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파워 인터뷰 | 나오미 배런 아메리칸대 언어학 명예교수] "'읽는 인간' 멸종 중… 대입 지원서도 AI가 쓰고 AI가 읽는다"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 (Minds Connector) 2026. 8. 24.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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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읽기', 그로 인한 극치감과 수치감에 대해 처음 알려준 영화는 '더 리더'였다.

"너무 정중하고 지나치게 논리적이며 특정 고급 단어를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매끄러운 글은 십중팔구 AI더군요. 챗GPT 초창기에 에드워드 티안이라는 대학원생이 AI 탐지 프로그램을 개발했어요. 기준은 당혹감과 돌발성이었죠. 인간이 쓴 문장에는 의외의 감정과 추리가 필요한 '당혹감', 문장의 길이나 구조 변화가 잦은 '돌발성'이 드러나는 반면, LLM은 예측성 기반이라 문장이 친숙하고 매끄러워요. 텍스트 길이와 복잡도도 균일하죠. 하지만 최근에는 LLM이 점점 정교해져, 어떤 글이 AI 것인지, 인간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흔히 AI의 특정 표현 방식(예를 들어 'delve(깊이 파고들다)' 같은 단어를 남용하거나 줄표를 사용하는 등)을 피하도록 LLM을 미세 조정하면 특히 그렇습니다. 나는 앞으로 1년 내에 특정 텍스트를 인간이 썼는지 AI가 썼는지를 두고 고민하는 일이 줄어들고, 대신 인간이 직접 쓰고 읽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에 더 집중하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연구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실제로 인간이 쓴 글을 AI가 썼다고 알려주면 사람들은 그 작품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AI가 쓴 글을 인간이 썼다고 하면 그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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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배런 - 아메리칸대 언어학 명예교수, 미국 스탠퍼드대 언어학 박사, 전 미국 기호 학회 회장, '읽지 않는 사람들' '쓰기의 미래''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저자 /사진 나오미 배런

독서와 ‘읽기’, 그로 인한 극치감과 수치감에 대해 처음 알려준 영화는 ‘더 리더’였다. 극 중 ‘한나’로 분한 케이트 윈즐릿은 소년 마이클에게 늘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명작을 들으며 한나는 행복해한다. 시간이 흘러 법대생이 된 마이클과 전범 재판장에 피고인으로 선 한나. 한나는 법정에서 자기가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끝까지 감춘다. 문맹의 수치를 감춘 대가가 종신형일지언정. 훗날 마이클이 감옥으로 보내온 책 녹음테이프를 들으며 비로소 읽고 쓰게 된 한나. 윈즐릿의 환희에 찬 ‘읽는 얼굴’ 그리고 삐뚤빼뚤 써 내려간 “꼬마야, 이번 책 좋았어”라는 편지를 잊을 수 없다. 읽을 수만 있다면, 감옥도 우주를 향해 뚜껑이 열리듯.

릴스와 소셜미디어(SNS)로 소실된 읽기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나도 얼마 전부터 침대 머리맡에서 ‘토지’ 전집을 펼쳐 들었다. 부탁하지 않아도 내용을 요약해 주는 인공지능(AI)의 과도한 친절도 질색이거니와 알만한 편집자들까지 AI가 써준 듯한 이메일과 기획안을 보내오는 것에 적잖이 놀랐기 때문이리라.

김지수 -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or), 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저자

영화 ‘더 리더’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읽는(혹은 읽어주는)’ 주체로서 나 자신과 타인을 구원할 수 있다. 그걸 알기에 ‘읽어주는’ 주체가 AI로 대체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 읽기의 외주화가 가랑비에 옷 젖듯 진행되는 상황에서,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Naomi S. Baron)의 ‘읽지 않는 사람들’을 읽었다. AI는 속삭인다. “당신은 바쁘니 다 내게 맡기라, 읽는 기쁨도, 읽는 노동도.” “소설도 논문도 요약해 주고 시나리오도 법조문도 다 읽고 판단해 주겠노라”고. 인간과 AI 독서,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사건 보고서 ‘읽지 않는 사람들’을 읽을수록, 나는 내가 멸종되어 가는 ‘읽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두려움과 황홀을 느꼈다. 어쩌면 우리 시대 가장 찬란한 별종은 읽는 인간이 될 거라 예감하며.

‘읽지 않는 사람들’을 쓴 세계적인 언어학자 배런을 인터뷰했다. 배런은 ‘읽기와 학습’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AI 효율이 탄생시킨 대규모 ‘맥락맹’을 추적하며 왜 우리가 ‘깊이 읽기’를 포기하면 안 되는지를 차분하게 설득해 낸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선정했지요.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용어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1854년에 출판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까지 거슬러 올라가죠. 그러나 이 시점에 뇌 썩음이란 말은 디지털 기반 기술이 우리 뇌에 어떤 충격을 가하는지를 잘 표현합니다.”

