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째 소리 만진 황병준 “좋은 음악은 자꾸 크게 듣고 싶어져요” ②

전하영 기자 2026. 8. 2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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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딩 엔지니어·사운드미러코리아 대표 황병준
‘좋은 소리’ 좇아온 28년…현장감·본질에 집중
“시간 갈수록 이 일 하길 잘했다는 순간 많아져”
레코딩 엔지니어 황병준. 사진 남궁유

레코딩엔지니어라는개념이지금보다낯설던시절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국내에 미국식 마스터링 스튜디오가 없었다. 덕분에 소문이 빨리 나서 당시 유명한 뮤지션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런데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과 비즈니스를 잘하는 건 별개지 않은가. 초반엔 클라이언트랑 정말 많이 싸웠다. (웃음) 나는 군소리 없이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대로 해 드리는 성격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원하는 걸 먼저 해 드리고 그 다음에 슬쩍 제안할 줄도 알아야 했는데 그런 요령이 없었다. 의견을 굽혀야 할 때는 차라리 크레딧에서 내 이름을 빼 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만큼명확하게추구하는소리가있었던건가
점점 크게 듣고 싶어지는 음악, 그게 정말 좋은 사운드라고 생각한다. 앞뒤의 입체감도 있고 좌우의 공간감도 있고, 나를 둘러싸는데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더 크게 듣고 싶어지는 소리. 그런 입체감을 만들기 위해 현장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영상을 보면 그랜드캐년이나 에베레스트처럼 일반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없는 곳을 대신 촬영해서 보여주지 않나. 이 일도 비슷한 것 같다. 실제로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코앞에서 듣는 경험을 하게 해 주는 거다.

스튜디오보다필드레코딩을선호하는이유인가
레코딩 엔지니어들이 하는 말 중에 'more real than reality'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 소리를 만들기 위한 내 원칙은 'Less is more'다. 모든 양념을 빼는 거다. 그럴수록 사운드에서 깊이감도 느껴지고 눈앞에 광활한 풍경도 펼쳐진다.

그지향점이잘반영된작업이있다면.
한번은 송광사 새벽 예불 녹음한 걸 듣고 김창완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그렇게 해서 김창완밴드의 산울림 데뷔 35주년 기념 앨범 '분홍굴착기'에 참여하게 됐는데, 그때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무조건 라이브 녹음일 것, 스튜디오 대신 공연장에서 진행할 것. 보통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면 각자 방에 들어가서 따로 녹음하고 후반 작업에서 섞는다. 하지만 공연장에선 현장의 모든 사람이 함께 소리를 들으며 녹음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나도, 김창완 선생님도 정말 만족했던 작업이었다. 사흘 동안 녹음 예정이었던 걸 6시간 만에 다 끝냈다.

엔지니어와뮤지션모두만족한작업이었다는말이인상적이다
엔지니어 입장에선 정말 찬사 같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에 남는 작업이 하나 더 있다. 2024년 군산의 한 재즈클럽에서 재즈 뮤지션 말로의 라이브 녹음을 진행했다. 국내 재즈 라이브 음반은 주로 콘서트 홀에서 녹음하지만, 미국은 클럽 라이브도 흔하다. 우리도 그런 작업을 해 보자며 아직 문도 열지 않은 클럽에 관객 70여 명을 모아놓고 밥 먹고 와인 마시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녹음을 했다.

그렇게 나온 음반이 'Malo Live at Muddy'다. 말로 씨가 "처음으로 작업이 끝난 뒤 다시 듣고 싶은 음반"이라고 하더라. 본인은 오장육부를 써서 있는 힘껏 노래하는데 막상 녹음된 걸 들어보면 항상 그 느낌이 다 사라져 있다는 거다. 그런데 이번 녹음에선 그게 다 느껴진다고 했다. 그걸로 한국대중음악상도 받았다. (웃음)
레코딩 엔지니어 황병준. 사진 남궁유

국악에대한애정을자주드러냈다. 잘알려지지않은우리소리를해외에알리고싶다고언급하기도했는데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 선생님께 배운 건데, 서양 음악이 화음이며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음악이라면 우리 음악은 정말 직설적이고 솔직한 음악이다. 전자가 우아하다면 후자는 영적이라고 해야 할까. 있는 그대로 소리를 내는데, 자연에 가까운 그 상태가 오히려 작위적이지 않고 조화롭다.

