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m 빌딩 속 붉은 원통…'대피해오는 도시'를 만들다[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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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흔들린다는 것은 진동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에너지가 사라져야 흔들림도 멈춥니다." 지난달 구마모토현 강진에 이어 23일 새벽 이바라키현 남부에서도 규모 5.9의 지진이 발생해 도쿄에서 약 5년 만에 진도 5약이 관측됐다. 잇단 지진으로 초고층 건물의 대응력이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일본 '방재의 날'(9월 1일)을 열흘가량 앞둔 지난 21일, 높이 약 330m·지상 64층의 일본 최고층 빌딩인 도쿄 아자부다이힐스 모리JP타워 33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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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진장치 1810기, 진동에너지를 열로 바꿔
정전에도 인구 1만명 규모 전력 자체 공급
식량·식수·간이화장실 등 사흘치 비축
"도망치는 도시에서 대피해오는 도시로"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건물이 흔들린다는 것은 진동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에너지가 사라져야 흔들림도 멈춥니다." 지난달 구마모토현 강진에 이어 23일 새벽 이바라키현 남부에서도 규모 5.9의 지진이 발생해 도쿄에서 약 5년 만에 진도 5약이 관측됐다. 잇단 지진으로 초고층 건물의 대응력이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일본 '방재의 날'(9월 1일)을 열흘가량 앞둔 지난 21일, 높이 약 330m·지상 64층의 일본 최고층 빌딩인 도쿄 아자부다이힐스 모리JP타워 33층을 찾았다.
벽면 점검창 너머로 굵은 붉은 원통형 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오일댐퍼였다. 지진이 나면 원통 안의 점성 높은 오일이 움직이며 진동 에너지를 열로 바꾼다. 열은 오일과 실린더의 온도를 높인 뒤 주변으로 빠져나간다.
■진동에너지 열로 바꾸는 제진장치 1810기
모리JP타워에는 이같은 오일댐퍼 304기와 점성체 제진벽 302기, 철골 가새 1200기, 능동형 질량감쇠장치(AMD) 4기 등 제진장치 1810기가 설치됐다. 오일댐퍼와 제진벽은 작은 흔들림을 줄이고 철골 가새는 거대지진의 충격을 흡수한다. 옥상에 설치된 AMD는 건물과 반대로 움직여 남은 흔들림을 줄인다.
도야마 가이 모리빌딩 구조설계부 과장은 "법정 내진기준은 지진 뒤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요구하지 않는다"며 "그보다 두 단계 가량 높은 수준을 목표로 했다"고 말했다. 층별 센서와 피해도 추정시스템 'e-Daps'는 구조체 손상과 우선 점검할 층을 즉시 알려준다.
지하 5층으로 내려가 발전기실 문을 열자 귀를 먹먹하게 하는 소리가 윙윙 울렸다. 안에서 5200㎾급 가스엔진 발전기 2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지카우치 요시히로 도라노몬 에너지네트워크 과장은 "인구 1만명 규모 도시가 쓸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부 전력이 끊겨도 자체·비상발전기와 축전지로 전력을 공급하고 약 400도의 배기가스는 냉난방에 재활용한다.
1만200㎥ 규모 축열조와 방재용 우물도 갖췄다. 평소 냉방에 쓰는 물은 단수 시 발전설비 냉각수와 화장실 세정수로 돌린다.
■韓 해남 지진 지속..방재체계 必
지하 4층 비축창고에는 생수와 식량, 기저귀, 여성용품, 에어매트, 간이화장실이 쌓여 있었다. 대중교통 두절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귀가곤란자'들이 사흘간 쓸 물자다. 비용은 도쿄도와 미나토구가 전액 지원한다.
도쿄를 포함한 수도권 남부에서 30년 내 규모 7급 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70%다. 귀가곤란자는 최대 84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도쿄도는 재난 직후 귀가 인파가 구조·구급 활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기업에 직원들의 일제 귀가를 자제시키고 사흘치 식수와 식량 등을 비축하도록 조례로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 귀가곤란자용 물자까지 확보한 기업은 40%에 못 미친다.
모리빌딩은 이 문제에 대비해 1995년 한신·아와지대지진 이후 '도망치는 도시에서 대피해오는 도시로'를 방재 원칙으로 세웠다. 롯폰기힐스와 도라노몬힐스 등에서 약 1만4000명을 수용하고 36만끼를 제공할 수 있다. 도쿄 23구에서 진도 6약 이상이 관측되면 전 직원이 재해 대응 체제로 전환한다. 주요 시설 인근 직원 약 300명은 두 달마다 구조와 물자 배포 등을 훈련한다.
아자부다이힐스도 재난 때 오피스 로비와 상업시설 복도, 두 지하철역을 잇는 750m 지하통로를 대피 공간으로 바꾼다. 평소 업무·쇼핑·통행 공간이 3600명을 사흘간 수용하는 작은 도시로 전환되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지진 대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23일 해남군에서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해 위기경보가 '주의'로 상향됐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 14일 이후 규모 2.0 이상 7차례를 포함해 모두 71차례의 지진이 이어졌다. 이에 건축물의 내진 성능을 넘어 전력·용수와 대피 공간까지 아우르는 방재 체계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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