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 '이방인' AI로 번역해보니… "매끈할 뿐, 인간의 감동 없어"

김나연 2026. 8. 2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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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출판계의 뜨거운 화두는 '인공지능(AI)의 문학 번역'이다. 특히 고전문학은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된 경우(퍼블릭 도메인)가 많은데, 이런 작품들을 AI로 번역해 판매하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고전문학 700여 권 전자책을 1만9,800원에 평생 소장할 수 있다"고 홍보하던 업체 '책도둑'이 AI 번역 사실을 뒤늦게 시인하고 서비스를 접었다.

이어 "문학에는 감정과 뉘앙스, 소리와 촉감과 질감이 있는데 이걸 감각하지 못하는 AI가 문학을 번역할 수는 없는 것 같다"면서 "AI의 고전 번역은 '모비딕' 어린이 문고판을 '모비딕'이라고 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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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의 글, 텍스트에 대한 사랑 차원 달라"
감정·경험 기반으로 한 인간 번역은 개성 뚜렷
28만 원 AI로 '번역 실험' 해본 김선형 번역가
"문체 학습시켜도… 작업 1분조차 단축 안 돼"
게티이미지뱅크

근래 출판계의 뜨거운 화두는 '인공지능(AI)의 문학 번역'이다. 특히 고전문학은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된 경우(퍼블릭 도메인)가 많은데, 이런 작품들을 AI로 번역해 판매하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올초 문학 독자들 사이에서는 AI로 번역하는 출판사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고전문학 700여 권 전자책을 1만9,800원에 평생 소장할 수 있다"고 홍보하던 업체 '책도둑'이 AI 번역 사실을 뒤늦게 시인하고 서비스를 접었다.

일련의 논란에서, 비판의 초점은 주로 'AI 번역 사실을 숨겨 소비자 권리를 침해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문학이 마주한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AI는 문학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을까.

실제 AI와 번역가의 번역 결과물을 비교해봤다. 국내에서 저작권이 만료된 알베르 카뮈의 작품 '이방인'의 일부 문장을 AI 무료 모델을 활용해 번역했다. 챗GPT(GPT-5.6 Luna), 제미나이(3.6 Flash), 클로드(Sonnet 5)를 활용했다. 인간의 번역물로는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의 '이방인'(민음사 발행) 번역을 가져왔다. 주인공 뫼르소가 총을 쏘기 직전 대목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중 일부 문장을 두고 AI 3종과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의 번역을 비교했다. 김 명예교수의 번역은 민음사 발행 '이방인'에서 발췌했다. 그래픽=박종범 기자

AI와 사람의 번역문은 생동감과 가독성이 확연히 달랐다. 짧은 대목이지만 3개의 AI가 모두 비슷하게 옮긴 것을 김화영 번역가만 다르게 쓴 표현들이 눈에 띈다. 번역가가 자신의 오감으로 원문을 받아들인 뒤 그 감각을 재현한 흔적이다.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을 완역한 김정아 박사는 "AI의 번역은 모두 매끈할 뿐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없다"면서 "김화영 번역가의 글은 살결이 타들어가는 열기를 본인이 느낀 뒤 심장에서 나온 말로 읽힌다. 텍스트에 대한 사랑의 차원이 다르다"고 평했다.

1974년부터 프랑스 문학을 번역해온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물론 일부 문장만으로 작품 전체의 번역을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비교하는 대목에 따라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홍한별 번역가는 "기계가 아예 다룰 수 없는 부분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면서 "삶의 경험이나 상상력, 공감력이 없는 기계와 사람이 하는 번역은 과정 자체가 전혀 다르다"고 했다.

예컨대 번역가는 단어의 시대성을 놓고도 깊게 고민한다. '제인 에어'를 번역 중인 홍 번역가는 온라인서점 알라딘에 연재하는 번역 일기에 "1847년에 나온 '제인 에어'를 어떤 시간에 두고 번역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고 적었다. 영단어 'wine'은 과거에는 '포도주'로 번역됐지만, 현대에는 '와인'이라는 말이 더 친숙하다. 홍 번역가는 초벌 번역을 끝내고 살펴보니 자신이 'wine'을 9번은 '와인'으로, 2번은 '포도주'로 옮겼더라고 설명했다. 상류층 로체스터가 말할 때는 '와인'으로, 하녀인 베시의 말과 성경 인용구는 '포도주'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단어의 계급적, 시간적 맥락을 해석해 옮긴 결과다.

