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명단 샀다, 맘껏”…여의사, 프로포폴 4700차례 불법투약 [더뎁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금도 대놓고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하는 병원이 강남에 수백 곳은 될 겁니다. 그런데 더 이상 새 수사를 시작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별관에서 만난 김서영 검사(40·사법연수원 43기)는 의료용 마약 수사의 현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의료용 마약 수사가 오래 걸리는 이유는 불법 투약이 겉으로는 의사의 정상적인 의료행위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식약처 특별사법경찰관도 마약류취급자인 의료진을 수사하고 있지만 불법 투약자를 피의자로 입건해 함께 수사할 권한은 없어 병원과 중독자를 아우르는 범행 구조 전체를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투약한적 없는데 기록이…” 신고가 단초
출입국 기록 수천건 일일이 대조하며 추적
50대 의사, 중독자에 중국인 명의로 투약 권유
6명 세상 떠나…중독-우울증에 극단선택한 듯
“강남에만 병원 수백곳서 대놓고 불법 투약할 것
의사 돈벌이-고의성 입증위해 1~2년 수사 다반사
검사 수사권 사라져 공백 우려…전담팀 이어가야”
“지금도 대놓고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하는 병원이 강남에 수백 곳은 될 겁니다. 그런데 더 이상 새 수사를 시작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별관에서 만난 김서영 검사(40·사법연수원 43기)는 의료용 마약 수사의 현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검찰은 그간 수사를 통해 서울 강남 일대에서 프로포폴 불법 투약이 의심되는 병원 수십 곳을 파악했다. 아직 파악하지 못한 규모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수백 곳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형사사법체계 개편으로 검사의 수사권이 사라지면서 이들을 추적해 온 전문수사 영역이 공백 상태가 될 수 있어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법 의사’만 추적하는 마약 전문수사팀
서울중앙지검 ‘의료용 마약 전문수사팀’은 프로포폴 등 의료용 마약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의사와 병원을 전담해 추적해 온 유일한 검찰 수사팀이다. 서울중앙지검은 2024년 2월부터 전문수사팀을 운영해 왔다. 이른바 ‘롤스로이스남 사건’과 배우 유아인 사건 등 강남 일대 병원의 프로포폴 불법 투약 문제가 잇따라 드러나면서다. 전문수사팀은 필요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11월 기존 1개 팀에서 2개 팀(약 20명)으로 확대됐다. 2019년 대구지검 강력부 등을 거치며 줄곧 마약 수사를 해온 김 검사는 이 중 한 팀을 맡고 있다.
전문수사팀이 올 5월말 구속 기소한 이른바 ‘외국인 명의 도용’ 의사 사건이 대표적 성과다. 검찰에 따르면 50대 여성 의사 한 명이 2020년부터 5년간 프로포폴을 4700여 차례 불법 투약했다. 중국인 여행사로부터 중국인 명단을 사들여 중독자들에게 이들의 명의로 프로포폴을 투약하도록 먼저 권하는 방식이었다.
수사의 첫 시작은 한 제보자가 “나는 투약한 적이 없는데 투약한 것으로 기록이 돼 있다”고 신고한 게 단초였다. 명의 도용을 직감한 전문수사팀은 수사에 착수한 뒤 “의사가 ‘중국인 명단을 샀으니 마음껏 투약해도 된다’고 말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수사팀은 투약한 것으로 돼 있는 중국인 명의자가 당일 실제 국내에 체류했는지를 법무부 출입국 기록과 일일이 대조했다. 김 검사는 “명확하게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투약 일자에 우리나라에 없었던 중국인들만 골라냈다”며 “그것만 몇천 건이 됐고 실제로는 훨씬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팀이 마침내 압수수색한 의사의 주거지에서는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상자 수십 개와 프로포폴이 한 무더기 발견됐다. 이미 6명의 중독자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김 검사는 “의사가 처방했으니 문제 없을 것이라고 믿다가 중독과 우울증이 심해져 자살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의사 ‘고의’ 입증하기 위해 수천 명 내역 들여다봐
전문수사팀이 해당 사건 하나를 수사하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 의료용 마약 수사가 오래 걸리는 이유는 불법 투약이 겉으로는 의사의 정상적인 의료행위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약류관리법상 의료인이 마약류를 진료가 아닌 ‘업무 외의 목적’, 즉 돈벌이를 위해 ‘고의’로 투약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처벌할 수 있다. 의사가 환자의 중독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정상적인 진료가 아니라 돈을 벌 목적으로 투약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야 하는 것.
