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북적북적] “자신만의 아름다운 정원을 가꿔가는 과정”…조은 작가가 말하는 자연과 일상, 그리고 그림

김호이 기자 2026. 8. 20. 08:4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진= 김호이 기자]

[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호이 기자]

자연과 사람, 식물과 풍경이 한 화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현실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장면이지만, 조은 작가의 그림 속에서는 이질적인 존재들이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고요해 보이는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작가가 일상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 자연을 바라보며 쌓아온 시간이 켜켜이 담겨 있다.

조은 작가는 일상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자연의 자유로운 형태에 담아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적인 동양화의 재료인 한지와 먹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아크릴과 구아슈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자신만의 화면을 만들어간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중요한 단어 중 하나는 '정원'이다. 정원은 단순히 자연을 가꾸는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과 뜻밖의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자기만의 세계이자 삶의 방향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오늘의 정원' 역시 이러한 작가의 작업 세계에서 출발한다. 조은 작가를 만나 자연과 도시, 전통과 현대, 그림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루하루가 결국 세상에 하나뿐인 정원을 만들어가는 과정"

이번 전시 제목인 '오늘의 정원'은 조은 작가가 직접 정한 이름은 아니다. 전시를 기획한 문세빈 PD가 작가의 작업 방식에 착안해 제안했다.

"제가 마음에 정원을 가꾸듯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 착안하셔서, 무수한 선택과 뜻밖의 순간들로 이루어진 하루하루가 결국 세상에 하나뿐인 아름다운 자기만의 정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의미로 이 제목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조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여러 시리즈로 미리 구분하지 않고 작업해 왔다. 홈페이지에 작품을 올리면서 이들을 어떤 카테고리로 묶을지 고민하다가 '정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정원을 가꾸는 일과 닮아 있다.

"저는 일상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자연의 자유로운 형태에 눌러 담는 수필 같은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데, 그 과정이 정원을 가꾸는 일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정원을 직접 가꿔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 정원은 마음먹은 대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생기고 시행착오도 겪는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세계가 만들어진다.

작가에게 그림도 마찬가지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원을 가꿔 나가듯, 다양한 요소들을 조화롭게 배치하고 연결하는 것이 제 작업이고, 그 과정들이 고스란히 모여 제 삶의 방향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원에는 가족과 친구뿐 아니라 고양이와 새 같은 뜻밖의 존재들도 찾아온다.

"이 정원이 바깥세상과 저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 같습니다."

현실에 없는 풍경을 그리는 이유…'다양성'을 담다

조은 작가의 작품에서는 현실이라면 한자리에 존재하기 어려운 사람과 식물, 풍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일본 단풍과 팜트리가 함께 등장하는 식이다.

그가 이러한 장면을 구성하는 이유에는 자연을 바라보며 느꼈던 특별한 경험이 있다.

"높낮이와 형태가 다른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보면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던 적이 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성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 속 풍경이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여러 풍경이 작가의 기억과 경험 속에 쌓이고 중첩되면서 새로운 장면으로 탄생한다.

"결국 실존하는 여러 풍경들이 제 안에서 쌓이고 중첩되면서 어떤 이상적인 미지의 장면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을 끄집어내서 작업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화면을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한 화면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다양성과 공존이라는 주제로 확장된다.

 "가로수가 없는 도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조은 작가에게 자연은 특별한 여행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가까운 존재다.

그는 카페 창밖으로 흔들리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뭇잎을 바라보며 자연과 도시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도시의 가로수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도시를 벗어나 살아갈 자신은 없지만, 가로수가 없는 도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적었습니다."

그에게 도시 속 자연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도시 속의 자연은 그저 경관을 위해 필요한 장식이 아니라 내 안의 자연성을 확인하고 회복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작품의 영감이 정확히 어디에서 오는지 스스로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자연과 일상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버지에게서 자연스럽게 배운 한지와 먹

조은 작가는 동양화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한지와 먹을 접했다. 하지만 진로나 대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해왔다.

"아버지는 늘 제 의견을 묵묵히 지지해 주셨고, 덕분에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해 왔어요."

그럼에도 어린 시절부터 곁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익힌 것들은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안에 남았다.

"어린 시절부터 곁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익힌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저와 제 작업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일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보낸 시간은 결국 그의 작업을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가 됐다.

전통 재료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조형을 찾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조은 작가는 자신을 소개할 때 '동양화가' 또는 '한국화가'라는 표현보다 '먹과 한지를 기반으로 작업한다'고 말한다.

