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은 부마민주항쟁을 ‘시민혁명’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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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78) 한신대학교 석좌교수가 한국 현대사를 다룬 책 <도올이 본 부마시민혁명>을 들고 부마민주항쟁의 땅 마산을 찾았다.
그는 부마민주항쟁을 다룬 자신의 저서가 '현대사 시리즈'의 정점에 해당한다며, 시민혁명이라는 새로운 규정이 널리 알려지기를 원했다.
그는 "마산에선 노동자가 각성해서 들고 일어나지 않았는가. 학생도 시민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시민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혁명으로 박정희의 명(命)을 갈아버린 사건이었다. 이후 우리 역사가 밝은 방향으로 급진전할 수 있었기에 부마항쟁은 부마시민혁명으로 명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마시민혁명과 그 의의를 젊은 대중에게 연결하려면 실천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며, 자신부터 부마민주항쟁이 시작된 부산대학교에서 정기적인 강연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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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노동자·시민이 함께 유신독재 끝낸 혁명으로 규정
“마산은 혁명의 본향…김재규는 필연적 귀착이자 완성”

도올 김용옥(78) 한신대학교 석좌교수가 한국 현대사를 다룬 책 <도올이 본 부마시민혁명>을 들고 부마민주항쟁의 땅 마산을 찾았다.
고전학자로 오랫동안 동학사상에 천착했던 그는 이런 사상적 탐색을 배경으로 근래 들어 제주 4.3사건, 여순민중항쟁(여수·순천 10.19사건), 한국독립운동 등을 다룬 책을 연이어 발간했다. 그는 부마민주항쟁을 다룬 자신의 저서가 '현대사 시리즈'의 정점에 해당한다며, 시민혁명이라는 새로운 규정이 널리 알려지기를 원했다.
13일 오전 10시, 개량한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도올 선생이 부마민주항쟁재단 마산사무소로 들어서자,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고문이 반기며 악수를 청했다. 이들은 1시간 30여 분 동안 동학과 천도교로 시작해, 부마민주항쟁과 김재규를 논하고, 경상도와 마산 정신을 짚었다.
부마시민혁명, 그 거대한 흐름 응축된 기운
부마민주항쟁은 시민들이 박정희의 장기 독재와 유신헌법 타도를 외친 역사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시작됐고, 그 열기는 곧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1979년 10월 15일 부산대학교 도서관 앞에서 학생들이 '민주선언문', '민주투쟁선언문'을 교내에 전파하면서 항쟁이 시작됐고, 18일 박정희가 부산 지역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비상한 국면을 맞게 된다.
그날 오후 3시 30분, 경남대학교에서도 학생 시위가 시작됐다. 19일 오후 8시쯤 시위대에는 수출자유지역의 노동자, 실업자, 고교생들이 합류해 명실상부한 '시민'이 됐다. 다음 날 오전 3시까지 산발적으로 시위가 이뤄졌으며 시위 혐의자 505명이 연행됐다. 그리고 정오쯤 마산 지역에 위수령이 발동됐다.
부산, 마산에서 시작된 시위는 대구, 서울 등 전국으로 퍼졌으며, 그 열기 또한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철폐할 생각도, 스스로 물러날 생각도 없어 보였다.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 40분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내 목숨을 독재와 맞바꿔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며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에게 총구를 겨누면서 유신 독재가 막을 내렸다.
김 교수가 최근 발간한 도서 <도올이 본 부산시민혁명>이 독특한 점은 부마민주항쟁을 연대기로 풀어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한국 사회를 추동해 온 본원적 사상과 자신의 지적 여정을 토대로 항쟁이 필연이었음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부마시민혁명으로 부르다
김 교수가 책에 담고자 한 주제는 명확하다. "부마 민주항쟁은 '혁명'으로 인지돼야 한다." 대담에서 그는 책을 쓴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로 '이제 항쟁의 성격에 걸맞은 이름을 써야 할 때'를 들었다.
항쟁이 시작된 후 박정희 정부는 이를 '부마사태'로 통칭했으나, 이후 '부마민주항쟁'으로 공식화됐다. 항쟁이 벌어진 해로부터 47년, 이제 김 교수는 이 항쟁을 '부마시민혁명'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끌어올리자고 제안한다.
그 이유로 그는 부마시민혁명에 참여했던 이들을 주목한다. 학생들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도시 빈민을 중심으로 대다수 일반 서민(기층 민중), 중간층 시민이 가세하면서 항쟁이 시민혁명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는 것이다.
마산에서는 경남대학교 학생들이 처음으로 나선 이후 노동자, 실업자 등이 대거 합류했으며, 따로 이들을 이끌던 구심체도 없었다. 김 교수는 이를 "비조직 대중의 자생적 저항에 의존한 집약적 항거"라고 정리했다.
"중앙정보부는 부마시민혁명의 주체세력을 대학생으로 몰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부마사태는 전 시민의 의거였다. 부마항쟁으로 검거 연행된 사람은 총 1563명으로 부산이 1058명, 마산이 505명인데 학생은 대략 30% 정도고 나머지는 일반 시민이었다."(259쪽)

