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항모 빠진 태평양, 걸프 미군 축소… 아시아·중동 안보 공백

미국 국방부가 이란의 드론·미사일 보복에 상당한 피해를 본 걸프 지역의 미군 기지를 상당수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19일 전해졌다. 또 동북아시아와 서태평양의 안정을 담당하는 핵심 전력인 미 해군 조지 워싱턴 항모강습단(CSG)은 중동 지역의 에이브러햄 링컨함과 교대하기 위해 말라카 해협을 떠나 중동으로 이동 중이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의 전력 증강과 한반도 등 지정학적 위험이 집중된 이 지역에 항모전단을 상시 전개하며 강한 군사적 억제력을 확보해 왔지만, 중동 정세의 영향으로 ‘미 항모 없는 태평양’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미국의 대(對)이란 군사 작전이 장기화함에 따라 중동과 아시아에서 ‘동시 안보 공백’이 커지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걸프 지역 4만 병력 재배치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국방부가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재평가하고 있다”면서 페르시아만 지역에 배치된 병력 일부를 철수 또는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전쟁을 수행 중인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요르단에서 오만에 이르는 20여 거점에 약 4만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바레인엔 미 해군 제5함대 사령부가 있고, 쿠웨이트·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 등의 페르시아만 연안 기지에도 미군 자산이 배치돼 있다. 미군은 올 초부터 대(對)이란 군사 작전을 준비하며 전함, 전투기, 방공 자산 등을 이 지역에 대규모로 전개했다. 그러나 전쟁 과정에서 상당수 기지가 이란의 보복 공격에 노출됐고, 미국은 기지 방어 과정에서 1000발 이상의 사드·패트리엇 요격 미사일을 사용하며 방공 자산을 급속히 소모했다. 이번 전쟁으로 미군 시설 200곳 이상이 이란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으면서 미군 18명이 숨지고 640명 이상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클 랫니 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대사는 “이란전으로 이 지역에서 미군이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났다”고 했다.
병력 재배치는 이미 일부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개전을 전후해 이란의 공격 사거리 내에 있는 기지 병력 상당수를 다른 곳으로 대피시켰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이란은 우리가 기존 주둔지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곳에 있지 않다”고 했다. WP는 “걸프 지역 동맹국들은 수십 년 동안 자국 방어를 미국에 의존해왔다”며 “미군이 철수한다면 국내 역량을 강화하거나 다른 강대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최근 사우디·파키스탄·튀르키예는 상호 방위를 골자로 한 ‘메카 동맹’을 결성하기도 했다.

◇떠난 항공모함, 비어버린 태평양
미국의 안보 공백은 인도·태평양에서도 현실화하고 있다. 미군은 승조원들의 투신 시도까지 벌어진 에이브러햄 링컨함과 교대하기 위해 지난 13일 태평양에 배치돼 있던 미 해군 조지 워싱턴 항모강습단(CSG)을 중동으로 보냈다. 이 항모는 그동안 중국의 광범위한 해양 영유권 주장을 억제하고 한국·일본 등 동맹국에 대한 안보 보장을 보여주는 핵심 역할을 해왔다. 2017년 9월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졌을 때는 한반도 주변 해역에 미 항모 3척이 동시에 집결해 합동 연합 훈련을 실시한 적도 있었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명예회장은 “중국·북한은 ‘아시아로부터의 후퇴’를 악용할 것이고, 우리의 친구들은 절망하거나 핵무장을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월 이란전 발발 이후 미국은 항공모함을 비롯한 방공 자산, 병력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대거 차출했다. 미국은 지난 2024년 8월에도 중동 지역 긴장 고조로 태평양에서 공격 태세를 갖춘 항모를 한동안 운용하지 못했는데, 그럴 때마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 태세를 시험하며 영향력 확대를 모색했다. 지난 4월 항모 3척이 모두 중동에 전개돼 공백이 발생했을 때도 필리핀과 해상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남중국해 수역 입구에 부유식 장벽을 설치했다. 악시오스는 이런 행보가 ‘미국의 안보 공약이 믿을 만하지 않다’는 중국의 주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 때인 2010년대 초반부터 이른바 ‘피벗 투 아시아’ 정책을 통해 전략적 중심을 아시아로 이동하고 중국 견제에 외교·안보 자원을 투사하는 대외 정책을 펼쳐왔다.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도 이런 기조를 대체로 계승했지만 대외 문제 개입에 특히 더 부정적인 트럼프 2기 들어 변곡점을 맞게 됐다. 리처드 폰테인 신미국안보센터(CNAS) 최고경영자(CEO)는 X(옛 트위터)에서 “미국이 중국을 가장 큰 장기적 전략적 도전으로 보는지도 불분명하다”며 대(對)아시아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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