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실은 트럭, 연천 마을 찾는다…“안 오면 버스 20분 타야” [현장]

송상호 기자 2026. 8. 20.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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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휴일이었던 지난 17일 오전 11시20분께 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 경로당 앞.

신 할머니가 계란 한판과 두유 한 상자를 들고 가기 어렵다고 하자 행복마차 운영을 맡은 연천 사회적기업 해피트리의 김성찬 팀장은 다음 마을인 군남면 옥계3리로 넘어가기 전 할머니 집에 들러 물건을 내려줬다.

마차 앞에서는 주민들이 '노랑 카드'라고 부르는 연천사랑상품권이 쉴 새 없이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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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기본소득 사용처로 자리매김
두차례 시범운행 거쳐 31일 본운영
지난 17일 오전 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 경로당 앞마당에서 신현창 할머니(왼쪽) 등 주민들이 마을을 찾은 ‘행복마차’에서 생필품을 고르며 대화하고 있다. 차 안에는 식료품과 생활용품 등이 진열돼 있다.

대체휴일이었던 지난 17일 오전 11시20분께 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 경로당 앞. 아무도 없는 마당으로 1t 저상트럭 한대가 들어왔다. “행복마차 왔어요∼.”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몇분 지나지 않아 동네 어르신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들었다. 차량이 25분여 머무는 동안 6명이 마차를 찾았다.

차량 덮개가 올라가자 동네 슈퍼마켓 같은 진열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라면, 과자, 장류, 식용유, 세제, 고무장갑까지 선반을 채운 상태였다. 냉장·냉동칸에는 두부, 채소, 삼겹살, 고등어 등이 들어 있었다.

“드링크 없어? 드링크?” “박카스요, 어머니?” “아니 아니, 저 뭐야 통으로 된 거…. 어 그래, 두유 말이야 두유.” 보행기를 밀며 장 보러 나온 신현창(78) 할머니는 마차 앞에 서자 얼굴이 환해졌다. ‘쇼핑 모드’에 들어간 할머니는 두부와 때비누를 고르더니 계란 한판, 두유 24개들이 묶음과 고추장까지 잇따라 집었다. 지난 7월에 이 행복마차 운행이 시작된 뒤 신 할머니에겐 매주 마차 오는 날은 즐겁게 장 보는 날이 됐다.

지난 17일 오전 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 경로당 앞마당에서 신현창 할머니가 ‘행복마차’ 진열대를 살펴보고 있다. 옆에서 김성찬 해피트리 팀장이 물건에 관해 안내하는 중이다.

“이거 안 오면 버스 타고 가지. 버스도 하루에 세번뿐이 없어. 가장 가까운 농협 하나로마트까지는 한 20분은 타야 돼.” 삼곶리에는 걸어서 갈 만한 상점이 없다. 차가 없는 고령자에겐 산 물건을 집까지 옮기는 일도 부담이다. 신 할머니가 계란 한판과 두유 한 상자를 들고 가기 어렵다고 하자 행복마차 운영을 맡은 연천 사회적기업 해피트리의 김성찬 팀장은 다음 마을인 군남면 옥계3리로 넘어가기 전 할머니 집에 들러 물건을 내려줬다.

지난 12일 오후 경기 연천군 청산면 초성2리 경로당 뒷마당에서 김양숙(왼쪽) 할머니가 옆 동네 할머니가 냉동 삼겹살을 살펴보자 덩달아 물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 할머니는 애초 콩나물만 살 생각이었지만 고기까지 구매했다.

가게가 가까이 있어도 거동이 불편하고 자녀와 따로 사는 고령 주민에게는 산 물건을 집으로 가져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행복마차는 이런 틈까지 메우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2시께 청산면 태창아파트에서 만난 이원자(88) 할머니도 “이 노인네들 혼자 사시는 분들은 시장을 못 가잖아. 차도 없고. 아들딸이랑 같이 사는 사람도 드물어. 노인정에 오는 사람도 대부분 혼자 살아. 이렇게 마차가 오면 편한 거지”라고 했다.

행복마차가 머무는 25분은 사랑방 역할도 한다. 같은 날 오후 2시40분께 청산면 초성2리 경로당 뒷마당에 마차가 들어서자 할머니 10여명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김양숙(76) 할머니는 콩나물만 사려다 이웃이 고른 냉동 삼겹살에 마음을 뺏겨 ‘충동구매’했다고 말했다.

마차 앞에서는 주민들이 ‘노랑 카드’라고 부르는 연천사랑상품권이 쉴 새 없이 오간다. ‘노랑 카드’에는 정부 시범 사업으로 연천군민들에게 올해 2월부터 월 15만원씩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농어촌기본소득 수당이 담긴다. 행복마차는 농어촌기본소득을 집 가까이에서 쓸 수 있는 사용처도 되는 셈이다.

지난 12일 오후 경기 연천군 청산면 태창아파트에서 80∼90대 어르신들이 보행기와 지팡이에 의지해 ‘행복마차’로 장을 보러 나오고 있다. 행복마차는 정해진 시간에 마을을 찾아 생필품을 판매한다.

경기도는 농촌의 ‘장보기 공백’과 식품 사막화 문제를 줄이기 위해 올해 행복마차 사업을 도입했다. 연천군의 경우 지난 7월6~24일 군남·청산·미산·왕징·중·장남 등 6개 면의 34개 마을과 사회복지시설 2곳을 주 5일 돌며 1차로 마차를 굴려봤다. 이후 한주 동안 운행을 멈추고 주민 반응을 살핀 뒤, 찾아가는 마을과 머무는 시간, 싣고 다닐 물건을 다시 짰다.

그렇게 시작한 2차 시범운행은 8월3~21일 월·수·목·금 나흘 동안 31곳을 돌고 있다. 한곳에 대체로 25분간 머문다. 연천군은 두차례 시범운행에서 확인한 이용 수요와 주민 의견을 반영해 오는 31일부터 정식 운영에 들어간다. 정차 지점까지 나오기 어려운 고령 주민을 위한 집 앞 판매나 배달도 넓혀가겠다는 계획이다.

글·사진 송상호 기자 ss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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