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빈 아빠도 먼저 내놓은 딸 등록금…30년 탁구 기자가 떠나자 일어난 일

윤태석 2026. 8. 20.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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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을 기리는 기억의 조각, 그 곁을 치열하게 마주한 뒤 비로소 전하는 느린 부고.

명애는 입사 1년이 안 돼 월간탁구를 그만뒀지만 그사이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2001년 결혼해 6년 뒤 딸 은호를 낳았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아낌없이 탁구인들에게 보내줬다.

30년 동안 탁구계 구석구석을 렌즈에 담은 성호였지만, 남의 얼굴은 그렇게 많이 남겨 놓고 정작 자기 얼굴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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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부고]
월간탁구 공동대표 겸 사진기자 고(故) 안성호(1971~2025)
편집자주
고인을 기리는 기억의 조각, 그 곁을 치열하게 마주한 뒤 비로소 전하는 느린 부고. 가신이의 삶엔 어떤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별세, 그 너머에 살아 숨쉬는 발자취를 한국일보가 기록합니다.
안성호 기자는 1995년 월간탁구에 입사해 30년간 한국 탁구의 모든 순간을 렌즈에 담았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다애(14) 아빠 정일환(54)은 휴대폰 화면에 뜬 부고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믿기지 않았다. 두어 달 전에도 경기장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눈 사람이었다. 고인은 어린 선수들을 참 예뻐했다. "너 잘 치더라" "앞으로 잘하겠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힘을 북돋아줬다. 다애를 유독 아꼈다. "다애야, 나한테도 아빠라고 한 번만 불러주면 안 되니?" 딸을 향해 웃던 얼굴이 눈에 밟혔다.

비슷한 시각, 홍성훈(54)도 부고에 정신이 얼얼했다. 고인의 두 달 전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했다.

"홍 대표, 올해 영천여중 가는 정다애에게 탁구화 후원해 줄 수 있을까. 스윙이 아주 좋고 힘도 세. 인성도 훌륭하고. 눈여겨 봐봐."

유명 스포츠 브랜드 탁구용품 총판 대표인 성훈은 고인의 안목을 믿었다. 그가 점찍은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이 열매 맺는 걸 수없이 봐왔다. 국가대표 신유빈(22)이 그렇다. 성훈은 다애에게 탁구화를 후원하기로 했다.


마지막 달리기

안성호 기자는 사고 전날 아내 김명애씨와 남한산성 산책을 갔다. 명애씨는 2월이었지만 춥지 않았고 유독 평화롭고 행복했다고 그날을 기억한다. 유족 제공

2025년 2월 마지막 월요일 밤, 김명애(51)는 남편과 집 근처 공원을 약 40분 달렸다.

2년 전 고지혈증과 당뇨 진단을 받은 뒤 남편은 좋아하던 고기와 술, 담배를 딱 끊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100㎏에 가깝던 몸무게는 80㎏ 아래로 내려갔다. 홀쭉해진 모습에 사람들이 아프냐고 물으면 그는 웃으며 답했다. "건강해지고 있는 거야."

집에 온 남편은 그날따라 "좀 힘들었다"며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잠시 뒤, 쿵 소리가 났다.

"은호 아빠, 넘어졌어?"

놀란 명애가 문을 열었을 때 남편은 욕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거실에 있던 딸 은호(19)가 급히 달려와 119를 불렀다.

'병원에 가면 깨어나겠지.' 명애의 바람은 무참히 깨졌다. 남편은 끝내 의식을 찾지 못했고, 이틀 뒤 세상을 떴다. 월간탁구 공동대표 겸 사진기자 안성호씨 별세. 사인은 심근경색. 향년 54세.


촛불 하나, 눈사람 하나

정다애양이 아빠 정일환씨와 함께 안 기자를 추모하기 위해 팔공산 갓바위에 오를 때 가져간 초(왼쪽부터 시계방향), 갓바위 부처 앞에서 초를 태우는 모습, 다애양이 산을 내려오며 만든 갓을 쓴 눈사람. 정일환씨 제공

성호 발인 며칠 뒤인 3월 8일 토요일 저녁, 일환과 다애 부녀는 경북 영천 집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의 팔공산에 갔다. 선본사를 출발해 팔공산 갓바위 부처(관봉석조여래좌상)에 오르는 길은 부녀에게 익숙한 코스였다. 가로등을 따라 가파른 계단을 오른 지 45분 만에 도착한 부처 앞에서 다애는 촛불을 태우며 울음을 삼켰다.

