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승이자 실천승… 사회참여·불교개혁에 큰 족적 [명진스님 입적]

이훈성 2026. 8. 2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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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제주에서 해상 사고로 입적한 명진스님은 조계종에서 불교 개혁과 사회 참여에 앞장서온 진보 인사이자 수행에 정진해온 수좌로 평가받는다.

1950년 충남 당진에서 출생한 명진스님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1969년 탄성스님을 은사로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한 후 혜정스님을 계사로 1974년 사미계, 이듬해 구족계를 받았다.

스님은 그해부터 2002년까지 종단 최고 의결기구인 조계종 중앙종회(11·12대)에서 의원(11대)과 부의장(12대)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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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스님 세수 76세, 법랍 52년으로 입적]
출가 후 전국 선방서 수행 정진 '40안거 성만' 이뤄
87년 민주항쟁·94년 조계종 개혁에 주도적 참여
봉은사 주지 맡아 재정 공개·1000일 기도 주목
이후 MB정부·종단과 대립… 종단과는 최근 화해
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스님이 22일 제주에서 입적했다. 사진은 스님이 2021년 3월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22일 제주에서 해상 사고로 입적한 명진스님은 조계종에서 불교 개혁과 사회 참여에 앞장서온 진보 인사이자 수행에 정진해온 수좌로 평가받는다. 세수 76세, 법랍 52년.

1950년 충남 당진에서 출생한 명진스님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1969년 탄성스님을 은사로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한 후 혜정스님을 계사로 1974년 사미계, 이듬해 구족계를 받았다. 1975년 송광사 안거를 시작으로 해인사 봉암사 용화사 상원사 등의 선방에서 20년 이상을 보내며 '40안거 성만(成滿)'을 이뤘다. 매년 여름과 겨울, 각 3개월간의 집중 참선 수행을 뜻하는 안거를 중도 포기 없이 40차례 치렀다는 의미다.

수행에 매진하던 스님이 '운동권 스님'으로 주목받게 된 건 1986년 군부정권의 종교 통제에 맞서 9월 해인사에서 전국승려대회, 10월 봉은사에서 법난 규탄대회를 주도하다가 구속되면서였다. 이듬해엔 중앙승가대학이 있던 개운사의 주지를 맡아 이곳을 거점으로 불교탄압대책위원회를 이끌며 6월 민주항쟁에 동참했다.


'운동권'이 된 선방 수좌

봉은사 주지에서 물러난 이듬해인 2011년 4월 10일 오전 서울 남산공원에서 명진스님이 야외법회에서 불자들에게 법문을 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스님은 현실에 눈을 뜬 계기로 1984년 해인사에 머물 때 지명수배된 운동권 청년이 가져온 광주민주화운동 비디오를 보고 충격을 받은 일을 꼽는다. 한 인터뷰에선 "(사회)사상과 운동은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메마르고 몰락하게 된다"며 "출가승은 세속을 다 버렸으므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게 교리상 원칙이지만, 수도에만 정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회활동 하는 이들이 자신을 돌이켜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1988년 소장파 승려 중심으로 조직된 대승불교승가회 초대 회장을 맡아 조계종단 내부 기득권·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 단체는 1994년 3선 연임을 시도하던 서의현 총무원장을 퇴진시키고 비상 입법·행정 기구인 개혁회의를 출범시킨 주역이 됐다. '94년 종단개혁'으로 불리는 개혁회의 조치는 권력 분립, 총무원장 선거인단제 도입, 재정 투명화 등 조계종 기틀을 일대 혁신하는 계기가 됐다.

스님은 그해부터 2002년까지 종단 최고 의결기구인 조계종 중앙종회(11·12대)에서 의원(11대)과 부의장(12대)을 맡았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를 계기로 그해 조계종 대북·통일 전담기구인 민족공동체추진본부를 출범시키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봉은사 주지 이후 종단과 오랜 갈등

2020년 6월 15일 서울 중구 우리함께빌딩에서 열린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국가·조계종 손배소 기자회견에서 명진스님(가운데)이 관계자들과 소송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님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건 2006년 서울 강남구 봉은사 주지가 되면서다. '부자 절'로 인식되던 봉은사에 부임해 사찰 재정을 공개하고 1,000일 동안 산문을 벗어나지 않고 기도에 정진해 불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는 4대강 사업, 민주주의 후퇴 등을 문제삼아 비판했고 1,000일 기도 기간이 끝난 뒤 제일 먼저 용산참사 현장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자승스님 총무원장(2009~2017 재임) 시절이던 2010년 조계종이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한 일을 계기로 명진스님은 최근까지 종단과 갈등을 빚어왔다. 봉은사 직영사찰화 당시엔 즉각 "안상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가 자승스님에게 압력을 가했다"며 정부 개입설을 제기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나중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불법사찰 당한 사실을 확인해 2020년 국가와 조계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2023년 조계종 상대 소송은 취하, 2025년 1심 패소)

조계종은 명진스님의 지속적 종단 비판과 봉은사 주지 시절 사찰 재산 관련 결정을 문제삼아 2017년 승적 박탈 징계를 내렸고, 스님은 이에 맞서 2023년 징계처분 무효확인 소송과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다만 이 송사는 명진스님이 2심까지 일부 승소한 뒤 올해 2월 양측 합의로 스님 승적을 회복하고 상고 없이 매듭지었다.

조계종 측은 스님이 제주 남선사에 머물던 중 입적했지만 정식 소속 사찰은 충북 보은군 법주사라고 밝혔다. 조계종 관계자는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장례는 소속 교구인 법주사가 주도할 것"이라며 "승적은 회복됐지만 직책이 있는 건 아니라서 교구 스님들이 소속된 문도회가 주관하는 문도장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우태경 기자 taek0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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