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발목 잡는 ‘보이지 않는 손’, 미국 장기국채 금리의 정체[경제뭔데]

김상범 기자 2026. 8. 2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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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들이 쓰는 [경제뭔데] 코너입니다. 한 주간 일어난 경제 관련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전해드립니다.
뉴욕증권거래소.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국내 증시에 실망하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지난달까지 추락을 거듭하던 코스피는 8월 들어 약간 반등하긴 했지만 여전히 6월의 최고치 대비 25% 이상 떨어져 있는 상태인데요. 주도주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사상 최대 실적, 초대형 주주환원 같은 호재성 뉴스가 나와도 주가는 마치 발목에 모래주머니라도 단 것처럼 움직임이 둔합니다. 상반기의 시원시원한 오름세가 돌아오긴 하는 걸까요?

주식 전문가들은 이럴수록 ‘매크로(Macro)’를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개별 종목에서 시야를 넓혀, 기업과 산업을 둘러싼 거시적인 경제 환경을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경제뭔데]에서는 최근 우리 증시를 억누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 ‘미국 장기국채 금리’를 알아보겠습니다.

30년짜리 약속의 금리가 왜 뛸까

장기국채, 약간은 생소한 단어입니다.

개념은 간단합니다. 정부가 투자자에게 돈을 빌리는 대신, 10년 혹은 30년에 걸쳐 이자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증서입니다.

미국 장기 국채는 채권시장의 대표적인 안전자산입니다. 그런데 최근 금리가 최근 심상치 않게 치솟고 있습니다. 지난 17일(현지시간)에는 30년물 금리가 2007년 이후 19년 만의 최고치인 5.3%를 넘어섰습니다.

미국 국채의 매력이 예전만 못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미국 정부로서는 돈을 빌리기 위해 금리를 더 얹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 찍어내는 채권 금리가 오르면, 기존에 낮은 금리로 발행됐던 채권의 가격은 자연히 떨어집니다. ‘금리 상승은 곧 채권가격 하락’이라는 등식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번 금리 상승은 조금 특이합니다. 최근 미국 고용시장이 약화 조짐을 보이고 인플레이션 지표도 둔화되면서,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추가로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졌습니다. 기준금리 인상 우려가 낮아지면 장기채 수요가 늘면서 금리도 내려가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 흐름이 나타나고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갚을 사람’, 즉 미국 정부를 향한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겁니다. 이 채권을 10년, 30년 만기까지 들고 있을 때 과연 미국 정부가 원금을 온전히 갚아줄까 하는 의구심이 시장에서 커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 정부의 빚이 빠르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미 연방정부 부채는 8월 기준 40조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연간 재정적자는 GDP 대비 6%, 금액으로 약 1조8000억달러 수준입니다. 이를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이 쏟아지면서, 순이자 비용만 연간 1조달러를 넘어설 전망입니다. 하루 평균 약 28억달러, 주당 약 30조원 규모로, 한국 정부의 1년 예산(약 730조원)을 미국은 약 6개월치 이자로만 지급하고 있는 셈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정책과 국방비를 연 1조5000억달러로 50% 이상 늘리겠다는 공약이 맞물리면서 재정 부담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키트 주크스 글로벌 외환전략 책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미 공공부채 수준이 GDP 대비 100%에 이르고 재정적자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 의지가 갈수록 문제가 될 것”이라며 “결국 미국은 재정을 긴축하거나, 높은 차입비용을 받아들이거나, 달러 약세를 용인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돈 빌리려는 사람이 미국 정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경쟁자도 늘었습니다. 인공지능(AI) 인프라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는 빅테크 회사들입니다.

엔비디아의 AI칩,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고성능 메모리 등을 사들이기 위해 이들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회사채를 찍어 자금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미 정부의 국채와 빅테크의 회사채가 같은 자금줄을 두고 경쟁하면서, 국채도 금리를 높이지 않고는 팔리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인플레이션 우려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장기화하며 국제유가가 반등해 물가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보상으로, 장기채에 더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장기채 금리 오르면 금융시장·주택시장에 부담

미국 정부만 돈 빌리기 어려워진 게 아닙니다.

미 국채금리는 사실상 세계 채권시장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미 장기금리가 오르면 투자자들은 다른 나라 정부에도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됩니다.

한국 국고채 30년물 금리도 지난 18일 사상 최고치인 4.751%를 기록했습니다. 한국뿐만이 아닙니다. 독일 30년물 국채금리도 15년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고, 일본 30년물 금리 역시 역대 최고치에 근접했습니다.

장기채 금리가 계속 오르면 부작용이 많습니다. 우선, 정부의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도 함께 올라 가계에 부담이 되고, 주택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 정부도 대응에 나섰습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 재무부는 장기 국채를 대상으로 한 재매입, 즉 바이백 규모를 2배(회당 20억→40억달러)로 늘리는 긴급 조치를 다음 달부터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장 금융시장은 ‘반짝’ 했습니다. 소식이 알려진 20일 코스피 지수도 5.89% 올랐습니다.

그러나 정말 ‘반짝 효과’에 그쳤습니다. 근본 원인, 즉 재정적자와 국채 초과공급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발표 직후 잠시 내려갔던 30년물 금리는 하루 만에 다시 5%대 중반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장기채 금리 상승은 국내 주가에도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국채만 들고 있어도 상당한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 굳이 위험을 지고 주식을 살 필요가 없어집니다. 미 장기채 금리 상승 뉴스가 최근 증시에 악재로 작용한 이유입니다.

이를테면 지금 미국 장기채 금리는 증시를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인 셈입니다.

또한 금리가 오르면 같은 미래 이익이라도 현재가치는 낮게 평가되므로,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가 주가에 많이 반영된 고밸류에이션 성장주·기술주가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습니다.

주식뿐만이 아닙니다. 국고채 금리, 특히 5년물·10년물 금리는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 산정의 기준이 됩니다. 국채금리가 오르면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도 따라 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자 부담이 커진 실수요자들의 매수 여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기채 금리가 쭉쭉 오르면서 주식을 비롯한 자산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이런 흐름을 단숨에 돌이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바이백 같은 일시적 노력과는 상관없이, 결국 돈 빌리는 사람(각국 정부)의 빚(국가부채)이 갈수록 불어나면서 신용도 문제가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추세로 봐야 한다”며 “국가부채를 갚을 수 있느냐에 대한 신뢰 문제인 데다, 미국은 트럼프 이후 달러 신뢰도 하락까지 겹치면서 국채 이자 부담이 이미 국방비를 웃도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재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급등은 아니어도 꾸준히 오를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도 사실 비슷한 상황입니다. 정부 부채가 늘고 국고채 발행량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장기채 금리를 낮추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한국)국채 발행량 자체가 늘어난 상황에서, 기관투자자들도 국채보다는 주식 쪽에 자금이 더 쏠려 있다 보니 수급이 맞지 않는 게 근본 원인”이라며 “공급은 느는데 이를 받아줄 수요가 예전만큼 따라오지 못하면 금리(가격)가 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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