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판을 평정한 억척 아줌마 “이젠 보디빌딩 태극마크 노려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 기자 2026. 8. 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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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에 사는 노은수 씨(46)의 삶은 '늦게 피는 꽃'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사범대 체육교육과에 씨름 특기생으로 들어온 친구들이 있어 씨름을 배우게 됐죠. 그 친구들을 지도하던 분이 제게 제주도에서 열리는 생활체육 대통령배 씨름대회에 나갈 것을 권유했죠. 제주도로 여행 간다는 말에 솔깃해 경남 지역 선발전에 나가 2위를 했는데, 전국에서는 우승했어요. 기분이 너무 좋았죠. 그런데 당시 생활체육 규정상 우승한 선수는 대회에 못 나오게 돼 있어서 그것으로 끝이었죠."

노 씨는 지난해에 처음으로 경남 지역 보디빌딩 대회 비키니피트니스 165cm 이상급에 도전해 2위를 했다.

꽃집 사장, 생활체육 씨름 선수, 실업 씨름 선수, 그리고 지금의 보디빌더에 이르기까지 그는 인생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곡선을 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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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에 사는 노은수 씨(46)의 삶은 ‘늦게 피는 꽃’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그는 원래 꽃집을 운영하던 플로리스트였다. 국립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를 졸업했지만, 체육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평범한 자영업자로 살던 그가 마흔을 넘긴 나이에 씨름 선수로 실업팀에 스카우트됐다. 이제는 보디빌딩 국가대표를 목표로 매일 새벽 헬스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노은수 씨가 씨름대회에 참가해 경기하는 모습. 노은수 씨 제공
노 씨가 씨름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이었다.

“사범대 체육교육과에 씨름 특기생으로 들어온 친구들이 있어 씨름을 배우게 됐죠. 그 친구들을 지도하던 분이 제게 제주도에서 열리는 생활체육 대통령배 씨름대회에 나갈 것을 권유했죠. 제주도로 여행 간다는 말에 솔깃해 경남 지역 선발전에 나가 2위를 했는데, 전국에서는 우승했어요. 기분이 너무 좋았죠. 그런데 당시 생활체육 규정상 우승한 선수는 대회에 못 나오게 돼 있어서 그것으로 끝이었죠.”

노 씨는 대학 졸업한 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았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고 싶은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2017년, 그는 다시 씨름판으로 돌아왔다. 당시 꽃집을 운영하며 생활체육 씨름을 병행했다. 함께 운동하는 친구들이 전국대회에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과거의 아쉬움이 떠올랐다. 그래서 대한씨름협회 규정을 찾아보니 출전 규정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약 20년 만인 2020년 다시 전국대회 무대에 섰다.

결과는 놀라웠다. 대통령배, 전국생활체육대축전, 여자천하장사대회 등 총 여덟 차례나 전국 우승을 거뒀다. 씨름왕대회에선 2021년까지 2연패 했다. 60kg급 최강자였다. 하지만 경쟁 상대가 없다 보니 생활체육 대회에서 기피 선수가 됐다. 대회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이런 활약상을 눈여겨본 거제시청 씨름단 감독이 노 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돈을 버는 실업팀 선수가 된 것이다. 2022년부터 2년간 거제시청 소속으로 뛰었다. 노 씨는 “이 나이에도 뭔가 새롭게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그에게 ‘어릴 때부터 운동 능력이 뛰어났느냐?’고 물었다.
“제가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어요. 여름에는 강에서 수영하고 겨울에는 산을 뛰어다녀서인지 어릴 때부터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죠. 학창 시절 교내는 물론 지역 육상 대회 투척 종목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죠.”

