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도입후 유료구독 27% 급증… 이트롬쇠 '소형언론 생존법'

트롬쇠=김한내 기자 2026. 8. 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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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9일(현지 시각) 오전 11시, 노르웨이 트롬쇠의 지역신문 '이트롬쇠(iTromsø)' 편집국.

이트롬쇠는 취재기자가 10명, 전체 편집국 구성원을 합해도 22명뿐인 소규모 지역 언론이다.

이트롬쇠의 교육은 기자들이 취재 중인 현장 자료를 가져와 직접 AI를 돌려보는 실습 형태로 진행된다.

뉴스룸의 AI 도입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이트롬쇠가 여전히 기자의 현장 취재를 원칙으로 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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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AI 저널리즘] (5) 노르웨이 이트롬쇠의 AI 활용법
루네 이트레베르그 이트롬쇠 데이터저널리즘 책임자가 6월19일(현지 시각) 이트롬쇠 편집국에서 ‘진(DJINN)’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김한내 기자

6월19일(현지 시각) 오전 11시, 노르웨이 트롬쇠의 지역신문 ‘이트롬쇠(iTromsø)’ 편집국. 현장 취재를 나간 이들을 제외하고 10여명의 기자와 데스크가 자리를 지키며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트롬쇠는 한국에서 직선거리로 약 6800km 떨어진 북극 최대 도시다. 항공편을 두 번 갈아타고 20시간을 이동해 도착한 곳이지만, 이곳 뉴스룸의 풍경 역시 여느 언론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기자들의 모니터를 유심히 살피자 한 가지 특이한 공통점이 눈에 띄었다. 자리에 앉은 기자들의 화면 한쪽에 인공지능(AI) 취재 비서 ‘진(DJINN)’이 켜져 있다는 점이다.

‘진(DJINN·Data Journalism Interface for Newsgathering and Notifications)’은 이트롬쇠가 2023년 자체 개발한 AI 취재 지원 시스템이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공공 문서나 보도자료의 뉴스 가치를 판단해 우선순위에 따라 분류하고, 담당자 연락처나 주소 같은 핵심 정보를 추출해 보여준다. 기자가 특정 키워드를 등록하면 관련 문서를 수집하는 즉시 메신저 알림도 보낸다. 정보 수집부터 분류, 알림까지 기자들의 취재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시스템이다.

이날 편집국에서 만난 카리나 한센 이트롬쇠 기자는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초록색 ‘Ny!(새 소식)’ 알림이 뜬 문서 목록을 짚어 보였다. “방금 정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를 진이 뉴스가치를 판단해 상단에 띄웠어요. 중요하다는 뜻이죠. 그럼 기자는 관련 부서로 곧장 전화를 걸면 돼요. 공개된 문서이기 때문에 경쟁 언론사와 속도전을 벌여야 하는데, 진 덕분에 한발 빠르게 기사를 쓸 수 있게 됐어요.”

취재에 AI를 도입한 이후 이트롬쇠의 구독자 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노르웨이신문협회에 따르면 이트롬쇠의 유료 구독자 수는 AI를 본격 도입하기 직전인 2020년 상반기 7995명이었지만, 2025년 1만143명을 넘기며 5년새 약 27% 증가했다. 트롬쇠 지역 인구가 8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수치다. 매출에서 구독료가 차지하는 비중도 전체 수입의 약 60%까지 커졌다.

◇‘탐사보도’는 생존 전략, AI로 경쟁력 확보
“경쟁사인 노르들리스(Nordlys)는 우리보다 규모가 두 배 커요. 그만큼 인력도 많고요. 훨씬 큰 신문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뉴스 스토리와 독점 콘텐츠를 만들어야 했죠.”

트론드 하아켄센 편집국장은 소형 언론사가 살아남으려면 AI 도입이 필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트롬쇠는 취재기자가 10명, 전체 편집국 구성원을 합해도 22명뿐인 소규모 지역 언론이다. 인력이 적은 중소형 언론에서는 데일리 뉴스를 처리하느라 심층 기획 보도에 시간을 쏟기 어려운 게 일반적이다.

이트롬쇠는 진을 활용해 인력과 시간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다. 진의 개발을 주도한 루네 이트레베르그 데이터저널리즘 책임자는 “자체 탐사보도팀이 있는 대형 미디어 회사들은 탐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1년을 투자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면서 “진은 매일 처리해야 하는 데일리 업무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탐사보도의 효율성도 높이고 있다”고 했다.

진을 활용한 대표적인 탐사보도는 2월부터 진행 중인 ‘유령 호텔’ 보도다. 오로라 관광 열풍으로 주택난이 심각해진 상황에서 일반 주택이 불법 관광 숙소로 변질되는 실태를 60여 편의 기사를 통해 폭로했다.

