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팔 썩는데 환자 목 자른 격… 재개정 안 하면 사법 시스템 붕괴될 수도

검찰 개혁의 시작은 노무현이었다. 판사 출신 형사법학자 이상원 서울대 명예교수는 2007년 노무현 정부가 형사소송법을 개정할 때 법원측 실무자로 참여했다. 공판중심주의, 직접심리주의로 나아간 노무현의 개혁은 사법의 중심을 검찰에서 법원으로 옮긴 진일보였다.
이재명 정부가 의결한 형소법 개정안은 노무현 개혁과 역행했다. 이 교수는 “수사권을 경찰에 몰아줘 형사사법의 중심추를 경찰로 되돌린 것은 해방 후 우리 제도가 걸어온 길과 정반대 방향으로 간 역사적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보완수사권 폐지를 “오른팔이 썩어 수술대에 누운 환자의 목을 자른 격”이라고 개탄한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거부권을 행사했을 것”이라고 했다.
◇ 수사·기소 분리? 통제와 감시가 관건
-형사소송법 개정을 개악이라고 보나.
“개악 정도가 아니라 국가 질서를 지탱하는 형사사법제도가 붕괴될 수도 있어 우려된다. 10월 법 시행 전 최소한이라도 재개정 해야 한다.”
-노무현 사법 개혁의 요지는 뭐였나?
“2007년 형소법 개정의 핵심은 공판중심주의였다. 판사가 검찰 수사 기록만 보지 말고, 공개된 법정에서 변론하고 증명하게 한 뒤 선고하라는 게 핵심이다. 판사의 직접 심리, 위법 증거 배제 원칙을 명문화해 검찰 권한을 약화시켰다.”
-곽상언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권 박탈을 추진한 적이 없다고 한다.
“수사권 자체를 없애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다만 검사의 수사가 적법하게 이뤄지도록 조서 작성, 증거 수집에 여러 장치를 뒀다. 수사와 기소 분리? 수사하지 않은 사람이 유무죄를 어떻게 가늠하나. 수사와 기소는 한몸이나 마찬가지다.”
-수사와 기소 분리는 개혁의 대전제였다.
“정치적 레토릭일 뿐 그런 원칙은 들어본 적 없다. 한 사람이 선수촌에서 훈련도 하고 올림픽에 출전도 하는 것은 권한을 독점하는 것이니 훈련은 A가 하고 출전은 B가 하라는 것과 같은 논리다. 이른바 ‘훈련·출전 분리’의 원칙. 심리와 판결이 함께 가듯, 수사와 기소는 분리되지 않는 유기적 결합체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가져 무소불위 권력이 됐다는 것 아닌가.
“검찰 개혁을 권력 투쟁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에겐 누구의 권력이 더 큰가가 관심사지만, 일반 국민은 다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나누고, 수사권을 천 개로 쪼갠다 한들, 각 수사권의 끝에 있는 사람들, 가령 피해자나 피의자에겐 그 작은 수사권이 절대 권력이다. 운전자에겐 교통경찰이 대통령보다 더 무서운 것처럼. 수사·기소 분리가 아니라 수사·기소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권한 남용을 막는 길이다.”
-경찰, 중수청, 공수처 등 수사 기관이 여럿이다. 특수사법경찰도 검찰에서 독립했다.
“국민만 미로에 빠지게 됐다. 중복 수사와 사각지대가 생길 것이다. 뭣보다 수사권 경쟁은 수사의 총량을 늘리고 무리한 수사의 위험을 가져와 국민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

◇ 어리석은 ‘아기돼지 삼형제’
-피해자 단체 등 국민 다수는 보완수사권 폐지에 분노한다.
“수사는 완벽할 수 없다. 재판도 완벽할 수 없다. 최종 결론에 이르기까지 보완하고 보완해나가는 것이 형사사법절차다. 수사가 미진해 범인이 방면되면 피해자가 울고, 부실 수사로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리면 피의자가 운다. 보완수사는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를 위한 것이다.”
-유시민은 보완수사도 수사라며, 수사권을 남겨놓으면 검찰 권력이 부활할 거라고 주장한다.
“그런 위험이 0%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보완수사는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현행법에도 보완수사의 범위를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장윤기 사건’처럼 보완수사는 순기능이 역기능을 압도하는 제도다.”
-민주당은 보완수사요구권, 중수청 내 보완수사 전담부서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기돼지 삼형제가 살던 벽돌집 창문이 깨져 늑대가 들어올 위험에 처했다. 창문만 고치면 되는데 삼형제는 벽돌집을 부수고 지푸라기로 새 집을 짓기로 한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 논에서 가져온 지푸라기라면서! 짚으로 지은 집은 불안하다고 하니 대문에 빨간색 페인트로 ‘늑대 출입금지’라고 써붙인다. 딱 이런 형국이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7대 범죄는 전건 송치하겠다고도 한다.
“사회적 약자가 7대 범죄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그 기준도 모호하다. 설령 전건 송치를 해도 검사가 보완수사 ‘요구’만 할 수 있어 대안이 되지 못 한다. 불송치는 범죄 혐의가 없을 때 경찰이 직접 사건을 종결하는 것인데, 이는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불송치는 기소 여부 결정까지 경찰이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제 피해자 스스로 검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데.
“국가기관이 해주던 일에 민간의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형사사법의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게 됐다.”
-서영교 의원은 국선변호사를 지원해주면 된다고 하더라.
“국선 지원엔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 모든 사건, 모든 당사자를 지원할 수도 없다. 또, 국선변호사가 검사만큼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어렵다. 이번 개혁을 환영하는 사람은 권력과 돈 있는 사람, 그리고 경찰 수뇌부들일 것이다.”


