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로 풀릴 일도 소송으로…괴롭힘 사건이 법원으로 가는 이유

백승현 2026. 8. 2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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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간 법원에서 고용노동사건 민사조정을 맡아왔다. 통상 1년에 60여건을 다루는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7년을 맞은 올해 들어 괴롭힘 관련 사건이 부쩍 늘었다. 객관적 행위 중심의 해석론을 축적하고, 공정한 절차로 갈등을 조기에 해결하며, 구성원의 사회적 건강을 사업장의 위험요인으로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직장 내 괴롭힘법 시행 7년을 맞은 지금, 우리가 구축해야 할 다음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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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행복한일 노무법인의 '직장내 괴롭힘 AtoZ'


10여 년간 법원에서 고용노동사건 민사조정을 맡아왔다. 통상 1년에 60여건을 다루는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7년을 맞은 올해 들어 괴롭힘 관련 사건이 부쩍 늘었다. 체감상 다섯 건 중 한 건 꼴은 되는 듯하다.

괴롭힘 사건은 일반 노동사건과 다르다. 통상 노동사건은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금전적 회복을 다투는 데 비해 괴롭힘 사건은 신고인·피신고인·사용자까지 당사자가 확대되고, 구성원 사이의 민사분쟁까지 겹친다. 각자 대리인을 선임해 좁은 조정실이 북적이고 재직 중 소송도 적지 않다. 한 차례 거친 언행처럼 사과로 풀 수 있었던 사소한 일까지도 신고·조사·징계·노동청·소송을 거치며 증폭되고 있다. 법원 조정실에 이를 무렵에는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이다. 무엇보다 3 당사자라는 구조에서 화해 절차로 종결하기는 더 어렵다. 결국 끝까지 가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주관적 고통은 괴롭힘이 아니다"

고용노동부 조사와 행복한일노무법인이 법제화 이후 수행한 민간·공공기관 조사에서도 괴롭힘 신고의 인정 비율은 과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신고인은 회사 판단의 중립성을 의심하고, 인정되더라도 중징계가 아니면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노동청 진정과 민사소송으로 나아간다. '피해자 관점'이라는 암묵지 속에서 괴롭힘 판단에서  ‘얼마나 괴로운가’라는 주관적 고통은 실질적으로 괴롭힘 판단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주관적 고통을 곧바로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광주지방법원은 행사 중 나이를 물은 행위가 문제 된 사건에서 정신적 고통은 피해자의 주관이 아니라 같은 처지의 평균적인 사람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했다(2020가합52585).

학계의 해석론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준희 광운대 교수(법학부)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의 ‘고통을 주는’,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이라는 문언에 주목해 괴롭힘 금지규정을 ‘결과범’이 아닌 ‘추상적 위험범’으로 해석한다. 성희롱은 ‘성적 굴욕감’이라는 주관적 고통을 명시적 요건으로 두지만 괴롭힘법의 구조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판단의 초점은 피해자가 실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가 아니라 해당 행위가 객관적으로 고통이나 근무환경 악화를 초래할 위험이 있었는지가 된다. 기업·행정기관·법원의 판단이 엇갈리는 현실에서 중요한 해석의 출발점이다.

#신뢰 기반 공정절차 마련해야

직장에서의 부당한 처우는 괴롭힘법 이전에도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이유’ 심사와 산재보상 법리 등으로 규율돼 왔다. 2019년 법제화의 중요한 의미는 기존 법으로 포착하기 어려웠던 행위를 사용자가 스스로 예방하고 해결하도록 한 데 있다. 취업규칙에 예방과 조치를 규정하도록 한 것도 사업장 자율규범 형성이 핵심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행 이후 실효성 논란 속에서 성희롱 법제의 사후조치와 제재 구조가 빠르게 이식됐다. 30여 년간 법리가 축적된 성희롱과 달리 괴롭힘은 개념과 판단기준조차 형성되는 단계였다.

 충분한 해석론과 사업장 관행이 축적되기 전에 공적 제재가 강화되면서 분쟁이 회사 담장을 넘어 노동청과 법원으로 향하는 현상도 커졌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제재의 추가보다 신뢰할 수 있는 공정절차다. 신고인이 회사의 공정성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독립적인 제3자 조사기관이나 위원회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조사자·판단자의 공적 풀을 구축하고 신고인과 피신고인 모두에게 충분한 진술과 방어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노동위원회와 같은 공적 기구가 분쟁 초기에 판단·조정해 장기화를 막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피해자의 고통을 구제하는 것만으로는 역설적으로 피해자도, 일터도 충분히 보호하기 어렵다. 객관적 행위 중심의 해석론을 축적하고, 공정한 절차로 갈등을 조기에 해결하며, 구성원의 사회적 건강을 사업장의 위험요인으로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직장 내 괴롭힘법 시행 7년을 맞은 지금, 우리가 구축해야 할 다음 단계다.

문강분 행복한일노무법인 대표 공인노무사/한국괴롭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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