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니뇨發 가뭄 중남미 강타… 파나마 운하까지 말라간다

박강현 기자 2026. 8. 2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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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4일부터 선박 통행 횟수 축소
온두라스선 콩·옥수수 전멸 속출
유럽선 폭염에 ‘여름 스키’ 사라져
파나마 운하에서 선박이 수문을 통과하는 모습. 파나마 운하청은 엘니뇨에 따른 물 부족에 대비해 내달부터 운하를 지나는 선박 통항량을 줄이기로 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적도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엘니뇨(El Niño)’ 현상이 계속되면서 중남미 지역에 식량난과 물류 차질이 동시에 확산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만년설이 녹아 관광 산업이 위축됐고, 가뭄으로 냉각수가 부족해지면서 원전 출력도 낮췄다. 양상은 다르지만 전 세계로 퍼진 기후 변화가 물류·식량·에너지·관광을 동시에 압박하는 사회·경제적 위험으로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로이터 등에 따르면 파나마 운하청은 물 부족에 대비해 내달 4일부터 하루 선박 통항 횟수를 34척으로 제한하고, 15일부터는 32척으로 더 줄이기로 했다. 운하를 통항하는 선박은 통상 하루 평균 35~40척이지만, 엘니뇨에 따른 가뭄 장기화에 대비해 통항량을 줄인 것이다.

길이 82㎞인 파나마 운하는 갑문에 담수를 채우고 빼는 식으로 선박을 들어 올리거나 내려 보내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배가 통과할 때마다 많은 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운하 유역의 올해 5~8월 강수량은 과거 평균보다 34% 적었고, 유역으로 들어온 물의 양도 평년보다 44% 줄었다. 운하 당국은 2026~2027년 엘니뇨가 예상보다 길고 강하게 이어질 경우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파나마 운하가 대서양과 태평양을 이으며 전 세계 해상 물류 수송의 약 5%를 담당하는 만큼, 통항 제한이 장기화하면 선박 대기 시간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에 따라 운임이 오르는 것은 물론 일부 선박이 남미 최남단을 돌아가는 우회 항로를 택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특히 이곳은 아시아와 미국 동부를 오가는 컨테이너선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의 주요 통로라 한국도 타격을 입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엘니뇨로 인한 가뭄도 심각하다. 적도 인근인 중미 국가 온두라스에선 수도 테구시갈파를 포함한 전국 298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약 80%인 234곳에 가뭄 경보가, 피해가 심각한 75곳에는 최고 단계인 적색 경보가 내려졌다. 나스리 아스푸라 대통령은 저수지 건설과 식량 지원 등 긴급 대책을 발표하며 “이번 위기가 내년 4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주요 곡창지대인 요로주에서는 가뭄으로 옥수수와 콩 농사가 사실상 전멸한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 남미도 비상이다. 페루 정부는 최근 가뭄과 향후 폭우 등에 대비해 전체 도시의 약 3분의 1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지난달 취임한 게이코 후지모리 대통령은 엘니뇨 대응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내걸었다.

기상 이변은 대서양 건너 유럽의 일상도 바꾸고 있다. 극심한 폭염과 가뭄으로 유럽의 주요 수로인 다뉴브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은 가동 중인 원자로 2기 가운데 1기의 출력을 약 120메가와트(MW) 낮추기로 했다. 불가리아 전력의 3분의 1 이상을 생산하는 이 원전은 다뉴브강 물을 냉각수로 사용하는데, 기상 여건 때문에 출력을 낮춘 것은 가동 52년 만에 처음이다.

다뉴브강 저수위로 헝가리와 루마니아 원전도 발전에 차질을 빚고 있고, 프랑스에서는 지난달 한때 전체 원전 설비 용량의 43%가 가동을 멈추는 등 기후 위기가 전력 안보 문제로 번지고 있다.

알프스에서는 여름 스키가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이탈리아 스텔비오 고개의 마지막 여름 스키장이 지난 15일 폭염으로 영업을 중단했다. 1956년 문을 연 이곳은 여름에도 약 20㎞ 구간에서 스키를 탈 수 있었지만 올해는 이용 가능한 구간이 2㎞ 정도에 불과했다. 과거 알프스에 약 60곳이던 여름 스키장은 올해 스위스 체르마트 등을 포함해 사실상 모두 운영을 멈췄다. 독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여름에 알프스 어디에서도 스키를 탈 수 없게 된 것은 50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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