부마시민혁명의 완성, 김재규
그는 또 이 책에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하고자 했다. 김재규는 박정희를 사살한 후 내란목적 살인 등 혐의로 사형당했다. 유가족들의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져 지난해 7월 16일부터 그에 대한 형사재판 재심이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김재규 행위가 내란을 일으키려는 목적도 없었고, 새로운 독재자가 되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며, 박정희 저격이야말로 유신 독재를 끝내라는 국민적 요청에 의한 혁명적 행위였다고 규정했다.
그는 10.26 사태를 김재규의 소영웅주의로 몰아가는 시각에 대해 "박정희와 그 주변에 있던 인물들이 타락해 있었고, 통상적인 방법으로 이를 바로잡을 수 없었다"며 "김재규의 행동을 소영웅주의라고 부른다면, 우리 역사에서 소영웅주의는 반드시 있어야 할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김재규의 거사 덕분에 국민의 희생이 줄어들고 역사가 20년은 앞당겨졌다고 평가했다.
"부마시민혁명을 앞으로 현창시키기 위해서는 김재규 행위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평가해야 한다. 김재규는 부마시민혁명의 필연적 귀착이자, 완성이었다."(277쪽)
혁명의 본모습 지닌 경상도 그리고 '마산'
"경상도는 혁명의 본향(本鄕)이다, 경상도가 진정한 래디컬리즘(Radicalism)"이라고 했다. 래디컬리즘은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사상이나 태도를 뜻한다.
김 교수가 '마산이라는 도회지 특성'이라는 제목을 붙여 설명한 마산 이야기는 면면히 이어진 시민혁명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는 1960년 부정선거에 항거한 3.15의거를 일으킨 '마산의 정의로운 포효'가 부마시민혁명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라고 봤다.
"마산포를 중심으로 발전한 항구도시로 조창(세곡창고)과 관청이 들어서 있는 번창한 도시였다. 항구도시였기에 외부 정보 유입이 빠르고, 밑바닥으로부터 상인 계층이 발달해 응집력이 강했으며, 중앙 권력의 통제에 상대적으로 덜 종속됐다. 그리고 다양한 사회세력이 공존하는 특징이 있었다. 이러한 지정학적 성격은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형성되기 쉬운 마산의 토양을 만들었다. 당시 마산은 자유당보다 민주당 지지층이 상대적으로 강했다."(183쪽)
그는 인터뷰에서도 이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마산 정신은 김주열로부터 나온다. 부마시민혁명 당시 부산에 계엄령이 선포됐는데도 경남대학교 학생과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행동이었다"며 "마산의 항거가 부산보다 더 격렬했다"라고 말했다.

고전학자가 쓴 근현대사
<도올이 본 부마시민혁명>은 읽기에 어렵지 않다. 구체적인 사실을 나열한 게 아니라 시민혁명을 가능하게 한 '사상과 인간의 족적'을 다루는 데 집중하고 있다.
거기다 동학사상에 입문하게 된 이야기, 격동의 현대사를 좌우한 사람들과 만남 등 개인적인 여정까지 곁들여져 흥미를 돋운다.
김 교수는 역사를 통시적, 공시적으로 보지 않고 근인(近因) 몇 가지에 초점을 맞춰 기술하는 것은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동학을 비롯해 민중신학, 부산 시민교양운동 등을 두루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부마시민혁명을 다룬 책으로 현대사 저작 발간은 끝낼 예정"이라며 "앞으로 남은 시간은 한국의 사상사를 온전하게 그려내는 작업에 매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마시민혁명과 그 의의를 젊은 대중에게 연결하려면 실천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며, 자신부터 부마민주항쟁이 시작된 부산대학교에서 정기적인 강연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담 구주모· 정리 주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