 사업은 워싱턴주에서 320MW급 4기를 건설하는 계획이다.

뉴스케일은 루마니아에서 462MW급 SMR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삼성물산이 기본설계(FEED)에 참여했다. SMR이 원전의 차세대 기술을 넘어 데이터센터와 산업시설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 인프라로 시장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배경이다.

2025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빌 게이츠 테라파워 창업자가 SK서린빌딩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SK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 지역의 테라파워 첨단 SMR 건설 현장. SK와 SK이노베이션이 투자해 2대 주주다. 사진=연합뉴스

 빌 게이츠가 찾은 것은 K-제조 능력

8월 방한한 빌 게이츠 테라파워 이사회 의장은 한성숙 국무총리와 국내 재계 인사들을 만나 SMR 협력을 논의했다. 방한 시점에 국내 기업들의 사업도 구체화됐다. 두산에너빌리티는 8월 14일 테라파워와 나트륨 원자로 핵심 기자재 제작 계약을 맺었다. 원자로 보호용기와 지지구조물, 내부구조물 등이 대상이다.

국내 기업 가운데 실제 기자재 공급계약으로 연결된 사례라는 점이 눈에 띈다. HD현대는 5월 테라파워와 공급 프레임워크 계약을 체결하고 HD현대중공업을 원자로 보호, 격납구조물 부품의 우선 제조사로 선정됐다. 조선소의 대형 구조물 제작 능력을 SMR 제조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SK이노베이션은 테라파워와 글로벌 SMR 프로젝트 협력을 위한 예비협약을 맺었다. SK는 테라파워 투자자이기도 하다. 사업개발과 투자 영역에서 협력을 확대하는 단계다. 현대건설은 홀텍의 SMR-300 사업에서 EPC를 맡는 구조로 협력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뉴스케일의 루마니아 프로젝트에서 FEED에 참여했다.

 연료·규제는 해결 과제

4세대 비경수형 원자로로 가면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이 변수다. 모든 SMR이 HALEU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i-SMR 같은 경수형은 일반적인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한다. 테라파워 나트륨 등 일부 첨단원자로에 HALEU가 필요하다.

HALEU는 우라늄-235 농축도가 5% 초과, 20% 이하인 연료다. 러시아가 한동안 사실상 유일한 상업적 공급원 역할을 했고 미국의 자체 생산능력은 부족했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망 재건에 나섰다. 에너지부는 27억달러 규모의 우라늄 농축 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했고 센트러스에너지에는 9억달러 규모의 HALEU 생산 과업을 맡겼다.

센트러스에너지는 오하이오주 피커턴에서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있으며 신규 생산능력 가동 목표는 2029년이다. SMR 연료 생산시설을 단기간에 늘리기는 어렵다. 규제와 주민 수용성도 남은 과제다.

한국의 기회는 제조와 EPC다. 원자로 원천기술 전체를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대형 원전에서 쌓은 기자재 제작과 건설 경험이 있다. 테라파워를 비롯한 해외 개발사들이 한국 기업을 공급망에 끌어들이는 이유다.

7대 SEED의 SMR 육성도 결국 첫 원자로를 만드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같은 설계를 반복 생산해 원가와 공사 기간을 낮추는 단계까지 가야 산업으로 자리 잡는다. SMR의 상용화 여부는 첫 호기 건설을 넘어 반복 생산에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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