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작가-이세영 ‘거기까지가 꽃의 기억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기억의 방을 가지고 있다.
기억은 과거의 장면이 아니라 꽃잎에 남고, 밥상에 놓이며, 어머니의 굽은 손과 오래된 사랑의 말속에 스며든다.
『거기까지가 꽃의 기억입니다』는 지나간 시간이 어떻게 현재의 언어로 되살아나는지를 보여주는 시집이다. 한 사람의 몸에 남은 시간이 시가 되었으니, 다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활짝 꽃 피우기를 기대해본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기억의 방을 가지고 있다. 잊고 있던 장면이 문득 떠오르고, 빛바랜 물건에서 친구의 목소리가 되살아날 때, 기억은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속 깊이 스며들고, 또 다른 기억은 한참을 묵힌 뒤에야 비로소 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세영의 첫 시집 『거기까지가 꽃의 기억입니다』를 읽으며 오래 머물게 되는 단어 역시 ‘기억’이다. 기억은 과거의 장면이 아니라 꽃잎에 남고, 밥상에 놓이며, 어머니의 굽은 손과 오래된 사랑의 말속에 스며든다. 기차가 지나간 자리에도, 서랍 속 먼지에도 시간이 남아있다.
「즐문」에서 시인은 시골집 꽃밭에서 가져온 수선화와 꽃단지를 닦다가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대야에 앉혀 씻기고 머리 빗겨주던 어머니”의 굽은 손이 꽃단지에 새겨진 무늬 속에 되살아난다. 잊혔던 과거를 현재의 손끝으로 다시 느끼는 것이다.
오래된 관계의 깊이를 드러내는 「사랑의 표현」에서는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서 달라진 사랑을 표현한다. 세월을 함께 견딘 사람은 젊은 날의 뜨거운 고백 대신에 “국 한술 더 떠주는” 것으로 다정함을 건넨다. 사랑은 변했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 스며들어 다른 모습으로 남는다.
이세영의 시에서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게 아니다. 지나간 시간은 사물을 통해, 행위를 통해 현재로 되돌아온다.
「시실리(時失里)에서」에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 동안/ 장미 한 송이 피었다가 진다”에서는 기차가 움직이는 삶의 순간과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의 변화가 느껴진다. “또 엄마처럼 늙어가고”라는 문장에서는 나이 들어가는 나와 어머니의 시간이 이어진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는 순간, 나의 시간은 누군가의 시간과 겹쳐져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그런데 이세영 시인은 기억에 관해 말하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필사와 표절 사이」에는 시인의 내밀한 고백이 들어있다. “내 말이 아닌 것을 내 말로 쓰는 것이 창작”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쓰고 싶은 절실함과 쉽게 가져오고 싶은 유혹 사이에서 흔들린다.
「다듬지 마」의 “처마에 스치는 바람 소리도/그늘에 앉은 새소리도 그대로 둬/다듬지 않아야 그 집이지”라는 말은 글을 지나치게 매만지다가 날것의 감동을 잃을지 모른다는 우려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다듬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애써 시구를 다듬고”, “진짜로 다듬지 않아도 괜찮은 한마디”를 기다린다.
“원고 뭉치를 햇볕에 널면 부슬부슬 떨어지는 꽃잎, 꽃잎”이라는 「퇴고」 역시 시를 향한 시인의 애틋함과 긴 기다림의 시간이 느껴진다.
『거기까지가 꽃의 기억입니다』는 지나간 시간이 어떻게 현재의 언어로 되살아나는지를 보여주는 시집이다. 한 사람의 몸에 남은 시간이 시가 되었으니, 다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활짝 꽃 피우기를 기대해본다.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 우수상, 남도의병 콘텐츠 공모전 스토리 부분 대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고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광대특공대』,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전주』,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열 살 사기열전을 만나다』 등이 있다. 『책 깎는 소년』이 6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Copyright © 전북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