거제시청 씨름 선수(왼쪽)로 활약했던 노은수 씨가 지금은 보디빌더(오른쪽)로 국가대표를 꿈꾸고 있다. 노은수 씨 제공
하지만 실업 씨름선수의 현실은 기대만큼 순탄치는 않았다. 제대로 씨름 기술을 배우지도 못한 상태에서 나이와 부상 위험 등을 고려한 팀의 판단에 충분한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 전국 5위권을 맴돌았다. 준우승하기도 했지만, 재계약에는 이르지 못했다. 2023년 말로 선수 생활을 접었다.
노은수 씨가 보수볼 위에서 스쾃을 하고 있다. 생활체육 씨름으로 시작해 실업팀 선수로까지 활약한 그는 은퇴한 뒤 급격히 증가한 체중을 감량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생활체육 보디빌딩 선수로 전향했다. 노은수 씨 제공
운동을 그만두자, 체중이 급격히 불었다. 운동 삼아 씨름은 계속했지만 1부인 실업 선수로 뛰었기 때문에 다시 생활체육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보디빌딩이었다. 보디빌딩도 생활체육 대회가 많았다. 웨이트트레이닝은 그가 씨름 능력을 키우기 위해 2019년부터 꾸준히 해 오던 보조 운동이었다. 바로 몸만들기에 들어갔다.

“씨름할 땐 힘을 키우기 위해 스쾃이나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같은 3대 운동을 무게 위주로 들었어요. 보디빌딩은 근육 부위별로 섬세하게 나눠서 훈련해야 합니다. 덤벨도 그립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각 부위를 자극하고, 밸런스를 위해 보수볼 위에서 스쾃하는 등 불균형한 자세를 일부러 만들어 훈련의 다양성을 더합니다. 너무 재밌어요”
금세 보디빌딩에 빠져들었다. 지난해부터 대한보디빌딩협회 코치아카데미를 찾아 제대로 된 근육운동 방법 및 재활, 영양학 등도 공부했다. 보디빌딩 생활체육지도자 2급 자격증도 땄다. 생활체육 씨름 2급, 전문 씨름지도자 2급 자격증도 차례로 취득했다. 향후 지도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노은수 씨가 레그프레스를 하고 있다. 노은수 씨 제공
“사실 보디빌딩 트레이너로서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고자 여러 헬스장에 지원했지만, 젊은 강사를 선호하는 업계 분위기 속에서 번번이 기회를 얻지 못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100세 시대라서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한 트레이너도 있어야 하잖아요.”

노 씨는 지난해에 처음으로 경남 지역 보디빌딩 대회 비키니피트니스 165cm 이상급에 도전해 2위를 했다. 이제 보디빌딩 국가대표란 목표를 향해 달린다. 보디빌딩은 연령별 마스터스 국가대표에 선발되면 국제대회에도 출전할 수 있다.

노 씨는 현재 60kg급 씨름 선수로 등록된 상태를 유지하며 체중 감량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경기 전날 열리는 계체에서 유니폼을 입은 채로 60kg 미만이어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식단 관리를 병행하며 체중을 조절하고 있다.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과 함께 지역 대회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실업팀 선수들과 맞붙어야 하지만,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씨름대회에도 출전한다. 그는 “예전에는 우승하고 싶어서 씨름대회에 나갔지만, 지금은 그냥 즐기면서 체중 관리 차원에서 참가한다”고 했다.

노은수 씨가 한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노은수 씨 제공
보디빌딩으로 그의 첫 도전은 10월 31일 열리는 경남 생활체육대축전이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경남 대표가 되고 전국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전국대회 성적에 따라 보디빌딩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있다.

그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된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남편과 피트니스센터에 도착해 몸을 풀고 4시 반부터 1시간 반 동안 근육을 만든다. 이후 1시간가량 달리기나 걷기 등 유산소 운동으로 지방을 태운다. 노 씨는 “꽃집 할 때부터 장사하기 위해 새벽에 훈련하는 습관을 들였다. 이렇게 해야 낮에 갑자기 일이 생겨도 운동을 빼먹지 않는다”고 했다.

노은수 씨가 등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하고 있다. 노은수 씨 제공
꽃집 사장, 생활체육 씨름 선수, 실업 씨름 선수, 그리고 지금의 보디빌더에 이르기까지 그는 인생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곡선을 그려왔다. 그는 지금도 “땀을 흘리는 것 자체가 힘이 솟는 일”이라며 새벽마다 바벨을 잡는다. 몸으로 증명해 낸 그의 궤적은, 나이가 들어도 삶에서 새로운 챕터를 얼마든지 써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취미로 시작해 실업 씨름 선수가 됐어요. 보디빌딩에서도 제 목표를 이루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도전하는 삶이 즐겁습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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