"안 기자님, 좋은 곳으로 가세요."

내려오는 길, 다애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을 손으로 그러모아 작은 눈사람을 빚고, 그 위에 평평한 돌 하나를 얹어 '갓 쓴 눈사람'을 만들었다. 이 눈사람을 바위에 올려놓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빠라고 한 번 불러드릴걸. 금메달 따고 꼭 다시 찾아뵐게요."

성훈은 이 이야기를 나중에 일환에게 전해 듣고 펑펑 울었다.

2024년 상하이 호프스(12세 이하) 대회에서 안성호(왼쪽) 기자와 정다애양이 찍은 사진. 이 대회가 안 기자의 마지막 해외 출장이 됐다. 월간탁구 제공

큰 덩치에 선한 얼굴

성호와 명애는 월간탁구에서 만났다. 성호는 1995년 사진기자, 명애는 3년 뒤 취재기자로 들어왔다. 성호보다 1년 먼저 취재기자로 들어온 한인수(57)가 대학 문학동아리 6년 후배 명애에게 월간탁구 입사를 추천했다.

185㎝가 넘는 키에 카메라를 짊어진 남자.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선한 얼굴. 명애는 성호를 처음 본 순간을 오래 기억했다.

성호는 명애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다. 인화소처럼, 취재기자가 따라가지 않아도 될 자리까지 가자고 했다. 명애는 입사 1년이 안 돼 월간탁구를 그만뒀지만 그사이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2001년 결혼해 6년 뒤 딸 은호를 낳았다.

안성호 기자와 김명애씨가 2000년 강촌으로 여행을 갔을 때. 두 사람은 이듬해인 2001년 결혼했다. 유족 제공

2007년 초 잡지사가 어려워져 발행인이 폐업을 통보했다. 인수는 퇴직금 대신 회사를 물려받겠다고 했고, 성호에게 함께 공동대표를 맡을지 물었다. 성호는 "1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날 밤 집에서 명애와 마주 앉았을 땐 이미 마음을 정한 뒤였다.

"월간탁구가 사라지게 둘 순 없잖아."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발을 빼면 인수 혼자 잡지를 끌고 갈 수 없다는 걸. 두 사람은 공동대표 겸 사진·취재기자로 2007년 5월호부터 20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잡지를 발행했다.


천국에서도 사진 많이 찍어요

빈소는 사흘 내내 북적였다. 수많은 탁구 관계자가 빈소를 찾았다. 이태성 대한탁구협회장은 국가대표 선수 전원과 함께 왔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도 고인을 기렸다. 김택수 국가대표 선수촌장은 발인까지 지켰다. 조용히 혼자 온 중년 남성도 있다. 명애가 조심스레 "누구신지 여쭙고 싶다"고 하니 초등학생 선수 아버지라 했다. "대회장에서 안 기자님 늘 고마웠는데 말을 한 번도 못 걸어봤다"며 "꼭 인사드리고 싶어서 왔다"고 말하곤 한참을 있다 갔다.

"안 기자님, 천국에서도 사진 많이 찍어요. 거기도 안 기자님 아니면 사진 한 번 찍히기 힘든 사람 많이 있을 거예요. 여기서 그랬던 것처럼 넓은 관심으로 보살펴 주세요."

영정 앞에 선 탁구인들이 오열했다.

고인의 시선은 늘 유명 선수보다 무명 선수에 오래 머물렀다. 인수가 "이번 달 잡지에 필요한 입상자만 찍자"고 하는 걸 그는 견디지 못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대회가 열려 인수가 "하나는 자료사진을 쓰자"고 하면 성호는 전라도와 경상도 끝을 오가며 기어이 현장 사진을 보내왔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아낌없이 탁구인들에게 보내줬다.

1년의 절반 이상은 출장을 다녀야 할 정도로 고된 일정이었지만 월급은 턱없이 적었다. 성호는 겨울이면 배구, 여름이면 골프 사진을 찍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하루를 1년처럼 살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늘 즐겁고자 애쓰던 사람이었다.


