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간 전쟁’인데…‘주 52시간 벽’ 가로막힌 한국 R&D [Deep Spot]

김용훈 2026. 8. 2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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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연내 제정을 추진하는 '메가특구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놓고 산업통상부와 고용노동부가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규제 완화 여부에 좀처럼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중국 등 경쟁국과의 반도체 '속도전'을 위해 주 52시간 예외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까지 검토 대상에 올린 반면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현행 제도에서도 추가 근로가 가능하다며 신중론을 펴고 있다.

산업부는 중국 등 경쟁국이 빠르게 추격하는 상황에서 R&D 인력이 필요할 때 집중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노동부는 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이 실제 산업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7일 발표한 '최근 노동 현안에 대한 경영계 제언'에서 메가특구특별법에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현행 1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고, 연구개발·전문직과 스타트업 핵심 인력을 근로시간 규제 적용에서 제외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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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R&D 예외” vs 노동부 “현행제도 충분”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선택근로 놓고 부처 이견
美 주간상한 無, 日 R&D 특례…대만, 기간관리
기업 “인가받는 특별연장근로, 글로벌경쟁 한계”
노조 “장시간 노동 우려” 정부, 연내 결론 고심
“메가특구서 유연근로 시험 뒤 확대 논의해야”
반도체 기술패권 전쟁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특구에서 연구개발 인력의 주 52시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대전시 유성구 나노종합기술원 반도체 팹에서 반도체 분야 취업을 준비하는 교육생들이 공정에 대해 배우고 있는 모습. [연합]

이재명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연내 제정을 추진하는 ‘메가특구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놓고 산업통상부와 고용노동부가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규제 완화 여부에 좀처럼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중국 등 경쟁국과의 반도체 ‘속도전’을 위해 주 52시간 예외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까지 검토 대상에 올린 반면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현행 제도에서도 추가 근로가 가능하다며 신중론을 펴고 있다. 두 부처의 이견은 결국 반도체 기술패권 경쟁에서 ‘시간’을 어떻게 볼 것이냐로 모인다.

산업부는 중국 등 경쟁국이 빠르게 추격하는 상황에서 R&D 인력이 필요할 때 집중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노동부는 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이 실제 산업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부처 간 이견을 “민주적 과정”이라고 평가하며 토론을 통한 조정을 주문했지만 연내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는 결국 정부 차원의 결론을 내려야 한다.

반도체 경쟁은 누가 먼저 차세대 제품을 개발하고 양산하느냐를 다투는 ‘시간 전쟁’이다. 미국은 주간 최대 근로시간에 일률적인 상한이 없고 일본은 신기술 R&D를 일반적인 연장근로 상한규제에서 제외한다. 대만도 연장근로를 기간 단위로 배분한다. 세제·입지·인허가 규제는 걷어내면서 정작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R&D 인력은 ‘매주 52시간’의 벽에 묶어두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부 “예외 필요” vs 노동부 “신중”…정부 내 엇박자

메가특구 특별법의 핵심 쟁점은 ‘노동특례’다.

정부 내부에서는 일정 소득 이상의 관리자와 R&D 인력에게 근로시간 규제를 달리 적용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비롯해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등 다양한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메가특구에서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정 기간의 총 근로시간 한도는 유지하면서 일이 몰리는 시기에는 더 일하고 상대적으로 업무가 적을 때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두 부처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나란히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연합]

김정관 장관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유연근무시간제도 등 다양한 형태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가 논의 대상에 포함됐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짧게 답했다. 김 장관은 앞서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의 이른바 ‘996’ 근무 사례까지 거론하며 주 52시간 규제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996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중국 일부 기업의 장시간 근무 관행이다. 중국에서 996이 합법적인 표준근로제인 것은 아니지만 김 장관이 이를 거론한 것은 한국 반도체 기업이 맞닥뜨린 경쟁의 강도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영계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7일 발표한 ‘최근 노동 현안에 대한 경영계 제언’에서 메가특구특별법에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현행 1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고, 연구개발·전문직과 스타트업 핵심 인력을 근로시간 규제 적용에서 제외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현행 2년) 확대, 파견 대상 업무 확대도 함께 요구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AI·반도체 대전환 시대의 기술패권 경쟁은 결국 인재를 얼마나 신속하고 유연하게 투입할 수 있는지의 싸움”이라며 “메가특구가 국가전략산업 육성의 출발점이 되기 위해선 노동유연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연합]

“특별연장근로 있다”…“정부 허가받는 게 유연성인가”

반면 같은 날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한 김영훈 장관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된다고 본다”며 “특별연장근로제와 같은 유연한 방식으로 허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진 의원 질의에 “나쁜 일자리로 가능한 혁신은 없다”며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방법은 우수한 인재”라고 강조했다. 연구개발 인력의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중국과의 반도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김영훈 장관은 “연구개발은 수량적인 것보다 창의력과 혁신이 더 중요하다”며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창의력을 높이는 것이 기업의 혁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노동부가 신중론을 펴는 주요 근거는 현행 제도에서도 주 52시간을 넘어 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별연장근로는 특별한 사정이 발생했을 때 근로자 동의와 노동부 장관 인가를 거쳐 법정 연장근로 한도를 넘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노동부는 반도체 R&D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인가기간도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했으며 재인가를 거치면 최장 1년까지 쓸 수 있다.

