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오디세이’ 번역한 학자… 3시간 영화가 그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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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디세이'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61)는 영화 '오디세이'를 보며 네 번이나 울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오디세우스는 승리한 영웅이면서도 동시에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늘진 영웅이다.
일각에선 원전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김 교수는 놀런 감독이 원전 마지막 24권에 담긴 그늘을 영화 속 오디세우스에게 녹여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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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목마’ 우쭐하던 전쟁 영웅
영화선 죄책감-책임 느끼는 인물로
“놀런 감독은 21세기의 세이렌”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61)는 영화 ‘오디세이’를 보며 네 번이나 울었다고 한다. 늙은 개 아르고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 주인 오디세우스를 단번에 알아보고 숨을 거뒀을 때, 오디세우스가 아내 페넬로페와 서로를 알아보면서도 복수를 위해 마음을 숨길 때, 구혼자 108명을 물리친 오디세우스가 지친 몸을 이끌고 페넬로페의 무릎에 누울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디세우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전우들을 만나러 서쪽으로 떠날 때.
김 교수는 20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삶을 살다 보면 내 인생을 알아보는 아르고스 같은 존재를 만나거나, 지쳐 쓰러질 때 받아주는 페넬로페 같은 이에게 울컥한다”며 “원작에선 쟁취하고 복수하는 오디세우스가 영화에선 상처 입은 채 내려놓고 떠난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더 듣고 싶고, 어떤 희생도 감수할 마음이 든다는 점에서 크리스토퍼 놀런은 21세기의 세이렌(Seiren·바다의 요정)입니다. 우리 시대의 최고 이야기꾼이라는 점에서 우리 시대의 호메로스 같은 인물 아닐까요.”

영화와 원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그는 “놀런이 호메로스의 영웅을 더욱 ‘죄책감을 지닌 영웅’으로 바꿨다”고 평가했다.
“원전에서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목마는 자신의 지략을 자랑하는 탁월성의 증거로 내세웁니다. 반면 영화에서 오디세우스는 트로이를 파괴한 걸 자책하고 부하들을 잃은 것에 대해 가책을 느낍니다. 행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거죠.”
영화에서 오디세우스는 승리한 영웅이면서도 동시에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늘진 영웅이다. 키르케와 약 1년을 보내고 칼립소의 섬에서 7년을 머무는 대목도 영화에선 오디세우스에게 좀 더 도덕적인 선택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변주됐다.
김 교수는 “‘호메로스와 다르다’는 건 공정한 비판이 아니다. 원전이 제기한 문제를 시대에 맞게 답하게 하는 게 고전의 힘”이라며 “전쟁과 전쟁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다룬 건 현 시대에 대한 예술가의 답”이라고 했다.
결말 부분도 다소 다르다. 원전에서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와 함께 이타카 궁을 차지한 구혼자들을 처단한다. 반면 영화의 오디세우스는 아들의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으려 한다. 구혼자를 모두 죽이는 원전과 달리 영화는 자신에게 저항하지 않는 구혼자에게 관용을 베푼다. 고대 그리스의 ‘크세니아(Xenia·제우스의 법)’를 강조한 각색도 이런 의도가 드러난다.

김 교수에게 ‘오뒷세이아’는 더욱 각별하다. 1995년 서울대 서양고전학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고전을 공부하며 읽은 작품으로, 2004년 을유문화사와 번역 계약을 맺었다. 3년이면 끝낼 줄 알았던 번역은 22년이 걸렸다. 익숙한 ‘오디세이아’ 대신 고대 그리스 발음에 가까운 ‘오뒷세이아’를 제목으로 삼았다. 도치된 어순을 적극적으로 살려 원문의 시적 운율과 음악성을 한국어로 옮겼다.
왜 그리 고집스럽게 매달렸을까. 김 교수는 차분히 답했다.
“놀런 감독이 아이맥스 촬영을 고집하며 장면의 생생함을 살리려고 하잖아요. 저도 그저 호메로스의 언어를 최대한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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