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창작은 노동이자 공익 활동” 못 박은 프랑스···‘시혜’ 아닌 ‘사회적 권리’[예술이 노동이 되기 위해]
1930년대부터 40여년에 걸쳐 구축
공공기관들 역할 나눠 체계적 운영
매년 공연예술인 13만명 실업급여
보호 대상 ‘비활동 기간’ 등 논쟁도

“예술창작은 사회적 권리를 발생시키는 노동이다.”
프랑스 문화부 예술창작총국(DGCA)이 밝힌 예술인 사회보장제도의 첫 번째 원칙이다. 프랑스는 예술인의 사회적 권리를 일찍부터 제도로 보장해왔다. 예술인을 별도의 지원 대상으로 두기보다 예술노동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 보편적 사회보장 체계 안에 편입해왔다. 이 같은 프랑스 모델은 한국의 예술인 사회안전망 제도가 나아갈 방향에도 시사점을 준다. 이 제도가 어떤 철학에서 출발해 어떻게 운영되고 변화해왔는지를 DGCA에 서면으로 물었다.
프랑스 예술인 사회보장제도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점진적으로 구축됐다. 1930년대 영화산업 성장과 함께 단기 프로젝트를 오가는 공연예술인을 보호하기 위한 ‘앵테르미탕’(intermittent·공연예술 간헐적 근로자 제도)이 등장했고, 1945년 국가 사회보장제도가 만들어진 뒤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 1964년에는 시각·조형·그래픽 분야 예술인을 위한 보호제도가 마련됐으며, 1975년에는 문인과 사진작가 등 저작권을 창출하는 ‘아르티스트 오퇴르’(artiste-auteur·독립 창작자) 전반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DGCA는 제도의 가장 큰 특징으로 “예술가를 일반 사회보장 시스템에 통합하면서도 예술 직종의 특수성에 맞게 규정을 조정한 점”이라고 밝혔다.
핵심 원칙은 세 가지다. 예술창작을 사회적 권리를 발생시키는 노동으로 인정하고, 불규칙한 소득 구조에 맞춰 사회보험을 조정하며, 질병·퇴직·가족 수당과 실업보험 등으로 고용 불안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예술창작을 “집단적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공익적 활동”으로 본다는 인식이 있다. 창작이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인 만큼 예술인에게 시혜적 지원이 아닌 그 특성에 맞게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조정해 적용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예술가’를 하나의 단일한 신분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창작물을 만들고 저작권이나 작품 활용으로 소득을 얻는 아르티스트 오퇴르와, 고용계약을 하고 작품을 실연하는 배우·무용수 등 공연예술인은 서로 다른 법 체계의 적용을 받는다. 전자는 지식재산권법·사회보장법, 후자는 노동법을 기반으로 한다.
공공기관은 체계적 운영을 위해 역할도 분담돼 있다. 문화부가 정책 방향을 정하고 관계기관을 조율한다면 사회보험료 징수와 소득 신고는 ‘유르사프 리무쟁’(URSSAF Limousin)이 단일 창구로 담당한다. 건강보험은 CNAM, 기본연금은 CNAV, 예술가·작가 추가연금은 IRCEC, 공연예술인 실업보험은 프랑스 트라바이(France Travail), 직업훈련은 AFDAS가 각각 맡는다. 여러 전문기관이 역할을 나눠 하나의 사회보장망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프랑스에는 약 35만명의 예술가·작가가 예술 관련 소득을 사회보험 체계에 신고하고 있으며, 매년 12만5000~13만명의 공연예술 종사자가 앵테르미탕으로 실업급여 혜택을 받고 있다. 재원은 고용주와 근로자, 예술인들이 납부하는 사회보험료와 기여금, 실업보험의 연대기금을 통해 마련된다.
논쟁도 있다. 공연예술인의 ‘비활동 기간’을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가가 대표적인 문제다. 앵테르미탕은 12개월 동안 507시간의 인정 노동을 충족한 공연예술인에게 수입이 없는 실업 기간에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전해준다. ‘507시간’ 기준을 둘러싸고 ‘강화’와 ‘완화’를 요구하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에 관해 DGCA는 “실업보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공연예술 분야의 구조적 고용 단절을 보완하는 장치”라고 밝혔다. 고용계약이 이뤄지고 보수를 받으며 사회보험료가 납부되고 급여 명세서에 기록된 유급 시간에 한해 노동시간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역시 디지털 창작과 인공지능(AI) 등 기술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DGCA는 “AI 모델 학습에 사용되는 저작물의 보호, AI 기반 창작물의 법적 분류, 새로운 디지털 창작 직종에 기존 제도를 어떻게 적용할지 논의하고 있다”며 “궁극적 목표는 기술 변화에도 사회적 보호와 인간의 창작 활동 간 연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술가가 불규칙한 소득 때문에 창작을 포기하지 않도록 사회적 위험을 공동으로 분담하고,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예술인 제도의 핵심이다. DGCA는 “문화와 창조 산업의 활력을 높이고 예술가들의 전문성과 국가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밝혔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하영 논란 뒤 가려진 ‘알고 보니 금수저’에 대한 선망···‘기득권 세습’ 상찬하던 매체들
- 증명에 13분이면 충분했다…이강인, 라리가 개막전서 ATM 데뷔골 작렬
- 트럼프 “김정은, 매우 강력한 핵무기 57개 보유” 숫자 첫 공개···“연내 만나겠다”며 대화
- 이 대통령 “트럼프 결단에 경의···한미훈련 축소해 대화 여건 조성”
- 전력 남는데 아파트 정전, 이유 따로 있었다···국책연구기관 진단은 ‘이것’ 때문
- 이 대통령, 김·정·송과 ‘단합 육회’ 만찬···김민석 “과한 표현 사과” 정청래 “사선 넘은
- 이진숙 사퇴·수사 요구 쏟아지는데···군민의 선택 짓밟지 마라? “제명 반대” 나선 국힘 달성
- ‘집안의 수치’였던 할아버지, 일본 경찰 신문 기록에 있었다···손녀가 되살린 독립운동가의
- ‘내부고발’ 홍장원, ‘회군 지시’ 조성현 재판행...내란특검 판단 뒤집혔다
- 백록담 물 몰래 먹는 밤도깨비족 꼼짝 마!···한라산에 열화상 카메라 단 드론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