그때 그 사진이 영정에

안성호 기자가 쓰러지기 3주 전 스포츠단 프로필 촬영을 할 때 남긴 사진이다. 정영훈씨가 본 촬영 전 안 기자를 모델 삼아 테스트용으로 찍었는데 영정사진으로 쓰였다. 정영훈씨 제공

빈소에서 영정을 본 정영훈(47)은 할 말을 잃었다. 사진 속 성호는 쏘는 듯한 강렬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3주 전 영훈이 찍은 사진이었다.

30년 동안 탁구계 구석구석을 렌즈에 담은 성호였지만, 남의 얼굴은 그렇게 많이 남겨 놓고 정작 자기 얼굴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영정에 쓸 사진이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성호 대학 후배이자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영훈이 최근 찍은 사진 몇 장을 갖고 있었다.

명애는 처음엔 남편이 카메라 렌즈를 손에 든 채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쓰려 했다. 신유빈에게 선물 받았다며 흐뭇해하던 렌즈였다. 남편은 신유빈을 어린 시절부터 각별히 아꼈다. 그런데 딸 은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빠 표정이 너무 밝아."

신유빈에게 선물 받은 렌즈를 든 채 활짝 웃고 있는 안성호 기자. 고인은 유빈이 어렸을 때부터 무척 아꼈고, 유빈의 사진을 따로 관리할 정도로 각별하게 생각했다. 이 사진은 고인의 후배 정영훈씨가 찍었다. 정씨 제공

결국 성호와 영훈이 스포츠단 선수 프로필 촬영을 하던 날 남긴 사진으로 정했다. 본 촬영에 앞서 영훈이 조명을 점검하려고 성호를 모델 삼아 찍어둔 테스트 사진이었다.

영훈은 성호가 갖고 있는 수십만 장의 탁구 사진이 그냥 묻히는 게 못내 아쉬웠다. 몇 번이나 개인 전시회를 열자고 졸랐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쑥스럽게 무슨." 그러다 6·25전쟁 참전용사를 찍는 사진작가 라미(현효제)의 사연을 접한 뒤, 성호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한국 탁구에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탁구인들의 어린 시절부터 초중고교, 성인이 될 때까지 생애주기 전체를 한눈에 보여주는 사진전을 구상했다.

영훈은 "대한민국에서 선배님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기꺼이 동참하겠다고 했다. 유승민이나 신유빈의 신동 시절 필름 사진은 작게 뽑고, 나이 들어가는 순서대로 점점 키워 최근 사진은 최대 크기로 걸자는 구체적인 그림도 함께 그렸다.

사진전 준비는 시작도 못 한 채, 성호는 떠나고 말았다.


예선전이라 생각하고 쳐 봐

미래에셋증권 탁구단에서 선수로 활약하던 서정화의 모습. 지금은 같은 팀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안성호 기자는 서 코치가 25년 전 탁구를 시작한 뒤부터 선수 인생을 사진으로 담아줬고 경기장에서 덕담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월간탁구 제공

초등학교 5학년 때 탁구를 시작한 서정화(35)는 중고교 내내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 낀 처지였다. 정화 1년 위는 이상수, 동기는 정영식·서현덕·김민석 등으로 나중에 모두 국가대표가 됐다. 당시 정화의 1차 목표는 전국대회 4강이었다. 그래야 실업팀에 갈 수 있었다. 8강에서 미끄러지는 나날이 반복됐다.

8강에서 또 진 날. 성호가 다가왔다.

"정화야. 실업팀 가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그래서 힘이 너무 들어가잖아. 예선전이라 생각하고 쳐 봐."

그 잔소리가 참 따뜻했다. 고인은 늘 그랬다. 사진 찍느라 바쁜 와중에도 좌절하거나 고개 숙이는 선수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정화는 2008년 12월 마지막 대회에서 지긋지긋한 8강 징크스를 깼다. 현장엔 당연히 성호도 있었다. 씩 웃으며 정화에게 엄지를 척 들어줬다.

성호 빈소에 다녀온 날, 정화는 퉁퉁 부은 눈으로 한달음에 추모 글을 써서 인수에게 보냈다.

