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경체] 홍명보호로 배우는 '판단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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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앵커지난달 막을 내린 북중미 월드컵에서 홍명보호는 32강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감독의 전술과 경기 운영을 놓고 비판이 이어졌습니다만, 개인의 역량만이겠느냐, 잘못된 판단이 반복되고도 바로잡히지 않은 과정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선수로 월드컵을 네 차례 경험한 건 분명한 자산이지만, 선수 경험과 감독 역량은 다른 영역입니다.
이혜정 앵커또 하나 흥미로운 게 '한국은 월드컵에 나가면 어떻게든 해낸다', '본선에만 가면 된다'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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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뉴스12]
이혜정 앵커
지난달 막을 내린 북중미 월드컵에서 홍명보호는 32강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감독의 전술과 경기 운영을 놓고 비판이 이어졌습니다만, 개인의 역량만이겠느냐, 잘못된 판단이 반복되고도 바로잡히지 않은 과정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오늘 '청소년 경제체력 기르기'에서는 정태성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와 함께 홍명보호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빠지기 쉬운 행동경제학의 '판단 오류'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른바 황금세대로 불린 선수들이 있었는데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홍명보 감독의 전술과 경기 운영에 대한 비판이 컸는데요.
대표님은 이번 실패를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정태성 대표 /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실패의 1차 책임은 분명합니다.
전술 부재와 경기 운영 능력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에요.
감독 본인이 뚜렷한 전술적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외국인 코치진의 설계에 과도하게 의존했다는 지적은 뼈아픕니다.
다만 제가 주목하는 건 다른 지점입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라는 역대급 자원을 가지고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 질문은 '감독이 왜 부족했나'가 아니라 '그 부족함이 왜 월드컵 본선까지 걸러지지 않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의 한계는 분명했지만, 그 한계를 검증하고 제어해야 할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어요.
저는 네 개의 편향이 순서대로 작동했다고 봅니다. 후광 효과가 잘못된 선택을 낳고, 매몰 비용이 교체를 막고, 해바라기 편향이 내부 견제를 차단하고, 정상화 편향이 위기감을 지웠습니다.
감독만 바꾸고 끝내면 4년 뒤에 우리는 또 같은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혜정 앵커
말씀하신 네 가지 편향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후광 효과'인데요. 어떤 심리이고, 이번 감독 선임 과정에서는 어떻게 작동했다고 보십니까?
정태성 대표 /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후광 효과는 어떤 사람의 한 부분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이 나머지 전체 판단까지 물들이는 현상입니다.
스포츠에 아주 좋은 사례가 있어요.
2012년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가 알버트 푸홀스와 10년 초장기 계약을 맺었는데, 이미 계약 시점에 그의 기량은 하락세였고 계약 후반부엔 40세가 넘게 됩니다.
구단은 과거의 화려한 기록에 취해 미래의 하락세를 간과한 겁니다.
이번도 구조가 같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장이죠.
그런데 2002년의 홍명보'선수'와 2026년의 홍명보'감독'은 전혀 다른 역할의 사람입니다.
이름과 기억이 같다는 이유로 같은 성과를 기대한 거예요.
여기에 자기 과신이 겹칩니다.
선수로 월드컵을 네 차례 경험한 건 분명한 자산이지만, 선수 경험과 감독 역량은 다른 영역입니다.
오히려 과거의 성공 경험이 현재 능력에 대한 과신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이혜정 앵커
그런데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신호가 나타난 뒤에도 결정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표팀 역시 월드컵 예선 과정에서 여러 경고 신호가 나왔는데요.
왜 바꾸지 못했을까요?
이것도 설명이 가능한 심리인가요?
정태성 대표 /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프로 스포츠 중계를 보면 해설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감독 입장에서는 저 선수를 계속 기용할 수밖에 없어요.
왜 저 선수를 데려왔는지 증명해야 하거든요.' 부진한 고액 연봉 선수를 계속 내보내는 이유죠.
두 가지 심리입니다.
하나는 선택 지지 편향이에요.
내 결정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기억하려는 편향인데, 영입한 선수를 벤치에 앉히는 건 내 안목이 틀렸다고 자인하는 꼴이 됩니다.
다른 하나가 매몰 비용의 오류입니다.
이미 지불한 돈이 아까워서 회수해보려고 계속 기회를 주는 거죠.
축구협회도 똑같았습니다.
선임 과정에서 여론 반발, 국민 청원, 전임 감독 경질 논란까지 이미 큰 정치적 비용을 치렀어요.
