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점·신용점수·팔로워수…데이터가 정하는 새로운 서열

강종훈 2026. 8. 2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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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는 내비게이션이 가장 빠른 경로를 골라주고, 주행을 마치면 운전점수가 평가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점수와 순위로 대상을 비교하고, 자신의 점수와 평가에도 신경 쓴다.

마리옹 푸르카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키런 힐리 듀크대 교수는 신간 '서열 사회'에서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 발달로 상품과 서비스는 물론, 사람까지 평가하고 점수를 매겨 서열화하는 새로운 질서를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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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옹 푸르카드·키런 힐리 '서열 사회' 출간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출근길에는 내비게이션이 가장 빠른 경로를 골라주고, 주행을 마치면 운전점수가 평가된다. 점심시간에는 별점을 보고 식당을 고른다. 택시나 대리운전을 이용할 때도, 중고 거래를 할 때도 평점을 확인한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팔로워 수와 '좋아요'를 확인한다.

수험생도 아닌데 하루 종일 점수와 함께하는 현대인의 일상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점수와 순위로 대상을 비교하고, 자신의 점수와 평가에도 신경 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평가하고 평가받는 일이 삶의 한 부분이 됐다.

마리옹 푸르카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키런 힐리 듀크대 교수는 신간 '서열 사회'에서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 발달로 상품과 서비스는 물론, 사람까지 평가하고 점수를 매겨 서열화하는 새로운 질서를 해부한다.

두 사회학자는 피에르 부르디외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 여러 학자의 논의를 짚어가며 서열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지 살펴본다. 이들은 지난 50년 동안 데이터 수집과 분석 범위가 확대되면서 우리가 삶을 경험하고 만들어가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재구성됐다고 진단한다.

저자들은 "이제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즉시 인증되고, 기록되고, 분류되고, 일종의 척도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곤 한다"며 "우리는 측정을 지향하고, 측정에 의해 정당화되고, 측정을 통해 통치되는 서열 사회 속에 산다"고 말했다.

여러 사회비평서와 달리 두 저자는 거대 기술기업을 '악마화'하거나 사용자를 어리석은 피해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비평가들은 신체 활동을 측정하는 기기 사용자들에게 "하루치 걸음 수를 채우도록 북돋는 식으로 당신을 교묘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저자들은 "사회이론가들은 기술이 주는 기쁨의 힘을 과소평가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별점은 많은 식당 중 어디로 갈지 결정할 때 고민을 덜어주고, 평점은 제품 선택에 도움을 준다. 자신의 순위와 점수를 높이는 일은 동기 부여가 되고 재미도 준다.

저자들이 기쁨을 언급한 것은 서열 사회를 옹호해서가 아니라, 서열 사회가 구축된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사용자가 편리하고 유용한 서비스를 얻는 대신 자신의 데이터를 내줬으며, 이런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분류와 측정, 서열화가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많은 사람이 등급과 순위가 유용하고 매력적임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도구에 종속되진 않으려 한다. 특히 자기가 평가 대상이 될 때는 더욱 그렇다. 대학 평가 순위를 경멸하면서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로스쿨처럼 순위에 기대면서 동시에 거부하는 역설이 존재한다.

문제는 데이터 시대의 새로운 질서를 되돌리기 어려운 현실에서 과연 그 서열이 공정한지에 있다. 데이터가 매기는 새로운 서열은 객관적인 결과처럼 받아들여진다. 자기 행동을 바탕으로 매겨진 점수이기 때문에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어렵다.

저자들은 사회구조가 만든 격차가 개인 기록 속에 나타나고, 이는 불평등에 그럴듯한 정당성을 입힌다고 지적한다. 또 한 번 매겨진 점수는 다음 기회나 평가에도 영향을 미쳐 또 다른 불평등을 낳기도 한다고 말한다.

두 저자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다만 이러한 모순 속에서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새로운 서열을 구축하는지 직시하도록 돕는다.

동아시아. 서영찬 옮김. 324쪽.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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