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문화유산 환수 기틀 마련… 올곧은 선비이자 배려 깊은 지성[추모합니다]

2026. 8. 2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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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소재문화재재단(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아 해외문화유산 환수의 기틀을 세운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

안 교수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을 맡은 내게 전화를 걸어서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무계정사지가 차고지로 바뀔 위기에 처했으니 이를 막아야 한다"고 했고, 나는 "꼭 그렇게 하자"고 답했다.

무엇보다 2012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아 2016년 9월까지 해외 문화유산의 환수와 조사에 힘쓴 것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안 교수와 나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문화재위원 등으로 함께 활동하며 각별히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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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합니다 - 안휘준(1940~2026) 서울대 명예교수
지난 2013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고국으로 돌아온 겸재 정선 화첩’전 개막식에서 필자(뒷모습)가 안휘준 당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을 축하하고 있다. 삼성출판박물관 제공

국외소재문화재재단(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아 해외문화유산 환수의 기틀을 세운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 그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안 교수가 지난 7월 20일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세상이 텅 빈 듯 허전했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며, 가슴이 먹먹해지고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솟구쳤다.

그가 타계한 후 언론이 게재한 부고 기사들에서 보듯 안 교수는 한국 미술사학의 주추를 세운 1세대 학자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학계에 사실상 존재하지 않던 한국 회화사라는 학문 분야를 최초로 설계했다는 것을 나는 높게 평가해 왔다.

그는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고 홍익대 미대를 거쳐 모교인 서울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한국미술사학회장, 서울대 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건립 자문위원,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안 교수와 나는 지난 2000년 북한 평양에 함께 간 적이 있다. 남북 문화예술교류 차원에서 진행된 문화계 인사들의 방북이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한국박물관협회장이었고, 그는 남북 문화재 교류를 꾸준히 주장해 온 미술사학계 중진이었다. 그때 그가 거기서 환갑을 맞았던 게 엊그제 일처럼 떠오른다.

안 교수와 내가 특별히 가까워진 것은 안평대군 이용 집터(安平大君李瑢家址), 즉 무계정사지(武溪精舍址)를 문화재로 보존해야 한다는 데 뜻을 함께하면서부터였다. 내가 문화유산국민신탁(The National Trust for Cultural Heritage) 이사장으로 일할 때였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보전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취득·보전·관리·활용하기 위해 활동하는 민간 단체로,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를 모델로 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유홍준 문화재청장(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문화재 운동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단체로 문화유산국민신탁이 필요하다며 관련 법안을 마련했고, 필자에게 “설립 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청해 왔다. 그런 식견을 지녔던 유 청장은 안 교수의 서울대 제자였다.

안 교수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을 맡은 내게 전화를 걸어서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무계정사지가 차고지로 바뀔 위기에 처했으니 이를 막아야 한다”고 했고, 나는 “꼭 그렇게 하자”고 답했다. 마침 그즈음에 김영종 건축사가 종로구청장으로 당선된 것이 천운이었다. 김 구청장은 건축사답게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무계정사지를 보존할 뿐만 아니라 유서 깊은 한옥인 오진암(梧珍庵)을 이축해서 무계원(武溪園)으로 재탄생시켰다.

안 교수는 무계정사의 주인 안평대군이 아꼈던 화가 안견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그의 책 ‘안견과 몽유도원도’는 조선만의 독자적 산수화 양식을 만들어 낸 불세출의 화가를 깊이 있게 조명한 명저이다. 30대 때부터 안견 연구에 천착했던 안 교수는 일본에 있던 ‘몽유도원도’를 환국시키는 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충남 서산군은 안견기념관을 건립하며 몽유도원도를 환국시켜 소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는데, 이는 안 교수가 안견의 고향이 서산이라는 것을 고증해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 관장이 무계정사에 옛 그림 4점을 기증한 것이 기억난다. 그가 스승인 안 교수가 타계한 후 장례식이 잘 치러질 수 있도록 남모르게 애쓰는 것을 보며, 사제지간의 애틋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안 교수는 유 관장뿐만 아니라 한정희(홍익대 명예교수)·홍선표(이화여대 교수)·이태호(명지대 교수)·최성은(덕성여대 명예교수)·장진성(서울대 교수) 등 각 대학 미술사학과를 이끌어 온 후학을 배출했다.

안 교수는 대학을 정년 퇴임한 이후에도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쳐 후학의 모범이 됐다. 무엇보다 2012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아 2016년 9월까지 해외 문화유산의 환수와 조사에 힘쓴 것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민간 활동을 한다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정부 차원에서 국가 간 관계까지 고려하며 우리 문화의 주권을 세워야 한다. 안 교수가 그 기틀을 튼실히 다져 놨다.

안 교수와 나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문화재위원 등으로 함께 활동하며 각별히 지냈다. 나는 1939년생이고, 그는 1940년생이니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무람없는 벗으로 지내면서도 나는 가끔 장난삼아 군기를 잡았다. “객지에선 10년 차이도 벗이라지만 지성인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나는 1930년대 생이고, 그대는 1940년대 생이다. 역사가 그렇게 기록할 텐데, 어찌 서로 맞먹을 수 있겠는가.”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명예이사장

그러면 안 교수는 사람 좋게 웃어넘겼다. 참으로 올곧은 선비이자, 점잖고 배려 많은 지성이었다. 그런 벗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한여름 날씨에도 가슴이 시리다. 젊은이들에겐 낯설게 들리겠지만, 일제 공간에서 태어난 우리 세대는 ‘애국’을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며 살아왔다. 안 교수도 개인의 영광을 넘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한결같이 지키며 자신의 길을 걸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쪼록 후학들이 그가 세운 주춧돌을 기반으로 아름답고 튼튼한 문화의 집을 여기저기 잘 세워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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