비용이 커질수록 방향을 바꾸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경고등이 이미 있었는데도, '그때는 선수가 부족했다'는 식의 합리화가 확증 편향처럼 작동했습니다.
이혜정 앵커
그렇다면 조직 안에서 누군가 다른 의견을 내고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왜 내부에서는 문제 제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십니까?
정태성 대표 /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해바라기 편향'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리듯,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따라가는 현상이에요.
기업에서 흔히 봅니다.
부하 직원이 위험 신호를 넌지시 건네면 CEO가 '그건 이렇게 해결하면 됩니다' 하고 단정을 지어버려요.
그러면 직원은 동의해서가 아니라 더는 말하기 싫어서 입을 닫습니다.
위계 속에서 눈치를 보느라, 갈등을 피하고 싶어서 비판적 사고를 멈추는 겁니다.
이번에 저는 역설적인 신호를 봤습니다.
레전드와 전문가들이 밖에서 그렇게 공개적으로 비판했다는 건, 안에서는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어요.
한국 축구의 권위자 앞에서 협회 내 누군가가 '안됩니다'라고 끝까지 말할 수 있었을까요.
조직이 권위자를 중심으로 굳어지면 만장일치의 환상이 생기고, 현상 유지 편향이 조직의 기본값이 됩니다.
그러면 패배 뒤에도 근본적인 수정이 늦어집니다.
이혜정 앵커
또 하나 흥미로운 게 '한국은 월드컵에 나가면 어떻게든 해낸다', '본선에만 가면 된다'는 믿음입니다.
사실 많은 축구팬들도 이런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요.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 이런 믿음도 판단을 흐릴 수 있습니까?
정태성 대표 /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정상화 편향'입니다.
한국은 1986년 이후 월드컵 본선에 꾸준히 진출해왔어요.
자부심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관성입니다.
사람들은 위험 경고를 무시하거나 믿지 않는 경향을 정상화 편향이라고 하는데, 48개국 확대 체제로 경쟁 구도가 달라졌다는 사실 때문에 평소보다 더한 정상화 편향이 생겼습니다.
여기에 계획 오류가 붙습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이름 붙인 건데, 사람은 앞일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낙관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유명하죠.
1963년 완공 예정이 1973년으로 10년 밀렸고, 건설비는 예상의 열다섯 배가 들었습니다.
그리고 남아공전 패배 뒤에 원인을 더위에서 찾는 듯한 설명이 나온 것도 아쉬웠습니다.
더위는 대회 전부터 예고된 조건이었고 상대도 같은 조건에서 뛰었어요.
내부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외부로 돌리는 걸 기본적 귀인 오류라고 합니다.
잘되면 내 덕, 안되면 조상 탓이죠.
믿음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믿음이 준비를 대신하기 시작하면 위험합니다.
이혜정 앵커
결국 축구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공부나 진로 선택, 조별 과제처럼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비슷한 오류에 빠질 수 있을 텐데요.
스스로 판단의 오류를 줄이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정태성 대표 /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카너먼이 제시한 처방이 하나 있는데, 청소년들도 바로 쓸 수 있습니다.
'내부자의 시각'에서 벗어나 '외부자의 시각'을 가지라는 겁니다.
내부자의 시각은 내 사정과 내 각오만 놓고 판단하는 거예요.
'나는 이번엔 다르다', '나는 할 수 있다'가 여기 해당합니다.
외부자의 시각은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던 사람들이 실제로 어땠는지를 데이터로 보는 겁니다.
시험 계획을 세울 때 '이번엔 두 달이면 끝낸다'가 아니라 '지난번엔 몇 주 걸렸지'를 먼저 확인하는 거죠.
두 번째는 반대 의견을 미리 정해두는 겁니다.
조별 과제든 동아리든 한 명은 일부러 반대 역할을 맡으세요.
해바라기 편향은 용기로 이기는 게 아니라 역할을 정해두는 걸로 이깁니다.
마지막으로, 그만둘 시점을 미리 정해두세요.
시작할 때 '여기까지 안 되면 접는다'를 적어두면 매몰 비용에 덜 끌려갑니다.
제가 책에 쓴 문장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성공 경험의 기억이 클수록, 그 기억이 여러분의 눈을 가리는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습니다.
이혜정 앵커
축구 대표팀의 실패를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빠지기 쉬운 판단의 오류까지 살펴봤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보다 과거의 경험과 데이터를 먼저 확인하고, 잘못된 선택은 과감하게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청소년들에게도 유용한 경제적 사고법인 것 같습니다.
대표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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