원래 제목은 '읽기의 종말'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교육 현장에서 내가 느낀 위기감은 더 컸어요. ‘직접’ 읽는 양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디지털 화면으로만 글을 서핑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오랫동안 이 분야를 연구했는데, 디지털로 읽으면 긴 텍스트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생성 AI(-Generative AI)가 급부상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죠.”

내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책을 내고 작가가 됐지만, 그 책을 읽어줄 독자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AI는 읽고 쓰는 능력 중 어떤 능력을 더 치명적으로 먹어 치웠나요.

“읽는 일을 기계에 맡길수록, 읽고 쓰는 능력 다 위협받습니다. 더 심각한 건 읽고 쓸 동기 부여 자체가 사라진다는 거예요. 내가 미국에서 경험한 바로는 사람은 책 내용을 ‘축약본’으로 접하는 것만으로도 점점 만족해하고 있어요. 강연이나 팟캐스트를 듣거나 요약이나 서평을 읽는 식이죠. 그러다 보니 정작 책 자체를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다들 독서 환각 상태에 있습니다. 안 읽었는데 읽은 것 같은… 하지만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직접 읽는 것과 AI가 읽고 요약해 준 것을 읽는 것은 확연히 다르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해 ‘미들마치’는 매우 긴 책입니다. 영어판은 800쪽이 넘죠. 문장은 촘촘하고 끝없이 등장하는 인물을 계속 따라가야 하기에, 틱톡 영상에 익숙한 사람은 속이 터질 겁니다. 하지만 AI가 대신 읽고 분석한 ‘미들마치’로 ‘타인의 고통과 기쁨’을 체험할 순 없어요. 주인공들이 겪는 비참한 결혼 생활에 대한 인간적 연민이 생길 리 만무합니다. 인간의 분투를 경험하고 싶은가요. 대가를 치르는 만큼 얻는 법입니다. AI 요약문을 읽는 건, 노르웨이 전시관을 방문하고 노르웨이를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허망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원서조차도 학생들에게 읽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약본으로는 트웨인 문장의 풍부한 언어적 결, 이를테면 작품 속 흑인 노예 짐의 방언을 이해하려는 추리 과정 같은 건 경험할 수 없습니다. 허클베리와 짐이 어떻게 어려움을 헤쳐나가는지 성찰할기회도 얻지 못하죠. 성장 소설을 AI가 대신 읽게 하는 것은 자기 성장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어떤 읽기는 AI에 맡겨도 괜찮고, 어떤 읽기는 끝까지 스스로 해야 할까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글의 핵심 내용만 대략 파악하고 싶을 때는 AI 요약본으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위키피디아 문서를 먼저 훑어보거나 연구 논문 초록을 읽는 것처럼요. 요약 정보를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더 깊이 읽어볼지 판단할 감각은 얻게 됩니다. 나는 AI에 대신 읽어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재밌을 수 있다는 점도, 부인하지 않아요. 거대 언어 모델(LLM) 실험 중 클로드에 ‘리어왕에 대한 유머러스한 200단어 요약문’을 요청한 적이 있어요. 클로드는 이렇게 답하더군요.

‘한번 상상해 봐. 괴팍한 늙은 왕이 세 딸과 함께 ‘아빠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라는 게임을 하기로 결정했어. 상금은? 대충 왕국의 3분의 1.’

하지만 이건 실험일 뿐입니다. 나의 경우 흥미로운 서사, 직업 정체성과 관련된 것은 끝까지 스스로 읽습니다. 소설이 그렇고, 학술 논문 같은 정보 텍스트도 대체로 그렇습니다. 초록을 사람이 썼든 AI가 썼든 관계없이, 내게 흥미로운 아이디어는 첫 요약이 아닌 본문 어느 구석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한 가지 더 말하면, 나는 인간이 쓴 글을 읽을 때도 항상 ‘끝까지’ 읽지는 않습니다. 정보성 자료라면 필요한 내용을 얻었다고 느낄 때 멈추고, 소설은 글이나 인물, 줄거리가 내 시간을 들일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중간에 책을 내려놓는 일을 마다하지 않아요.”

대학은 AI 사용에 관한 한 최전선의 방어선이 되길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처참하더군요!

“지난 3년 반 동안 학생 과제의 독창성에 대한 교사의 신뢰는 무너졌습니다. 안타깝지만 현장의 교사들은 AI 사용을 전면 금지하거나, 반대로 두 손 놓고 AI 대필 여부를 잡아내려는 노력을 포기해요. 양극단에 끼어서 학생들만 오락가락합니다.