치장이없다는점에서추구하는소리와 비슷한것같다. 본질을중시한다고느껴진다
'원판불변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소리도 좋은 재료를 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후반 작업에서 깎고 다듬어도 원본이 별로면 한계가 있다. 그래서 레코딩 엔지니어는 창의력과 순발력을 꼭 필요로 한다. 제한된 시간과 환경 안에서 최대한의 재료를 뽑아내야 하니까.

스스로생각하기에기술자와예술가중어느쪽에더가까운가
나는 조력자다. 예술가의 결과물이 멋있게 표현될 수 있도록 자락을 깔아주는 사람. 내가 드러나는 포지션은 아닌 것 같다.
레코딩 엔지니어 황병준. 사진 남궁유

안전한길에서벗어나나만의트랙을만들어온셈인데, 후회되는순간은없었나
지난 30년 동안 교단에 선다든가 다른 부업을 해본 적 없이 엔지니어와 프로듀서로만 살아왔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도 있었고, 그럴 때면 별생각이 다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이 일 하길 너무너무 잘했다' 싶은 순간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내 나이가 지금 60인데 지금도 주식, 골프, 아파트 같은 주제엔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요즘 뭐가 재밌는지, 이 스피커 소리가 얼마나 끝내주는지, 신나서 그런 얘길 한다. 오래 일하다 보니 아티스트와 비즈니스맨을 구분하는 눈도 생겨서 '진짜 아티스트'랑 작업하면 정말 행복하다. 수다 떨다 보면 번뜩번뜩한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거다. 그럴 때마다 '야, 이 일 하길 너무 잘했다' 생각한다.

좋아하는일을한다는건쉽게나이들지않는일인것같다. 하지만현실적인이유들로고민하는 이들도많은데
너무 미리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 친구들은 안 될 경우를 대비해 플랜 B, C까지 짜두고 병행하더라. 그런데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에 미친듯이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실패해서 결국 다른 걸 하게 되더라도 뭔가에 미쳐본 경험은 다음 커리어에 엄청난 도움이 되니까. 나도 교회 다니던 시절에 찬송을 워낙 열심히 한 덕에 웬만한 찬송가는 소프라노, 테너, 베이스까지 다 부를 줄 알게 됐다. 디렉팅까지 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된 것도 그 덕분이다.

본인이생각하는음악의매력은
음악은 순간의 예술이다. 지나가 버리면 머릿속에 기억으로만 남고, 영상처럼 2배속이나 4배속으로 들을 수도 없다. 그 순간에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는 게 내겐 굉장히 의미가 있다. 듣는 사람의 감정을 완전히 뒤흔들고, 평소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고양된 상태로 들어가게 한다는 점도 그렇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작곡가의 감정과 사상을 가락과 화음과 리듬으로 표현한 것이 음악'이라고 정의하셨는데, 사실은 그냥 그 순간에 좋으면 된 거다. 내가 느끼는 대로 들으면 된다. 쉬운 음악도 어려운 음악도 없다.

*황병준사운드미러코리아대표
레코딩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 서울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뒤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뮤직 프로덕션과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세계적인 녹음·마스터링 전문 회사 사운드미러를 거쳐 2000년 한국 지사를 설립했다. 이후 클래식과 오페라를 중심으로 음반 작업을 이어오며 오페라 'Elmer Gantry'와 라흐마니노프 'Vespers: All-Night Vigil'로 그래미 어워드를 두 차례 수상했다. 서울시향·KBS교향악단 등 클래식 음반부터 영화 OST·국악·재즈·가요, 전시·미디어아트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사운드를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