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여성의 이름과 경험을 재현할 때 [플랫]

플랫팀 기자 2026. 8. 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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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 광복절부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여옥사에서 여성 독립운동가 홀로그램 상설 전시가 시작됐다고 한다. 이름조차 알기 어려웠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눈앞에서 만나 한 분 한 분의 삶을 되새길 수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여성 독립운동가 관련 자료는 남성 독립운동가에 비해 확보하기가 3배가량 어렵다고 한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비공식적인 역할을 맡거나 보조자로 저평가돼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결과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3.6%에 불과하다.

[플랫]독립운동은 ‘부부’가 했는데 현충원엔 ‘남편’만 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019년 10월 26일 서강대에서 대화형 인공지능 홀로그램 ‘영원한 증언’을 시연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5년 전 이맘때쯤 봤던 ‘영원한 증언’ 전시가 떠오른다. 김주섭 서강대 교수팀이 수년간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모으고, 관람객이 할머니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든 인터랙티브 전시였다.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할머니들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슴이 먹먹한 한편, 평소 모습 그대로이면서도 실제보다 크게 볼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 입구에서 받은 질문지에는 위안부와 관련된 질문뿐 아니라 어떤 가수를 가장 좋아하느냐는 소소한 질문도 있었다. 덕분에 할머니 한 분 한 분의 삶이 한층 또렷하게 와닿았다. 그날 처음 깨달았다. AI가 여성을 위해 이렇게 쓰일 수도 있구나!

기술은 여성과 남성을 다르게 재현해왔다. 에버, 소피아, 에리카와 같은 여성형 안드로이드 로봇은 모두 젊은 여성의 얼굴을 가졌다. 그 얼굴은 어딘가 있을 법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얼굴이다. 반면 남성형 안드로이드는 실재하는 남성의 이름과 얼굴을 본떴다. 이시구로 히로시와 헨리크 샤르페라는 로봇공학자들은 자신을 닮은 안드로이드를 만들었다. ‘알버트 휴보’는 아인슈타인의 얼굴에 휴보의 몸을 가졌다. SF 작가 필립 K 딕을 본뜬 안드로이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중년 남성이다.

챗봇도 비슷하다. 글로벌 챗봇 플랫폼 chatbots.org에 등록된 챗봇 중 63.6%가 성별이 있으며 이 중 76.94%는 여성의 이름을 갖고 있다. 여성형 챗봇은 주로 고객 서비스와 영업, 홍보 등 분야에서 사용된다. 유일하게 남성형 챗봇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분야는 ‘복제’였다. 유명 인사나 역사적 인물처럼 실존 인물을 재현하는 챗봇은 대부분 남성의 이름과 아바타를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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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속 여성은 수많은 이름 없는 여성이 주로 해온 역할을 대신할 뿐 자신만의 이름을 가진 개별 여성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재현의 대상이 실존하는 여성일 때도 그렇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0년대부터 반세기 가까이 컴퓨터 영상 처리 시험용 표준 이미지로 복제됐던 레나 포르센의 사진이다. 기술 발전에 기여하며 무수히 복제된 ‘레나 이미지’에서 레나라는 한 여성의 고유한 삶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기에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에 이어 이번 여성 독립운동가 홀로그램 전시 역시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여성을 익명화하고 대상화해온 디지털 기술이 여성의 이름과 경험을 기록해 가시화하는 일에 쓰였기 때문이다. 여성을 지우던 기술이 여성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데 사용된다니 오랜만에 기술에서 발견한 희망이다.

▼ 임소연 동아대 융합대학 교수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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