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난면’·伊 ‘생면’ 서로 닮은 철학… 한 그릇에 ‘Cook’ [유한나가 만난 셰프들]

2026. 8. 22.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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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교동에는 김낙영 셰프가 서로 다른 나라의 음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 두 곳이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 지역의 생면 파스타를 전문으로 하는 카밀로라자네리아 2호점과 조선시대 고조리서에 기록된 난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교난면방이다.

한국 전통 음식을 공부하던 중 조선시대 고조리서 속 '난면'이라는 음식을 만나게 됐다.

무엇보다 이 메뉴가 특별한 이유는 한국의 난면과 이탈리아 생면 파스타가 서로 다른 문화가 아니라 같은 원리와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접시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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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로라자네리아 김낙영 셰프
건축 일하다 아내 권유에 요리사 길로
이탈리아 유학하며 생면 파스타 익혀
첫 시그니처 메뉴 ‘라자냐’ 선봬 입소문
한국전통음식에도 관심… ‘난면’ 알게돼
연구하다보니 두 음식 유사점도 발견
이탈리안·코리안 스타일의 비빔국수
‘들기름 비빔 난면과 모르타델라햄’ 탄생
서울 서교동에는 김낙영 셰프가 서로 다른 나라의 음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 두 곳이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 지역의 생면 파스타를 전문으로 하는 카밀로라자네리아 2호점과 조선시대 고조리서에 기록된 난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교난면방이다. 하나는 이탈리아, 다른 하나는 한국의 전통을 이야기하지만 김 셰프에게 두 공간은 하나의 철학으로 연결된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생면’입니다.”
 
김낙영 셰프
그가 말하는 생면은 단순히 반죽한 면을 뜻하지 않는다. 밀가루와 계란이라는 단순한 재료가 사람의 손을 거치고 시간이라는 과정을 지나 하나의 문화가 되는 일이다. 국적은 달라도 좋은 면이 만들어지는 원리와 철학은 놀라울 만큼 닮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실 김 셰프의 첫 번째 직업은 요리사가 아니었다. 대학에서 실내건축을 전공한 그는 공간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건축 일을 했다. 사람들의 삶이 머무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 즐거웠지만, 건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삶을 고민하게 됐다. 그때 등을 가장 강하게 밀어준 사람은 아내였다. 독일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시절 만난 아내는 연애를 하는 동안 그가 만들어 주던 음식들을 누구보다 좋아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 때 가장 행복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기도 했다. “공간을 설계하는 대신 사람들의 맛있는 기억을 설계해 보면 어떻겠냐”는 아내의 한마디는 결국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분야를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국내에서 처음부터 배우기보다 본고장에서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던 그는 곧바로 이탈리아 ICIF 요리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 후에는 일치프리아니에서 이탈리아 셰프 세르조 오토베로 밑에서 일하게 됐다. 통역을 맡으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 덕분에 요리 기술뿐 아니라 음식을 대하는 태도와 철학까지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북부 이탈리아 출신인 스승에게 생면 파스타를 집중적으로 배우면서 그는 반죽과 숙성, 밀가루의 종류, 두께와 형태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차이를 몸으로 익혔다. 그의 공부는 이탈리아에서 끝나지 않았다. 우연히 듣게 된 조희숙 교수의 한식 강연은 또 다른 전환점이 됐다. 조 교수의 소개로 한국전래음식연구회에서 활동하게 됐고, 이말순 선생에게 반가음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선생에게서는 음식을 역사와 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익혔다.

라자냐
2017년 그는 서교동의 작은 골목에서 생면 파스타 전문점 카밀로라자네리아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생면 파스타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레스토랑은 거의 없었다. 건면이 익숙했던 시장에서 그는 밀가루의 종류와 배합, 반죽의 수분, 숙성 시간, 면의 두께와 형태에 따라 전혀 다른 맛과 식감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낯선 도전이었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카밀로라자네리아는 어느덧 9년째 사랑받는 레스토랑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 전통 음식을 공부하던 중 조선시대 고조리서 속 ‘난면’이라는 음식을 만나게 됐다. 처음에는 오래된 문헌 속 음식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조리법을 읽고 직접 반죽을 만들어 보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계란과 밀가루를 사용해 반죽하고 숙성한 뒤 얇게 밀어 삶아내는 과정은 그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이탈리아 생면 파스타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그때부터 고조리서에 담긴 가치와 조리 원리를 오늘의 식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탄생한 공간이 바로 2024년 문을 연 서교난면방이다. 이런 노력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5·2026 빕 구르망’ 선정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김 셰프는 수상보다 자신이 걸어온 방향이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고 말한다. 그는 요리사는 늘 좋은 재료를 선택해야 하고, 청결을 지켜야 하며, 반복되는 노동을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장사라는 논리에 쉽게 흔들리지 않기 위한 윤리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위에 시간과 문화가 더해질 때 비로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음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김 셰프의 첫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카밀로라자네리아의 라자냐다. 그는 라자냐를 단순한 오븐 요리가 아니라, 생면이라는 재료가 가장 깊이 빛나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직접 반죽한 생면을 얇게 밀어 한 장 한 장 겹겹이 쌓고, 오랜 시간 정성껏 끓여낸 볼로냐식 라구와 부드러운 베샤멜소스를 반복해 올린 뒤 천천히 구워 완성한다. 입안에서는 생면 특유의 탄력과 부드러움이 차례로 느껴지고, 여러 겹의 면 사이사이에 스며든 라구의 깊은 풍미가 오래 이어진다.

들기름 비빔 난면과 모르타델라 햄
두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서교난면방의 모르타델라 햄과 들기름난면이다. 이 메뉴는 조선시대 난면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이탈리안·코리안 스타일의 비빔국수다. 난면은 100% 우리밀과 계란으로 직접 반죽해 숙성한 뒤 삶아내고, 여기에 김 셰프가 지리산에서 직접 담근 집간장과 매헌농장의 국산 저온압착 들기름으로 담백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더했다. 함께 곁들이는 모르타델라 햄은 고대 로마 시대까지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샤퀴테리다. 얇게 슬라이스한 모르타델라를 난면과 함께 싸 먹도록 구성해, 고소한 들기름의 향과 은은한 감칠맛, 햄의 부드러운 풍미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완성했다. 김 셰프는 이 메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아내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식문화를 억지로 섞기보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방향을 함께 고민했고, 그 과정이 지금의 메뉴를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감을 줬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무엇보다 이 메뉴가 특별한 이유는 한국의 난면과 이탈리아 생면 파스타가 서로 다른 문화가 아니라 같은 원리와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접시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 셰프에게 서교난면방의 음식은 과거를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오래된 식문화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고, 현재의 식탁 위에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현재진행형의 작품이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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