'시합장에서 큰 소나무처럼 밝게 인사와 덕담, 때론 감독님보다 더한 조언과 잔소리로 반겨주셨습니다. (중략) 모든 탁구인, 특히 선수들한테 따뜻하셨습니다. 기억하고 추억하겠습니다. 안 기자님의 모든 순간을.'

신유빈(왼쪽)-전지희 조가 2023년 더반 세계탁구선수권 여자복식에서 중국 왕만위-쑨잉샤 조를 꺾고 36년 만의 결승 진출을 이뤄낸 뒤 포효하는 모습을 현장에 있던 안성호 기자가 포착했다. 고인이 스스로 만족해 마지않았던 이 사진은 월간탁구 2023년 6월호 표지에 게재됐다. 월간탁구 제공

정화의 글은 월간탁구 2025년 4월호에 실렸다. 4월호는 1992년 1월 1호를 낸 지 33년 4개월 만에 맞는 400호다. 인수는 400호를 '안성호 기억'이란 추모 특집으로 꾸몄다. 고인과 소통하던 선수, 지도자, 심판, 스태프, 관중, 중계진, 동료 기자들에게 받은 추모 글을 담았다. 신유빈과 전지희가 2023년 더반 세계선수권에서 36년 만의 결승 진출을 이뤄낸 뒤 포효하는 모습을 담은 고인의 사진도 실렸다. 생전 고인이 가장 만족스러워하던 작품이었다.


늘 찍기만 하던 아빠를 찍어준 사람

2025년 10월 고3이던 은호의 첫 논술고사 날, 명애는 새벽같이 서둘러야 할 서울 길 운전이 막막했다. 명애 가족에게 장거리 운전은 늘 성호 몫이었기에. 신소영(55)이 선뜻 나섰다. 소영은 고인의 빈자리를 다 채워주진 못해도, 이날만큼은 꼭 은호 옆을 지켜주고 싶었다.

명애·성호 부부는 은호가 중1 때 공동체 모임에서 신소영·임하나(56) 부부를 만났다. 학부모들은 평등한 관계로 서로를 존중하자는 취지로 이름이나 직책 대신 별명을 불렀다. 성호는 '찰칵', 명애는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 '잎싹'이었다. 소영은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은포토', 하나는 뭐든 다 들어준다고 해서 '지니'였지만, 이름이 독특해 그냥 '하나'로 더 많이 불렸다. 두 부부는 집에서 술 한 잔, 밥 한 끼를 나누며 친해졌고, 어느새 가족끼리 여행을 다닐 만큼 가까워졌다.

고인 가족과 신소영·임하나 부부 가족이 2019년 9월 그리스로 여행을 갔을 때. 신소영·임하나 부부는 평생 일만 하며 아등바등 살던 고인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일깨워 줬다. 유족 제공

원래 성호는 일에 매여 여행은 꿈도 못 꿨다. 그때마다 소영·하나 부부가 설득했다. "미래를 위해 지금 행복을 담보 잡지 말자. 갈 수 있을 때 가자."

제주도, 필리핀, 그리고 3주나 다녀온 그리스. 그리스에서 돌아온 뒤 찰칵은 "정말 다녀오기 잘했다"며 즐거워했다. 여행 때마다 은호는 사진 찍는 걸 즐기는 소영에게 유독 고마워했다. "아빠는 늘 찍기만 하는 사람이라 사진이 없는데, 아빠를 찍어줘서 좋았다"고.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어

남편 없이 맞이하는 세 번째 계절. 명애는 엄마(76)에게 다녀왔다. 엄마는 처음에 사위를 못마땅해했다. 가난한 딸이 또 가난해질 게 딱하니까. 딱 한 번 뵌 아빠의 장례를 성호가 도맡아 치르다시피 하고, 반년쯤 지나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에서도 엄마는 좀처럼 웃지 않았다. 남편은 개의치 않았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고백을 쉬지 않았다. 엄마가 보는 연속극 얘기를 챙겨 시시때때로 전화를 걸고, 팔도 출장길에서 구한 지역 특산품을 실어 날랐다.

엄마는 시나브로 무장 해제됐다. 아니 안 서방을 만나기 전과 이후 사람으로 나뉠 만큼 달라졌다. 안 서방을 잃은 엄마 마음은 오죽할까. 그런 엄마가 아직 그를 추억하지 못한다. 당신 때문에 당신 딸이 아플까 봐.