전통 재료에 대한 애정은 분명하지만,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는 않는다.

"깊은 매력을 느끼는 전통 재료들을 사용하되, 일상에서 영감을 받은 현실의 풍경을 조합해 그려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물감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아크릴과 구아슈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화면을 만들기 위해서다.

"색감과 구도에 있어서는 편견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기존 동양화와의 차별점을 의식하기보다는 자신이 배워온 방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조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저에게 맞는 재료를 선택하고, 제가 표현하고 싶은 화면을 나다운 방식 혹은 고유한 방식으로 나타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연을 그리지만 결국 그리고 있는 것은 '마음'

조은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자연을 그린 것 같으면서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역시 자연의 형태를 빌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담아낸다고 말한다.

"영화든 소설이든 음악이든 사진이든, 모든 풍경에는 그 풍경을 담아낸 사람의 마음, 혹은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자연의 형태를 빌려와 여러 감정과 생각들을 담아냅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자연의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화면 속 풍경에는 작가가 바라본 세계와 그 세계를 바라보며 느낀 마음이 함께 존재한다.

고요한 풍경 속에 감정이 숨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숨기기도 하고 스며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연과 일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작품의 동기가 되거나 화면의 에너지를 결정하지만, 세세한 생각이나 이야기를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경계한다.

"보시는 분들이 각자의 감정과 기억을 담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두고 싶습니다."

한지와 먹이 만들어내는 우연과 깊이

한국화를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조은 작가는 먼저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것을 권한다. 한국화 안에도 여러 장르와 표현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화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한지의 물성이다.

"한지는 물과 물감을 수렴하는 특징을 가지는데, 그 위에 어느 재료를 어떤 속도와 방식으로 얹느냐에 따라 다양하고 풍부한 먹과 색의 층위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지는 작가의 의도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우연과 의도가 함께 작용하고 종이 자체가 표현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먹 역시 그에게 특별한 재료다.

"먹의 깊고 묵직한 색감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재료로 무궁무진한 질감과 느낌을 낼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그가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는 아름다움과 두려움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표현하기에도 먹은 잘 맞는 재료다.

"통제하기 쉽지 않은 재료라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한지와 먹, 모필 모두 자연에서 온 재료인 만큼 자연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오래 생각한 뒤, 붓을 들면 거침없이

작품을 시작하기 전 조은 작가는 생각을 정리하며 뜸을 들이는 시간이 긴 편이다. 에스키스를 하고 참고할 자료들을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빈 화면에 붓을 대는 순간부터는 달라진다.

"막상 텅 빈 화면에 붓을 대고 나서는 거침없이 그려나갑니다."

작업실에서의 하루 역시 일정한 리듬을 따른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정해진 루틴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정원을 둘러보고 음악을 틀고 커피를 마신 뒤 이른 점심을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그림과 함께 보낸다.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는 화판을 째려보거나 그림을 그립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일은 제 취미이자 생활이자 일"

바쁜 도시에서 살아가면서도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묻자 그는 자연을 바라보는 일이 자신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답했다.

"자연을 바라보는 일은 제 취미이자 생활이자 일의 일부이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습니다."

자연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다. 그래서 오래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에게 자연은 작품의 소재이면서 동시에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여유는 그렇게 조금씩, 습관처럼 일상에서 발견해야"

마지막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를 찾는 사람들에게 조은 작가는 '자신만의 방식'을 이야기했다.

모두에게 여유의 의미는 다르다. 그 역시 항상 여유를 챙기며 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퇴근 후 산책만큼은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시간 동안 복잡한 감정들이 정리되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여유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여유는 그렇게 조금씩, 습관처럼 일상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정직하게, 그리고 어김없이 변화하는 자연을 수시로 느끼는 것도 자신의 자연스러운 감각과 리듬을 찾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최근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작가 역시 자신의 그림이 누군가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시간을 들여 전시장을 찾아와 주신 것처럼, 수시로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진다면, 조금씩 여유로워지는 마음의 한켠에 자신만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은 작가에게 그림은 결국 삶을 가꾸는 일과 닮아 있다. 정원을 가꾸듯 매일의 감정과 생각을 들여다보고,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을 받아들이며, 서로 다른 것들을 조화롭게 연결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

그렇게 쌓인 하루하루가 어느 순간 하나의 풍경이 되고, 그 풍경은 다시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정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