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탐방] 건물 자체가 역사인 바로 그곳

김진성 2026. 8. 2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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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임시수도기념관·석당박물관
일제하 경남도지사 관사였던 임시수도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1023일 대통령 관저로 이용돼
피란민들 생사고락 보여주는 전시관 꼭 들르길
101년 전 경남도 청사로 지어졌던 석당박물관
근현대 역사 공간이자 지역 문화시설로 탈바꿈
‘동궐도’ 등 국보 2점 포함 3만여 점 유물 보유
임시수도기념관은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 부산의 대통령관저로 사용됐다.
석당박물관은 임시수도 정부청사로 이용됐다. 석당박물관 제공

박물관에는 고고학적 자료나 역사적 유물, 예술품 등이 전시 보전돼 있다. 그 지역과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장소인 셈이다. 박물관 종류도 다양하다. 수집품의 내용에 따라 민속, 미술, 과학, 역사 박물관 등으로 나누기도 하고, 운영 주체에 따라 국립, 공립, 사립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시설의 위치와 기능에 따라 중앙 박물관이나 지방 박물관으로도 나눈다. 대부분 박물관에 전시 보전돼 있는 수집품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부산에는 박물관 건물 자체가 역사적 가치를 가지는 곳이 있다. 임시수도기념관과 동아대 석당박물관이 그렇다.
이승만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는 모습의 사진.
임시수도기념관 내 이승만 대통령 집무실.
임시수도기념관 전시관에 있는 피란시절 판자집.
임시수도기념관 거리의 피란 계단 조형물.

■어머니 품 같았던 피란수도 부산의 임시수도기념관

부산 서구 부민동에 위치한 임시수도기념관은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임시수도로 역할을 한 부산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마련된 곳이다. 1984년 6월 25일 문을 열었다.

한국전쟁 당시 대통령관저로 사용됐던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지어졌다. 당시 진주에 있던 경남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도지사 관사로 지어진 건물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의 일이다. 한국전쟁 발발로 부산이 임시수도 역할을 하던 1953년까지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에 머물렀다.

임시수도기념관 정문에 들어서자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2층 가옥이 반겼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졌다는데 어찌 일본풍이 아니다. 기와가 올려진 형태는 일본식인 것 같은데, 높다란 박봉 지붕이 일본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오히려 유럽 양식이 느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임시수도기념관은 1920년대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외관은 북유럽식, 실내는 일본식’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건물에 들어서자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과 응접실이 눈에 띄었다. 벽면을 가득 메운 커다란 사진에는 당시 이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주는 사진과 릿지웨이 유엔군 사령관의 이임 인사 사진 등이 걸려 있다. 당시 한국 정치와 외교 업무가 이곳에서 이뤄진 것이다. 박동진 임시수도기념과 문화관광해설사는 “부산이 임시수도가 된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에서 1023일이나 있으면서 모든 국정 업무를 보셨다”고 설명했다.

이승만 대통령을 닮은 인형이 앉아 있는 서재를 지나자 거실이 나왔다. 거실은 특이하게 동서남북, 사방이 모두 뚫려 있는 ‘우물 정(井)’자 형태였다. 거실은 침실과 집무실, 식당과 부엌 등 어느 곳으로든 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침입자를 막기 위한 조치인 듯 했다. 그러고 보니 침입자는 막기 위한 장치는 정원에도 있었다. 자갈이다. 야외 정원에는 각종 나무들과 돌들이 고즈넉한 운치를 내고 있었는데, 바닥엔 자갈이 깔려 있었다. 자갈을 밟을 때 나는 소리로 침입자를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식당과 부엌이 일반 가정집 치고는 제법 넓었다. 대통령의 식사부터 방문객의 오찬과 만찬에 사용됐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0평 남짓 이뤄진 2층은 주로 경비·수행원이나 공직자들의 숙소로 활용됐다.

임시수도기념관 실내를 둘러 본 뒤 100년 전에 지어진 일본 목조 건물의 운치가 곳곳에 스며 있다는 말에 박 해설사는 “일제강점기 부산에 지어진 마지막 공공 목조건물일 것이다”고 했다. 1923년 관동 대지진 이후 일본은 목조 건물 외부에 붉은 벽돌을 붙이는 기존 건축 양식 대신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대청동의 근현대역사관이 일제강점기 부산에 지어진 첫 번째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다. 임시수도기념관은 이 같은 역사성이 인정돼 2018년 11월에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546호)로 지정됐다.