예를 들어 의사가 ‘환자가 중독자인지 몰랐고 의학적 판단에 따라 주기적으로 투약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 이를 뒤집을 증거가 필요하다. 수사팀은 이를 위해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을 통해 해당 환자가 여러 병원을 돌며 얼마나 많은 마약류를 투약했는지 파악한다. 의사가 환자의 다른 병원 처방 기록 등을 통해 중독자임을 인지했음에도 투약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병원 한 곳을 들여다보려면 통상 투약자 약 1000명의 처방·투약 내역을 확인해야 한다. 조사 범위를 5~10년으로 넓히면 대상자는 수천 명으로 늘어난다. 이에 더해 진료기록부와 폐쇄회로(CC)TV, 병원 직원과 투약자의 진술 등을 파악해야 한다. 병원을 특정한 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자료 등을 분석해 압수수색에 들어가기까지 통상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고 한다. 의료용 마약 사건 하나를 기소할 때 쌓이는 기록만 수만 쪽에 달한다.
“의사들은 절대 자백하지 않는다”
의사라는 피의자의 특성도 수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의사는 일정한 직업과 주거지가 있고 전과가 없는 경우가 많아 일반 마약사범에 비해 구속영장 발부가 쉽지 않다고 한다. 불법 수익 등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의사가 병원 직원들의 변호사까지 선임해 주면서 수사 과정에서 진술 내용을 맞추는 경우도 있다. 김 검사는 “(텔레그램 등에서) 암암리에 마약을 파는 것도 문제지만 의사가 자신의 면허를 활용해 국민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중독시키는 행위는 더욱 발본색원해서 처벌해야 할 범죄”라고 했다.
한 병원의 투약자를 추적하다 보면 이들이 돌아다닌 다른 병원이 포착되고, 여러 투약자의 진술과 자료가 겹치면서 또 다른 의심 병원이 수사선상에 오른다. 그러나 수사 종결까지 대부분 1, 2년 이상 걸리는 의료용 마약 수사는 현재 새로운 수사 착수보다는 기존 사건을 마무리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발전하는 마약 범죄…“전문수사팀 계속 필요”
수사기관이 개편되는 사이 의료용 마약 범죄 수법은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일부 병원은 정상 환자에게 실제 사용한 것보다 많은 양의 프로포폴을 시스템에 입력해 남은 약물을 만든 뒤 중독자에게 현금을 받고 투약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의사가 유흥업소 종사자들과 연락하며 “오늘 프로포폴 몇 개 남았다”고 먼저 알린 뒤 투약해 준 사례도 있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를 마약처럼 제공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향정신성의약품인 메틸페니데이트를 여러 병원에서 대량 처방하거나 타인 명의로 처방해 주면 가루로 만들어 코로 흡입하는 방식이다.
김 검사는 경찰 혹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서 의료용 마약 전담수사팀을 만들어 수사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검사는 “정의감만으로 수사를 할 수는 없다. 수사를 잘해 성과를 내고 직원들이 승진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한 동력”이라며 “그런데 의료용 마약 수사는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아 이에 구애받지 않는 전문수사팀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전문수사팀에 속한 마약 수사관들은 인사이동이 상대적으로 적어 전임 검사가 시작한 사건을 후임 검사와 함께 계속 수사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직원 1명도 수사팀에 파견돼 NIMS 분석과 약학 지식을 지원한다. 식약처 특별사법경찰관도 마약류취급자인 의료진을 수사하고 있지만 불법 투약자를 피의자로 입건해 함께 수사할 권한은 없어 병원과 중독자를 아우르는 범행 구조 전체를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
김 검사는 “의료용 마약 사건은 살인이나 성폭력처럼 눈에 띄는 피해자가 없어 누군가 나서서 처벌해달라고 하지 않는다”며 “중독자가 대부분 20, 30대로 젊은 편인데 이들이 재산을 탕진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수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중국인 명단 샀다, 맘껏”…여의사, 프로포폴 4700차례 불법투약 [더뎁스]
- 트럼프 “김정은, 핵무기 57개 보유”…‘대화목표 비핵화냐’에 “그 얘기 하고 싶지 않다”
- ‘용산특별법’ 처리 내주로 연기…“김윤덕-오세훈 논의 반영”
- “네 발 경비원이 아파트 순찰”…타워팰리스에 경비 로봇 도입
- ‘한푸’ 입고 경복궁 활보한 中인플루언서…“외국인들 한복 오해 우려”
- “가슴 만지면 행운”…흉상 복원 보름만에 또 ‘반질반질’
- 폭염에 알프스 빙하 녹자…34년전 조난 2명 시신 발견
- 김민석 “‘법치파괴 조희대 물러나라’ 현수막 전국에 걸어라”
- 서울 아파트 월세 비중 55% 돌파…임대차 ‘월세화’ 가속
- 美해군, 호르무즈서 유조선 ‘스텔스 호송’…하루 500만배럴 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