'그래 돌이켜보면 처음이었어. 엄마에게도 내게도 당신처럼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은. 내가 살면서 가장 사랑받은 기억은 당신에게 다 있어 은호 아빠. 고맙고 또 너무 미안해.'


찰칵이 뿌려 놓은 사랑

은호양이 어린 시절 찜질방에서의 다정한 한때. 유족 제공

은호가 여섯 살 때니 14년 전이다. 경기 용인의 한 공동육아 학부모 모임. 긴 테이블을 이어 붙인 자리에 열다섯 쌍 안팎의 부부가 죽 둘러앉았다. 은호를 공동육아로 키우기로 한 명애 부부가 모임에 처음 온 날이었다.

왁자한 테이블 한복판에서, 성호가 불쑥 입을 열었다.

"명애야, 여기서 네가 짱 먹어도 되겠다."

거만하다 싶을 만큼 당당한 말투였다. 권순희(53)는 순간 속으로 웃음이 터졌다. '어머, 이거 봐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자기 아내가 제일 낫다는 말이잖아.' 다른 아내들을 다 깔아뭉개는 말이나 다름없는데, 이상하게 아무도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순희는 성호와 명애를 흘깃 봤다. 자기 아내를 저렇게 유쾌하게,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띄워주는 남자가 다 있구나. 이 사람은 사랑을 참 재미있게, 아낌없이 표현할 줄 아는구나. 순희에겐 그날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곳 학부모들도 별명을 불렀는데 성호는 역시 '찰칵', 순희는 '하늘땅'이었다. 찰칵은 종종 말하곤 했다.

"하늘땅, 제 인생에 헌신할 여자는 딱 셋뿐이에요. 엄마와 아내와 딸."

그런데 그 사랑은 결국 모두에게 향한다는 걸 순희는 알아챘다. 찰칵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한테만 잘하는 게 아니라, 그가 행복할 수 있도록 주변 전체에 후광을 비춰 줬다. 찰칵은 딸 은호뿐 아니라 은호 친구들과도 온몸을 바쳐 놀아줬다. 아이들은 나중엔 너 나 할 것 없이 자기 아빠보다 찰칵을 더 따랐다.

찰칵이 떠난 뒤 지인들은 하나같이 명애와 은호의 앞날을 걱정했다. 순희 생각은 달랐다. '찰칵이 여기저기 뿌려 놓은 사랑을 돌려받으며 명애와 은호는 앞으로 훨씬 더 잘 살 거야.'


고인의 빈자리 채워 주는 이들

2025년 마지막 달, 마감을 준비하던 인수는 명애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모처럼 밝았다. 은호가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고 했다. 얼마 전 신수현(54)과 성훈이 나란히 걸어왔던 전화가 떠올랐다.

신유빈 아빠인 수현은 성호와 인연이 오래됐다. 수현은 성호 빈소를 사흘 내내 지키면서도 절 한 번 안 했다. 고인 얼굴을 보면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 같다면서. 성훈은 성호와 20여 년 세월을 나눴다. 성호가 월간탁구 영업까지 거의 도맡다 보니 탁구용품사 직원이던 성훈과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성호는 나이가 같은 수현과 성훈을 친구로 이어줬고 셋은 그렇게 막역한 사이가 됐다.

수현은 인수에게 은호 등록금을 책임지고 싶다며, 합격 소식이 들리면 꼭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비슷한 시기 성훈도 전화를 걸어 은호 등록금 얘기를 꺼냈다. 인수는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걱정도 한날한시에 하느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줬지만, 속으로는 흐뭇했다. 두 사람 말고도 명애와 은호를 걱정하는 지인, 탁구인들의 연락은 이어졌다.