대통령관저 뒤편에 자리한 임시수도기념관 전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은 옛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관사를 리모델링해 2012년에 개괸했다. 기념관이 대통령의 당시 생활을 보여줬다면, 전시관은 서민들, 피란민들의 생사고락을 보여주는 곳이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타고 내려온 기차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많은 피란민들이 고향을 버리고, 칠흙 같은 미래에 불안해 하며 피란길에 나섰을까. 피란민 2세라는 박 해설사는 “황해도가 고향인 부모님들은 여기 전시된 것과 같은 열차를 타고 내려오지 않았다. 군용 열차에 실린 탱크와 장갑차 사이에 몸을 비집고 들어가 피란길에 나섰다. 많은 피란민들이 그랬을 것이다”고 했다.

피란열차를 뒤로 하니 ‘구직(求職)’이라는 글씨를 목에 걸고 있는 남자 인형이 눈에 띄었다. ‘한국 사진의 선구자’ 임응식(1912~2001) 작가의 대표작 ‘구직’이다. 1953년 명동 거리 풍경을 찍은 것인데, 궁핍한 시대가 탄생 시킨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피란민들의 집인 판자집과 똥지게, 밀면집, 외화벌이와 문화적 자부심이었던 대한도기의 접시들, 당시 실상을 보여주는 각종 사진과 유물들에서 피란민들의 고난과 희망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피란도시 부산은 전국의 피란민들을 품어주는 어머니 품 같은 곳이었습니다. 만약 부산이 피란민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부산,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부산이 고향인 한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느낀다는 박 해설사의 말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석당박물관이 보유한 국보 ‘개국원종공신녹권’.
임시수도 정부청사의 지붕골조와 부재.
국가무형문화재인 수영야류 탈.
석당박물관 정원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를 앞둔 석당박물관

임시수도기념관 정문에서 임시수도기념거리 계단을 내려가 5분만 걸어가면 동아대 부민캠퍼스 내 석당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석당박물관은 1925년 경남도청 소재지가 부산으로 옮겨오면서 완공된 경남도 청사였다. 한국전쟁 발발 후 임시정부가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임시수도 정부청사로 쓰였다.

석당박물관은 1959년 11월 1일 부산 최초로 개관한 박물관이다. 동아대 설립자이자 박물관장을 역임한 석당 정재환 박사(1904~1976)의 호를 붙였다. 구덕캠퍼스에 있던 석당박물관은 2009년 현재의 부민캠퍼스 건물로 이전하면서 근현대 한국 역사를 담는 공간이자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시설이 됐다.

건물 앞에 서니 웅장함이 느껴졌다. 임시수도기념관처럼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이 건물은 중앙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고, 세로로 긴 창이 반복적으로 배치돼 웅장함이 돋보였다.

석당박물관은 근대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등록문화재 41호로 지정됐고, 임시수도기념관을 비롯해 부산기상관측소, 부산항 제1부두, 영도다리, 복병산 배수지,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 부산시민공원, 부산근현대역사관, 유엔묘지 등 11곳과 함께 203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석당박물관이 단순히 건물에만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고 생각하면 서운하다. 석당박물관의 소장품도 엄청나다. 우선 국보만 2개가 있다. 동궐도와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녹권이다. 동궐도는 현재 부산박물관 특별기획전인 ‘조선의 기록과 문화, 만세(萬世)에 전하노니’에 전시돼 있다. 얼마 전 부산박물관에서 본 기억이 새롭다. 심지백 개국원종공시녹권은 1397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 창건에 기여한 원종공신(原從功臣)인 심지백에게 봉작을 내리며 하사한 녹권을 말하는 것으로, 박물관 2층 서화실에서 볼 수 있다.

석당박물관은 국보 이외에도 보물 14점 등을 포함해 약 3만 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구성된 석당박물관의 관람은 보물로 지정된 신석기시대 토기 융기문 발을 비롯해 독무덤, 장신구 등 다양한 유물이 전시된 고고실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어 고려시대 화려했던 불교미술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불교미술실, 조선시대 옛 선조들의 생각과 마음을 그림이나 문자, 글귀 등으로 표현한 서화실 등 다양한 전시실을 둘러볼 수 있다.

특히 부산 수영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졌던 가면극 ‘수영야류’ 탈(국가무형문화재)이 인상적이었다. 수영야류 탈은 연희가 끝나면 고사를 지내면서 탈을 태웠기 때문에 보존된 탈이 흔치 않다. 수염 붙은 탈의 모습이 이채롭다.

3층 전시관은 임시수도 정부청사 기록실이다. 이곳은 임시수도 정부청사로 사용됐던 시절의 지붕골조와 부재를 전시해 놓은 공간이다. 역사적 기억을 담은 건물의 보존방법과 미래 활용법을 제시한 측면이 인상적이다. 석당박물관을 빨리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석당박물관은 동아대 개교 80주년 기념 특별전시 준비로 9월 3일부터 10월 25일까지 휴관한다.

글·사진=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