많은 학생이 AI에 쓰거나 읽는 걸 맡기는 걸 꺼림칙하게 생각해요. 스스로에게 해로운 ‘부정행위’라는 인식이 있죠. 하지만 동시에 경쟁에서 뒤처지고, AI를 활용하는 동급생보다 낮은 성적을 받을까 두려워합니다.”

AI가 쓰고 AI가 읽는 대입 지원서도 정말 아이러니하더군요. 입사 지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야말로 에이전트끼리 벌이는 초현실적인 게임 아닌가요.

“통계에 따르면, 채용 담당자들이 이력서와 추천서 검토에 쓴 평균 시간은 7.4초예요. 기업도 이미 수년째 지원서를 컴퓨터로 분류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어요. 현재로서는 지원서에 적절한 키워드를 넣는 응시자가 눈에 띌 가능성이 큽니다. 최적의 후보자인지와는 별개로요. 대학은 더 심각해요. 전통적으로 대입 에세이는 자기표현의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에세이 코치를 고용하거나 심지어 대신 에세이를 써줄 사람을 구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우회해 왔어요. 이제는 AI가 대필자 역할을 대신할 뿐! ‘우리는 더 이상 에세이가 학생의 실제 글쓰기 능력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가정하지 않습니다.’ 듀크대 학부 입학처장의 말입니다.

문제는 일부 대학도 에세이와 지원서를 읽을 때 AI에 의존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 에세이에 너무나 많은 것이 달려 있으니, 부디 글의 뉘앙스와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평가해 주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의 호소문이 정말 초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나요? 독립적 사고를 길러주겠다고 약속하는 고등 교육기관이 학생을 선발하는 평가적 읽기를 기계에 맡긴다니, 참으로 씁쓸한 일이죠.”

영국 화가 존 캘콧 호슬리가 1870년 그린 소설'미들마치'에 나오는 '뱅커의 프라이빗 룸'. /사진 런던대 로열 홀로웨이

선생님은 현장에서 LLM이 쓴 글과 인간이 쓴 글을 쉽게 알아챌 수 있나요.

“너무 정중하고 지나치게 논리적이며 특정 고급 단어를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매끄러운 글은 십중팔구 AI더군요. 챗GPT 초창기에 에드워드 티안이라는 대학원생이 AI 탐지 프로그램을 개발했어요. 기준은 당혹감과 돌발성이었죠. 인간이 쓴 문장에는 의외의 감정과 추리가 필요한 ‘당혹감’, 문장의 길이나 구조 변화가 잦은 ‘돌발성’이 드러나는 반면, LLM은 예측성 기반이라 문장이 친숙하고 매끄러워요. 텍스트 길이와 복잡도도 균일하죠. 하지만 최근에는 LLM이 점점 정교해져, 어떤 글이 AI 것인지, 인간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흔히 AI의 특정 표현 방식(예를 들어 ‘delve(깊이 파고들다)’ 같은 단어를 남용하거나 줄표를 사용하는 등)을 피하도록 LLM을 미세 조정하면 특히 그렇습니다. 나는 앞으로 1년 내에 특정 텍스트를 인간이 썼는지 AI가 썼는지를 두고 고민하는 일이 줄어들고, 대신 인간이 직접 쓰고 읽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에 더 집중하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최근에 저는 우연히 LLM이 데이터 언어 사료를 먹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앤트로픽이 AI를 학습시키기 위해 전집, 시집, 문학 작품 등 수만 권의 책을 뜯어 한 장 한 장 고속 스캔한 후 파쇄하는 사진이었죠.

“말한 것과 같은 대규모 스캐닝 작업을 처음 시작한 곳은 구글입니다. 2000년대 초반 구글 북스(Google Books) 사업의 일환이었죠. 책이 훼손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도 썩 유쾌하지 않은 일입니다만, 저자로서 저작권 침해 문제가 더 걱정됐어요. 그 침해 문제는 미국작가조합과 10년간에 걸친 법적 공방으로 이어졌고, 구글은 결국 ‘공정 이용(fair use)’ 원칙에 근거해 승소했습니다.

앤트로픽을 둘러싼 현재 상황은 이와는 또 다른 저작권 침해 문제를 다룹니다. 주요 소송에서 앤트로픽은 ‘해적판(불법)’ 데이터 사이트에서 방대한 양의 저작권 보호 자료를 수집했음을 인정했습니다. 담당 판사는 앤트로픽이 직접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하지는 않았지만, 불법 출처의 자료를 가져온 것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죠.

