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하영 증조부 안상호 ‘군포 2700평’ 찾았다…1910년대 토지자료 첫 확인

배우 하영의 증조부인 의사 안상호가 일제강점기 초기 경기도 군포 일대에 2700평 규모의 논을 소유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그동안 안상호의 토지 재산은 안양 일대의 대규모 토지를 중심으로 알려졌다. 군포의 토지 소유 사실을 구체적인 지번과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일제 토지조사사업 과정에서 작성된 경기도 시흥군 남면 금정리 토지조사부를 보면 235번지 소유자란에 안상호의 한자 이름인 ‘安商浩’가 적혀 있다. 지목은 답(畓), 즉 논이다. 지적은 ‘二七〇〇’으로 2700평이다.
당시 지적원도에서도 235번지를 확인할 수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위치다. 235번지는 이미 개통돼 있던 경부선 철도 바로 주변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일대다.
옛 지번을 현재 등기자료와 지도까지 따라가면 이 땅의 흔적은 지금의 금정IC 일대로 이어진다. 원래 235번지는 이후 여러 필지로 나뉘었다. 이 가운데 금정동 235-11은 1983년 7월17일을 원인일로 시흥군에 ‘협의수용’됐다. 2002년에는 금정동 87-22에 합병돼 등기부가 폐쇄됐다.
87-22의 현행 등기부에는 235-11뿐 아니라 235-12, 235-14, 235-15 등 옛 235번지 계열 토지가 함께 합병된 기록이 남아 있다. 235-11은 1503㎡, 235-12는 864㎡, 235-14는 123㎡, 235-15는 21㎡였다. 모두 도로로 편입된 토지다.
이들 필지는 1983년 잇따라 시흥군에 협의수용됐다. 235-14와 235-15는 같은 해 7월, 235-12는 9월 협의수용된 것으로 나타난다. 또 다른 후속 필지인 235-18은 1986년 국가가 ‘공공용지의 협의취득’ 방식으로 취득했다. 관리청은 철도청이었다. 이 땅은 현재 942㎡의 철도용지다.
현재 지도에서 235-11 등이 합병된 87-22는 금정IC 도로부지 안에 놓여 있다. 일제강점기 지적원도에서 경부선 철도 바로 옆에 있던 235번지의 위치와도 맞아떨어진다.
다만 현재 확인되는 전산등기 기록은 1980년대 시흥군이나 국가가 토지를 취득한 시점부터 시작한다. 안상호가 소유했던 원래 235번지가 이후 안씨 일가에 상속됐는지, 중간에 제3자에게 넘어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1983년 협의수용 당시 안씨 일가가 보상금을 받았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안상호가 이 일대에 보유한 부동산은 논뿐만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26년 10월 8일 동아일보에는 ‘안상호씨 소유 일본인 산지기 피살(安商浩氏所有 日人山直被殺)’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보도에 따르면 안상호 소유의 산을 17년 동안 지켜온 일본인 산지기가 벌목 인부를 감독하러 가던 중 살해됐다. 신문은 원한에 의한 범행 가능성을 거론하며 판사가 현장으로 급히 출동했다고 전했다. 당시 17년이라는 근무기간을 그대로 역산하면 이 산지기가 안상호의 임야를 관리하기 시작한 때는 1909년 무렵이 된다.
이 기록은 이번에 확인된 금정리 235번지와 별개로 안상호가 군포·안양 일대에 상당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전담 산지기를 17년이나 두고 벌목까지 관리했다는 것은 단순한 소규모 토지 소유와는 거리가 있다. 사건이 벌어진 지역은 군포역과 가까운 생활권이지만, 산지기가 관리하던 임야가 이번에 확인된 235번지 논과 동일한 토지라고 볼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경부선 군포역 주변의 2700평 논, 안양역 일대의 대규모 토지와 함께 놓고 보면 안상호의 토지 축적이 철도축을 따라 군포·안양 일대에 상당한 규모로 이뤄졌다는 점은 한층 뚜렷해진다.
이번에 발견된 군포 땅이 눈길을 끄는 것은 안상호가 훗날 안양의 대지주로 이름을 알리기 전부터 이미 상당한 규모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안상호는 서울 종로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재산을 불렸다. 그의 사망 직후 당시 신문은 그를 ‘수천 석의 거부’로 소개하기도 했다.
안상호의 재산에서 흥미로운 점은 토지와 사업장의 위치다.
공개된 인물자료 등에 나오는 그의 병원 주소는 ‘경성부 종로3정목 16번지’다. 현재 지번으로도 종로3가 16번지는 남아 있다. 탑골공원 바로 동쪽의 종로 대로변이다. 안상호가 병원 건물이나 해당 토지를 직접 소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진료소를 낸 곳은 당시 경성에서도 사람과 돈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던 중심 대로였다.
이번에 처음으로 확인된 군포 235번지는 경부선 철도 주변이다. 이후 안상호가 대규모 토지를 보유한 곳으로 알려진 안양 역시 경부선 안양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지역이다.
서울에서는 종로 대로변에 병원을 냈고, 군포에서는 경부선 주변에 2700평의 논을 가지고 있었으며, 안양에서는 역 주변을 포함한 대규모 토지의 소유주가 됐다. 오늘날의 용어를 빌리면 ‘대로변’과 ‘역세권’ 주변에 안상호의 활동과 재산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셈이다.
이것만으론 안상호가 철도나 도로 개발에 따른 지가 상승을 예상해 토지를 사들였다거나 ‘땅 투기’를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토지의 실제 매입 시기와 가격, 취득 경위까지 확인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의사로 번 돈을 단순히 쌓아두기보다는 토지를 비롯한 자산으로 불리는 데 상당한 감각을 보였던 인물로 볼 여지는 충분하다. 훗날 ‘수천 석의 거부’라는 평가를 받은 것도 이런 축재 과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안상호가 토지 문제로 분쟁에 휘말린 기록도 남아 있다. 1923년 12월28일 동아일보는 경기도 파주의 토지를 놓고 안상호를 상대로 토지매매증명 말소소송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원고 박승학은 자신이 없는 사이 안상호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협해 땅을 산 것처럼 만든 뒤 군청에서 증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동안 알려진 안상호의 부동산 재산은 대부분 안양을 중심으로 설명돼 왔다. 안양 구시장과 남부시장 일대의 대규모 토지를 보유했고, 안상호 사후 아들 안정호 등 가족들이 일부 토지를 학교와 사회시설 등에 기증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새로 확인된 군포 2700평의 논은 이보다 앞선 안상호의 재산 형성 모습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서다. 특히 그 땅이 경부선 철도와 맞닿은 곳에 있었다는 점은 종로 대로변의 병원, 안양역 주변의 대규모 토지와 함께 놓고 볼 때 의미가 있다. 적어도 안상호가 의사로서의 성공을 상당한 토지 자산으로 바꿔 ‘수천 석의 거부’가 되는 과정에서 교통과 상업의 요지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번 군포 땅의 발견은 ‘안양의 대지주’로만 알려졌던 안상호의 축재가 그보다 일찍, 더 넓은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안상호는 최근 하영이 방송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의 증조부로 소개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이후 그가 일제강점기 내선융화를 내세운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한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하영은 지난 12일 증조부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 후손으로서 사과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안상호가 친일인명사전에 실리지 않았지만 당시 선정기준에 미달해 수록이 보류됐던 것일 뿐 친일 행적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밝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윤호우 경향신문 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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