◇ 경찰국가로의 퇴행
-정작 특수수사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특수수사가 문제가 된 건 검찰 수사에 대한 외부 통제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과 검찰 중 누가 더 선한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맡든 통제 장치가 없으면 권한 남용은 언제든 발생한다.”
-특검엔 여전히 검사의 수사권이 남아 있다.
“권력이 원하는 수사는 검사들 시켜 효율적으로 파헤치겠다는 뜻이고, 권력을 수사하는 건 검사가 관여 못 하게 한다는 뜻 아닐까.”
-공소기각 사유를 확대한 조항은 이재명 대통령 사건의 공소 취소를 위한 조항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수사 과정에 중대 위법이 있으면 공소 자체를 무효화할 수 있다는 건데, 이렇게 되면 수많은 범죄자들이 법의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 판례를 그대로 입법화했을 뿐이라고 한다.
“사실이 아니다. 기존 판례에선 위법 수사로 취득한 증거는 재판에서 배제되지만, 나머지 증거로 유죄를 입증하면 유죄를 선고할 수 있었다. 개정안은 수사 절차에 하나라도 위법이 있으면 공소 전체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공소 취소를 위한 꼼수일까?
“나는 차라리 ‘정치인 불기소법’ ‘정치인 무죄법’을 만들라 하고, 대신 온국민이 관계되는 형사사법제도만은 그대로 놔두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번 개혁이 역사적 퇴행이라고 했다.
“1945년 해방된 나라의 제도를 설계하던 우리 입법자들은 식민 지배의 도구로써 인권 유린을 자행해온 경찰사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법률가인 검사에게 사법경찰을 지휘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1972년 유신헌법은 검찰을 형사사법의 실질적 중심에 두는 검찰사법으로 이어졌지만, 1995년 영장실질심사제도와 2007년 형소법 개정으로 형사사법의 중심은 법원이 됐다. 그러나 문재인, 이재명 정부의 개혁으로 형사법정에서의 경찰 권한이 다시 막강해졌다. 행정 권력인 경찰이 형사사법의 중심이 됐을 때 우리는 이를 경찰국가라고 부른다.”

◇ 86세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형법학자들은 물론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데 민주당은 왜 밀어붙였을까?
“검찰에 대한 86세대 정치인들의 뿌리깊은 적대감에 더해, 검찰 악마화가 자신들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데 필요했기 때문 아닐까. 검찰 개혁 광풍이 사라지고 사법이 정상화되려면 86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
-현재 한국 정치를 위장 권위주의, 스텔스 권위주의라고 정의했다.
“국민 통합보다는 정치적 분열을 이용하고, 대중 선동을 통해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지으며, 정의라는 달콤한 구호로 대중의 눈을 가려 권위주의 본체를 인식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이 위장 권위주의(stealth authoritarianism)다. 사법제도를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사용하고, ‘민주적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반민주적 입법을 빈번하게 추진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정치 상황과 너무도 유사하다.”
-입법 독재가 삼권 분립을 무너뜨리고 있나?
“다수결이 늘 정당성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히틀러도 의회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 총통이 됐고, 의회가 만든 수권법이 이를 뒷받침했다. 전후(戰後) 다수결의 위험성을 깨달은 인류는 법에 의한 지배를 확립했다. 다수의 의사가 인류의 지혜가 집적된 법리에 반할 때 양보하는 것이 실질적 법치주의다.”
-‘과학법연구회’를 이끌고 있다.
“법과 과학은 대화해야 한다. 현대 과학기술은 천길 낭떠러지 절벽길을 질주하는 마차와 같다. 법학은 그 마차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한편, 법적 논증이 신념의 울타리에 갇혀 객관성을 잃을 때 그것은 폭력이 된다. 과학적 검증의 토대 위에 법적 주장이 펼쳐져야 하는 이유다. 이번 개혁만 해도 문재인 정부의 1차 개혁을 통해 과학적으로 검증할 기회가 있었다. 그로 인해 국민 권익이 오히려 저하됐다면 이 길이 맞는지 의심했어야 하는데, 민주당은 이를 더 심화시켰다.”
-얼마 전 서울대에서 정년 퇴임했다.
“연구실을 비워 달라는 말을 듣고, 권력·지위·명예는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치인들이 새겨야 할 말인데.
“나는 입법자들, 권력자들이 너무 정의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의감에 불타면 자기확신에 빠져 독단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나의 정의가 곧 모두의 정의는 아니다.”
☞이상원
1960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랐다. 광성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법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춘천지법, 서울지법 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냈다. 2008년 서울대 법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임용됐다. 한국경찰법학회장,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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