문제가 된 수십만 권의 책 중에 내 책 두 권도 포함돼 있었어요. 나는 해적 사이트들이 텍스트를 긁어모으기 위해 어떤 파괴적인 행위를 벌였는지보다 지식재산권 문제 자체를 더 중요하게 바라봅니다. 우려스럽게도 테일러 앤드 프랜시스 같은 출판사는 이미 AI 기업에 LLM 훈련용 데이터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LLM이 생성한 텍스트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LLM 텍스트가 서로의 출력물을 학습하다 보면 생물학적 '근친교배' 같은 부작용이 일어난다고요. 갈수록 시시한 합성 텍스트만 출력돼서 '종(種)의 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예언! 그러니까 10년 후 '텍스트포칼립스(textpocalypse)' 세상이 오면, 인간이 쓴 글인지 기계가 쓴 글인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게 될 거라는 예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문제는 이미 우리 손에서 벗어난 것 같습니다. 이미 일반 독자는 정교한 LLM이 생성한 글과 인간이 쓴 글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경 쓸 것인가’의 문제는 내게 매우 중요해요. 이전 책 ‘쓰기의 미래(원제: Who Wrote This?)’에서 나는 창의성 문제를 다뤘습니다. AI가 ‘창의적’일 수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에 신경 쓸 것인지의 문제죠. 창의성에 있어서 과정이 결과물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그림이든, 소설이든, 이론이든)가 인간으로서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는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갈망, 열망,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창조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과 공동체에 유익을 줍니다.

연구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실제로 인간이 쓴 글을 AI가 썼다고 알려주면 사람들은 그 작품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AI가 쓴 글을 인간이 썼다고 하면 그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좋아집니다. AI가 매우 정교한 글을 생성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인간 종이 만든 것으로 생각하는 글을 여전히 더 높이 평가합니다.”

기자·변호사·작가·연구자·학생 등 읽기 노동자 중 누가 가장 위태롭습니까.

“AI가 어떤 직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화이트칼라 전문직에 대해서는 종말론적 시나리오도 있지만,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일의 흥미로운 부분은 사람이 하게 된다는 긍정적 전망도 있습니다. 법률 분야에선 악명 높은 사례가 지금도 종종 터집니다. 슈워츠라는 변호사가 자기가 맡은 사건과 관련된 판례를 훑는 데 챗GPT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판례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판사가 발견했죠. 제대로 읽지 않을수록, 신뢰도는 추락합니다. 기자라는 일자리는 AI 등장 전부터 위협받았어요. 독자 감소와 광고 하락으로 많은 신문사가 문을 닫고 있지 않나요? 연구자들은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은 작지만, 대신 문헌 검색과 선행 연구 비교·분석을 간소화하는 데 LLM에 의존하게 될 겁니다. 학생들은 이미 줄거리 요약 서비스에 의존하며 정독에서 멀어지고 있죠.”

50~90세 성인 3500명 이상을 추적한 결과, 책을 읽은 사람이 읽지 않은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통계도 흥미로웠습니다.

“새로운 언어나 악기를 배우면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신경 경로가 만들어지고, 두뇌 건강이 신체 건강으로 이어진다는 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어요. 그러나 수명상 이점은 신문이나 잡지 같은 정기 간행물을 읽을 때는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읽을 때만 해당했어요.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뇌는 단어와 문장 수준을 넘어 더 긴 줄거리와 인물의 변화 과정까지 처리합니다. 책을 통째로 읽어 버릇한 아이가 짧은 글 조각만 읽은 아이보다 독해력 평가 점수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LLM 시대에 언어학자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잘만 통제하면 AI로 언어적 지평을 넓힐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AI 통번역 덕분에 이전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낯선 작품을 읽고,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의 이웃과도 더 쉽게 대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자연어 처리 기술을 통해 성별·인종, 심지어 문화에 따른 다양한 편향을 탐지할 수도 있지요. 소멸 위기에 있는 언어를 기록하고 해당 언어의 LLM 데이터세트를 구축하는 등, AI로 의미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계속 읽는 인간으로 남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실 ‘읽기 능력’ 없이도 충분히 인간다울 수 있습니다. 문자는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 현상입니다. 겨우 약 5500년 전에 시작됐고, 그 기간 문자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최근까지도 문자가 없는 사회가 있었으며, 그 구성원은 종종 지적이고 현명했습니다. 기억과 구전 역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요. 그러나 읽고 쓸 기회가 있는 곳에서라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읽기 능력은 인간 뇌 구조를 바꿉니다. 세상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상상력을 키우고, 타인 삶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무엇보다 순수한 몰입의 즐거움을 선사하지요. 이 모든 장점을 알고도, 스스로 기회를 포기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가요! 부디 자기만의 기준, 독법을 정해서 꾸준히 읽어 나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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