김영훈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 R&D 분야의 특별연장근로 6개월 신청이 4건에 불과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미 현행 제도 안에서 주 52시간을 넘어 일할 수 있도록 했는데 기업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별도의 근로시간 특례가 필요한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국회에 제출된 노동부 자료를 보면 특별연장근로 전체 인가율은 2024년 94.0%, 2025년 92.9%, 올해 6월까지 92.1%에 달한다. 지난해 반도체기업 신청 45건은 모두 인가됐다. 삼성전자도 2023년 7건, 2024년 18건, 2025년 25건으로 신청·인가 건수가 늘었다.

김영훈 장관이 언급한 ‘4건’은 6개월 장기 신청 건수인 반면 국회 제출 자료는 특별연장근로 전체 신청·인가 건수여서 서로 집계 기준이 다르다. 다만 반도체 기업의 특별연장근로 신청 자체가 거의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신청 저조’를 둘러싼 해석은 엇갈릴 수 있다.

특별연장근로라는 ‘예외’가 존재하는 것과 기업과 근로자가 R&D 일정에 맞춰 시간을 유연하게 배분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반론도 나온다. HBM을 비롯한 첨단 반도체 개발은 설계와 공정개발, 수율 안정화, 고객사 인증 등 특정 개발단계에 업무가 집중되는 특성이 있다.

경쟁사보다 몇 달이라도 먼저 차세대 제품을 개발하고 양산하는 것이 시장 선점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업무가 몰릴 때마다 정부의 인가를 받아 추가 근로를 하는 방식이 글로벌 R&D 경쟁에 적합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동욱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별연장근로는 노동부 장관의 재량에 맡겨져 있어 기업이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인력 운용을 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딱딱한 법 규제가 편법 근무를 부추겨 근로자 보호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AI)·반도체 패권 경쟁의 본질은 결국 속도의 경쟁인데, 우리 기업이 이 경쟁에서 인력운용의 속도라는 변수 때문에 뒤처진다면 그 피해는 그 기업에 고용된, 그리고 앞으로 고용됐어야 할 근로자들에게 돌아간다”며 “지금은 기업이냐, 근로자냐는 이분법이 아니라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인 노동법제에 대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美, 주간상한 없어…日, 신기술 R&D 상한규제 제외

해외 반도체 경쟁국으로 눈을 돌리면 한국과 근로시간 제도의 차이가 보다 선명해진다.

인텔과 마이크론 등을 보유한 미국은 연방 공정근로기준법(FLSA)에 성인의 주간 최대 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없다. 주 40시간은 최대 근로시간이 아니라 초과근로수당 지급 기준이다. 일정한 직무·급여 요건을 충족하는 전문직은 초과근로수당 규정에서도 면제될 수 있고 과학·공학 분야의 고도 전문지식을 활용하는 업무도 법정 요건을 갖추면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본도 법정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주 40시간이며 일반 근로자의 연장근로는 원칙적으로 월 45시간·연 360시간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신기술·신상품·신서비스의 연구개발 업무는 일반적인 연장근로 상한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라피더스 등을 앞세운 일본의 첨단 반도체 부활 투자와 맞물려 한국과 직접 비교되는 대목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가 있는 대만도 하루 8시간·주 40시간이 기본이지만 연장근로는 원칙적으로 월 46시간까지 가능하다. 일정한 노사 절차를 거치면 월 54시간까지 늘릴 수 있고 3개월 동안 연장근로 총량을 138시간 이내로 관리한다. 특정 월에 업무가 몰리면 다른 달의 연장근로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셈이다.

미국과 일본, 대만의 제도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전문직이나 R&D 업무의 특성을 반영하거나 일정 기간 총량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업무가 집중되는 시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메가특구 테스트베드로”…성과 뒤 全산업 확대 논의

전문가들은 메가특구를 근로시간·고용 유연화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당장 전체 산업의 주 52시간 틀을 바꾸기보다 총 근로시간 한도는 유지하면서 시간 배분의 유연성을 높이고 효과를 검증하자는 것이다.

다만 노동계의 반발은 넘어야 할 산이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업황이 어려워서 일자리를 억지로 만드는 상황이 아닌데도 왜 정부가 나서서 ‘나쁜 일자리’를 만드는지 노동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노동계가 물러날 쟁점이 아니므로 갈등이 예상되고 결국 본사업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부처 간 이견에 대해 “민주적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며 “각료들이 논쟁해야, 아주 나쁘게, 심하게 얘기하면 다퉈야 국민이 다투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지역과 노동계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숙고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처 간 논쟁 자체는 정책 결정 과정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특별법을 연내 제정하기로 한 데다 투자·기술개발 속도가 메가프로젝트의 핵심인 만큼 논의를 장기간 끌기는 어렵다. 세제·입지·인허가 규제는 걷어내면서 정작 개발 속도를 좌우하는 R&D 인력의 시간 운용만 손대지 않는다면 메가특구의 취지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에 주 52시간 상한을 일률적으로 걷어내기보다 총 근로시간 한도를 유지하면서 업무 집중기에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하도록 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미국의 전문직 면제나 일본의 R&D 특례, 대만의 기간 단위 총량관리처럼 경쟁국 역시 방식은 다르지만 R&D와 전문직의 특성을 근로시간 제도에 반영하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메가특구 외 지역과 근로조건을 다르게 한다면 문제지만 (근로시간 상한을 정해두고) 운영을 유연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문제없다”며 “성과를 따져서 전체 산업으로 적용할지를 논의할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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