김화영 교수도 인간의 번역이 고유한 경험과 사고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글을 기계로 미끈하게 고칠 수 있지만, 나는 옛날 원고지에 손으로 뒤뚱뒤뚱 쓴 글이 훨씬 좋을 때가 많다. 거기에는 인간 호흡의 육체적인 리듬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면서 "AI는 절대 그런 걸 못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 번역에는 내가 살아온 삶이 어떤 방식으로든 투영돼 있다"면서 "AI는 틀리지 않을 뿐 개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국내 대표 영문학 번역 전문가인 김선형 번역가의 서가에 지난해 12월 꽂혀 있었던 제인 오스틴 관련 서적들. 오스틴의 열렬한 팬인 김 번역가는 '맨스필드 파크'로 AI 번역 실험을 해본 뒤, "AI에는 없고 저에게는 있는 것들을 깨달았다"고 엘리 뉴스레터에 썼다. "패니와 함께 앓는 심장, 설렘에 달뜬 기분, 제인 오스틴과 나와 독자가 손잡고 만들어내는 의미의 공동체라는 타협할 수 없는 가치" 등이 그것이다. 임지훈 인턴기자

AI 번역이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것을 넘어, 원문을 해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선형 번역가는 최근 출판사 엘리 뉴스레터에서 자신의 'AI 번역 실험'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올해 2월 구독료 월 200달러(약 28만 원)의 퍼플렉시티 맥스에 작업 중인 자신의 번역문을 넣고 문체를 학습시킨 다음, 작품의 다른 대목을 번역시켰다고 한다. 그 결과 AI는 문장부호나 종결어미 등으로 그의 문체를 흉내 냈지만, 서술 방식을 인물의 감정에 따라 조절하지는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의미론적 정합성이라는 측면에서 신뢰도가 완전히 떨어졌다"는 점이었다. 원문의 어구를 건너뛰고 없는 단어를 만드는 등 제멋대로 번역했고, 아예 없는 문장을 생성하는 환각(할루시네이션) 현상까지 나타났다.

김선형 번역가는 한국일보에 "가장 비싼 AI에 내 문체를 학습시키고 번역을 했는데도, 작업 시간을 1분 단축하는 효과조차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문학에는 감정과 뉘앙스, 소리와 촉감과 질감이 있는데 이걸 감각하지 못하는 AI가 문학을 번역할 수는 없는 것 같다"면서 "AI의 고전 번역은 '모비딕' 어린이 문고판을 '모비딕'이라고 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문학계에서는 번역가의 역할에 큰 의미를 둔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작가와 번역가를 함께 시상한다. 한강 작가도 데버라 스미스 번역가와 2016년 '채식주의자'로 이 상을 공동 수상했다. 한강 작가는 그를 "내 고유의 톤을 포착하고 있다"고 평해왔다. 김정아 박사는 "번역가가 데버라 스미스가 아니었다면 한강 작가가 상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며 "'한강 작가의 언어를 제대로 옮겨낸다는 게 가능이나 한가' 생각이 드는데, 그는 그걸 한 거다. 자신이 책을 쓰는 것보다도 더 오래 걸리고 힘든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2024년 12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대형 서점에 그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코너가 마련돼 있다. 스톡홀름=연합뉴스

그럼에도 번역의 질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만큼, 값싸고 빠른 AI 번역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드러내놓고 AI를 쓰는 일부 출판사의 문제가 아니다. 김정아 박사는 "최근 신간 한 권을 구매했는데, AI 번역 후 사람이 감수조차 하지 않은 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했다. 해당 도서는 번역가와 그의 이력까지 명시된 정식 번역서다. 김 박사는 "번역가의 색깔이 하나도 없을뿐더러 (원문의) 문단 구분을 다 건드렸다"면서 "번역가들은 문장은 끊어도 문단은 정말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는다. 그게 원본 텍스트에 대한 예의"라고 강조했다. 이어 "독자들이 이런 책을 읽고 훌륭한 작가에게 실망할 것을 생각하면 정말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번역가들은 공들인 번역이 경제 논리에 밀려 줄어드는 상황을 염려한다. 홍 번역가는 "AI 번역을 택하게 되는 요인은 오직 가격일 텐데, AI 번역 책에 시장을 뺏기면 비싼 비용을 들여 정성스럽게 책을 만들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점이 걱정"이라고 했다. 김선형 번역가는 "새로운 인력이 계속 유입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면서 "결국 번역이 작가처럼 글을 쓰는 직업이라고 인식이 바뀌어야 (지속 가능)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김나연 기자 is2n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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