대한탁구협회는 2026년 2월 9일 ‘2026 어워즈’에서 고인의 오랜 헌신과 공헌을 기리며 특별상과 상금 300만 원을 수여했다. 고인의 아내와 딸이 대리 수상한 뒤 현정화(왼쪽) 탁구협회 수석부회장과 함께 무대에 잠시 섰다. 대한탁구협회 제공

대한탁구협회는 2026년 2월 9일 '탁구협회 어워즈'에서 고인에게 특별상과 상금 300만 원을 수여했다. 대리 수상을 위해 엄마와 함께 참석한 은호는 이런 소감을 남겼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 아빠를 떠올립니다. 아빠가 사랑하며 살아간 만큼 나도 그렇게 살아가야지 다짐하다가도, 자신이 없어지고는 합니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당신 없는 두 번째 봄

또 봄이다. 당신이 없는 두 번째 봄. "저녁 약속이 생겼다"는 은호 메시지를 받고 마음이 한가해진 명애는 계획 없이 남편이 있는 봉안담에 들렀다. 남편 휴대폰에 대형 선배 메시지가 와 있다. 나보다 한두 시간 전 다녀갔네. '또 봄'이 서러운 건 나뿐이 아니구나.

니 생일. 눈도 왔다(2025년 12월 15일)

고맙다. 자랑스럽다. 메리 크리스마스(12월 25일)

해피 뉴이어. 겁나 바빴어. 오늘은 별로 안 춥다(2026년 1월 17일)

1년 빠르다. 잘 지켜봐(2월 27일)

목련이 폈다. 널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3월 27일)

고인과 고대형, 여의섭씨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40년 지기’다. 고대형씨과 고인이 대학교 졸업 때 함께 찍은 사진(위). 여의섭씨와 고인이 고1 때 소풍 가서 찍은 사진. 유족 제공

성호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40년 지기' 고대형(55)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봉안담을 찾는다. 답이 올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녀올 때마다 성호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사진 찍는 게 '직업'이 된 뒤에도 성호 카메라는 늘 친구들을 챙겼다. 대형의 두 남매가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교에 진학할 때마다 성호는 "애들 크는 모습 담아주겠다"며 근사한 가족사진을 찍어줬다. 대형은 성호가 어떤 친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 말부터 꺼낸다. "지금까지 아내보다 성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습니다."

고교 동창이자 역시 40년 지기인 여의섭(55)의 어머니 영정사진도 성호가 찍었다. 10년 전 의섭 어머니가 위독해 가족이 마음의 준비를 한다는 소식을 듣자 성호는 한달음에 달려와 정성스레 어머니 얼굴을 렌즈에 담았다.

의섭은 사고 한 달 전 성호와의 통화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운전도 이제 힘들다"던 성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의섭아. 혹시 내가 잘못되면, 우리 은호 좀 잘 부탁해."

의섭은 벌컥 화를 냈다. "왜 그딴 소리를 하냐"고. 찜찜했지만, 일상적인 넋두리로 흘려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다 챙기고 정작 자기한테는 요만큼도 투자 안 하는 놈인 걸 뻔히 알면서. 그때 병원이라도 같이 가자는 말 한마디를, 왜 못 했을까.


아빠는 참 잘 살았나 봐

딸 은호양이 그린 엄마와 아빠의 모습. 고인은 평소 딸 사랑이 각별했다. 딸의 생일이면 늘 자정까지 기다렸다가 가장 먼저 축하해줬고, 생일 아침이면 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파마늘볶음밥을 해주곤 했다. 유족 제공

명애는 지금도 남편이 사랑했던 일과 사람들 한가운데로 자신과 딸이 종종 소환되는 걸 느낀다. 여러 사람이 형편이 괜찮은지 모르겠다며 은호 대학 등록금에 보태 달라며 큰돈을 보내왔다.

신유빈 아버님(신수현), 조현민 대표님(대한탁구협회 회장사였던 고 조양호 회장 차녀. 현 한진 사장), 이에리사 감독님(전 국가대표 선수촌장), 홍성훈 대표님, 탁구대 등 시설물을 설치하며 대회 때마다 남편을 봤다는 신현요 대표님... 이름이 낯익은 이들도 있으나 남편 생전 본 적 없고 들은 바 없던 생면부지도 많았다.

뜨겁게 사랑하며 무쇠처럼 일했던 남편 일터에서, 남편이 만난 이들이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애도한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은호가 말했다. "아빠는 대체 어떤 삶을 산 거야. 아빠는 진짜 잘 살았나 봐."

고인이 아끼고 사랑했던 이들의 마음 한편에 남은 눈부신 기억을 조각조각 길었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고인이 아끼고 사랑했던 이들의 마음 한편에 남은 눈부신 기억을 조각조각 길었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비로소 알게 된 고인의 생애. 그래픽=신동준 기자

윤태석 신문에디터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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