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8·15 경축식 영상에 나온 김용관 선생… 후손들은 왜 분노했나

양지호 기자 2026. 8. 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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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이끈 독립운동가로 소개
유가족 “유공자 인정도 안하면서
정치적 이용… 우릴 조롱하는 것”
지난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상영된 영상.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구현한 영상으로, 광화문 앞에서 김용관(원 안)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뉴스1

8·15 광복절 경축식 주제 영상에 등장했던 독립운동가 6명 중 김용관(1897~1967) 선생이 정부 서훈을 받지 못해 ‘독립유공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행사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도 참석했다. 김용관 선생의 유가족은 19일 본지에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을 확대하겠다는 정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은 안 해주면서, 광복절 영상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지난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경축식 영상에는 김구·안창호·이회영·정세권·조소앙·김용관 6명이 등장했다. 김용관 선생은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다’는 주제 아래 산업화를 이끈 운동가로 소개됐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행정안전부가 주제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보훈부와 상의하지 않았고, 그래서 김용관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않았던 것을 몰랐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실제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보훈부는 그동안 김용관 선생에 대한 독립유공자 선정을 ‘독립운동 활동 불분명’으로 3차례 반려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호명한 5명의 ‘독립운동가’에 독립유공자가 아닌 사람으로 유일하게 포함됐던 것이다. 당시에도 김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지만, 끝내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김용관 선생의 손자 사위인 최성현(56)씨는 본지에 “1938년 4월 ‘제5회 과학의 날’에 서울 종로 YMCA 강당에서 강연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는 보도도 있지만 보훈부는 구체적인 수감기록이 없다며 유공자로 인정을 해주지 않고 있다”며 “정부 공식 행사에 김 선생을 독립운동가로 내세우는 것은 후손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가족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 것을 수년 전 포기하고 관련 증빙 자료도 모두 폐기했다고 한다.

김용관 선생은 일본 유학을 다녀와 과학기술 대중화에 앞장선 인물이다. 민족의 힘을 키우는 데는 과학의 부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1924년 ‘발명학회’를 조직했고 1933년에는 한국 최초의 대중 과학잡지 ‘과학조선’을 창간했다. 1934년에는 ‘과학데이(과학의 날)’를 제정해 과학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몽운동에 힘썼다. 보훈부는 이런 행적은 독립운동과 직접적 연관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20년 김 선생을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했지만, 과학기술유공자는 국가유공자와 달리 후손들에 대한 지원이나 별도 예우는 없다고 한다.

근현대 한국 과학사 전문가인 김근배 전북대 명예교수(현 KAIST 초빙교수)는 “독립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계됐다고 보기 어려워도 조선민족을 위해 일제강점기 과학 운동을 해온 과학인들을 정부 차원에서 독립유공자에 준하는 보훈 대상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당시 김용관 선생과 동료들이 내세웠던 ‘과학 조선의 건설’이 ‘과학입국’(科學立國) 정책으로 연결돼 지금의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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