진은 방대한 행정 문서에서 이상 정황을 먼저 포착하는 역할을 했다. 동일한 주소지나 개발업자 명의로 주거지역 내 여러 건물의 개보수 신청이 연속 접수되거나, 용도 변경 신청서에서 인허가를 우회하려는 정황을 포착해 기자에게 알림을 보냈다. 기자들은 진이 찾아낸 자료를 토대로 현장을 찾았다. 그 결과 서류상 단순 주택이었던 건물이 도어락 번호키 수십 개가 달린 관광객용 숙소로 개조된 것을 발견해 보도할 수 있었다. 이트레베르그는 “시 당국 공무원조차 확인하지 못했던 허점을 AI가 먼저 찾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리나 한센 이트롬쇠 기자의 업무용 모니터. ‘진’에는 인공지능(AI)이 중요도에 따라 구분해 둔 행정 문서가 보이는 반면, 화면 오른쪽 부분의 트롬쇠 정부 공식 홈페이지엔 문서가 시간순으로 업로드 돼 있다. ‘진’ 개발 이전 기자들은 홈페이지에서 문서를 일일이 확인해 기삿거리를 찾아내야 했다. /김한내 기자

◇‘기자의 촉’을 AI에 학습시켜
진이 취재의 효율성을 높인 도구가 된 것은 기자의 ‘직감’을 직접 학습시켰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나 소수의 데이터 전문가가 AI 학습 권한을 독점하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진은 이트롬쇠를 포함한 모기업 폴라리스 미디어(Polaris Media) 소속 40여 개 언론사 기자들이 직접 피드백에 참여한다. 노르웨이 전역 기자들의 취재 경험과 직관이 데이터로 축적되는 형태다.

기자들이 AI를 학습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사 작성을 위해 진이 수집한 문서를 검토할 때마다, 화면에 떠 있는 ‘좋아요’ 또는 ‘싫어요’ 버튼을 누르면 된다. 현장에서 시범을 보인 이트레베르그가 버튼을 누르기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문서가 실제로 뉴스 가치가 있고 유용한 내용이었다면 ‘좋아요’를, 개보수 허가 요청 등 일상적인 행정 처리에 불과한 내용이라면 ‘싫어요’를 누른다. 클릭 한 번으로 베테랑 기자의 관점이 데이터베이스로 쌓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은 뉴스 가치 판단의 정확도를 높이고 정보 누락이나 편향을 막기 위해 ‘중앙 모델’, ‘지역 모델’, ‘이상치 탐색 모델’ 등 세 가지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기자들의 판단은 이 중 중앙 모델과 지역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이용된다. 첫 번째 알고리즘인 ‘중앙 모델’은 중앙정부의 공공 문서 등 보편적 행정 데이터를 1차 분류하고, 전체 기자의 피드백을 수집해 전국 단위의 기본 기준을 세운다.

두 번째 ‘지역 모델’은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다. 이트레베르그는 “북부 트롬쇠에서는 야생 순록이 정원을 침입하는 것이 일상이지만, 남부 도시에서는 특종이 된다”며 “지역 맥락과 특성에 따라 뉴스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이상치 탐지 모델’은 예외적 사건을 감지한다. 기존 데이터로만 학습된 AI가 처음 접하는 사건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필터링하는 맹점을 막기 위해, 사각지대에 있는 새로운 문서나 정보를 의도적으로 선별해내는 안전장치다.

이트롬쇠 편집국에 전시된 상장들. ‘진’의 개발 이후 노르웨이의 탐사보도재단(SKUP)에서 2년 연속 탐사보도상을 수상했다. /김한내 기자

◇백문이 불여일행… “직접 경험해야”
“AI를 활용한 데이터 저널리즘을 대규모 탐사보도에 사용하는 것을 넘어, 기자들이 매일 취재할 때 사용하는 일상적인 루틴으로 만드려고 해요.”

이트레베르그는 향후 AI를 어떻게 활용해 나갈 계획인지를 묻자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일회성 기획 보도를 넘어, 뉴스룸의 일상적인 취재·보도 프로세스에 AI를 보조 도구로 안착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그런 만큼 기자가 AI의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고 능숙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실전 중심의 교육도 함께 이뤄진다. 이트롬쇠의 교육은 기자들이 취재 중인 현장 자료를 가져와 직접 AI를 돌려보는 실습 형태로 진행된다. 이트레베르그는 “교육 초기에는 기자가 AI를 이해하지 못하고 모호하게 질문을 던져 답변에 거짓말을 하는 환각(할루시네이션)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면서 “교육 기간 동안 AI 답변의 맥락을 통제하고 검증 코드를 연동하는 법을 배우면서 정제된 팩트만 추출하는 능력을 쌓는다”고 설명했다.

AI 활용에 엄격한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기술이 저널리즘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내부의 회의적인 시각을 수용하고 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기자들이 한데 모여 밤샘 토론까지 벌인 끝에 뉴스룸 전체가 준수해야 할 ‘AI 거버넌스 윤리 플랫폼 합의안’을 명문화했다.

합의안의 주요 내용은 4가지다. △기사 작성과 문장 생산에 AI를 사용하지 않을 것 △AI에게 집필권을 넘기는 자동화 저널리즘 금지 △편집권과 기사 가치 판단은 오직 기자의 몫으로 남길 것 △AI가 도출한 모든 데이터와 출력물은 기사화 전 아날로그 방식으로 검증할 것 등이다.

이트레베르그는 “저널리즘의 핵심은 검증이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이 작업을 AI에 넘기면 저널리즘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뉴스룸의 AI 도입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이트롬쇠가 여전히 기자의 현장 취재를 원칙으로 삼는 이유다. “데이터 검증의 핵심은 수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사례를 발굴하는 데 있습니다. 데이터는 현장의 목소리를 효율적으로 찾아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니까요. 뉴스의 파급력 또한 단순한 통계가 아닌, 데이터가 입증하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나온다는 게 저희의 원칙입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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