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일본 거든 미국에 ‘발끈’…“역사수정주의에 동조 말라”

천호성 기자 2026. 8. 1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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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극동 쿠릴 열도 방문으로 촉발된 러시아-일본 간 외교 갈등이 미-러 간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거들자, 러시아는 미국을 향해 '일본의 팽창주의에 동조 말라'고 맞받았다.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18일(현지시각) 기자들과 만나 쿠릴열도 남부에 대한 일본의 주권을 인정한 조지 글래스 주일 미국대사의 발언에 반박했다.

같은 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푸틴 대통령을 향해 "이미 손상된 양국 관계의 개선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난하자, 러시아는 일본 대사를 소환해 재차 영유권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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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쿠릴 방문 파장
러시아 외무부의 소환으로 18일 외무부 청사를 방문한 무토 아키라 주러시아 일본 대사(왼쪽 두번째). AF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극동 쿠릴 열도 방문으로 촉발된 러시아-일본 간 외교 갈등이 미-러 간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거들자, 러시아는 미국을 향해 ‘일본의 팽창주의에 동조 말라’고 맞받았다. 러시아 도발의 배경엔 우크라이나를 돕는 일본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다.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18일(현지시각) 기자들과 만나 쿠릴열도 남부에 대한 일본의 주권을 인정한 조지 글래스 주일 미국대사의 발언에 반박했다. 앞서 글래스 대사는 지난 14일 엑스(X)에 “미국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일본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유지하며, 북방영토에 대한 일본의 주권을 인정한다”고 쓴 바 있다.

이에 러시아 외무부는 “쿠릴 열도 남부는 미국을 포함한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들의 합의와 유엔 헌장에 따라 2차대전 결과로 러시아에 귀속됐다. 이 섬들에 대한 러시아 주권엔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대사의 이런 발언은 일본의 보복주의와 (역사)수정주의를 부추긴다”고도 말했다. 일본의 쿠릴 열도 영유권 주장을 일본의 재무장 기조와 연관지어, 미국이 이에 동조하지 말라고 쏘아붙인 것이다.

쿠릴 열도는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캄차카 반도 사이 약 1200㎞에 걸쳐 뻗어 있는 56개의 화산섬 군도다. 가장 남쪽의 섬은 홋카이도에서 4㎞도 떨어져 있지 않다. 1855년 두 나라가 맺은 시모다 조약은 두 나라 국경이 이투루프(일본 이름 에토로후)섬 북쪽을 지난다고 규정해, 열도 남부 4개 섬을 일본에 귀속시켰다. 이후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 등을 거치며 사할린섬 절반까지 영역을 넓혔다.

섬들의 주인이 바뀐 건 소련군이 일본의 2차대전 항복 직후인 1945년 8월18일 쿠릴 열도 전체를 병합하면서다. 일본인 주민 1만7000명은 추방됐다.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며 사할린섬과 쿠릴 열도에 대한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 식민지 팽창 이전의 국경으로 돌아갔다. 다만 일본은 이후로도 이투르프 등 열도 남부 4개 섬은 포기 대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소련은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조약에 대한 이견 때문에 양국은 지금까지 2차대전 종전 협약도 체결하지 않은 상태다.

특히 지난 13일 푸틴 대통령이 쿠릴 열도 남부의 4개 섬 중 하나인 이투루프를 방문한 뒤 갈등은 점입가경으로 커지고 있다. 같은 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푸틴 대통령을 향해 “이미 손상된 양국 관계의 개선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난하자, 러시아는 일본 대사를 소환해 재차 영유권을 주장했다.

러시아 지도자가 이곳을 방문한 건 2010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 이후 이날이 처음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집권한 뒤 한번도 쿠릴 열도에 가지 않았다. 그간 자국 서쪽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의 갈등에 집중하며 극동 영토에 대해선 주변국과 마찰을 피한 것인데, 이번 방문으로 태도를 바꾼 것이다.

19일 일본 도쿄에서 “북방영토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문구가 적힌 정부 광고판 앞으로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는 우선 일본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대한 보복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나토 회원국이 아닌 나라 중 우크라이나에 가장 많은 군사 원조를 해왔다. 미국 템플대 정치학 교수 제임스 브라운은 파이낸셜타임스에 “푸틴의 방문은 쿠릴 (영토 분쟁에) 중요한 변화”라며 “이는 일본의 우크라이나 지지와 나토와의 협력 확대에 대한 경고”라고 해석했다.

크리스티앙 케슬레르 도쿄 아테네 프랑세 교수(역사학)는 르피가로에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스승인 아베(신조 전 총리)는 푸틴과 여러 번 만나며 좋은 관계를 만들려 했지만, 다카이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명백히 반대한다. 대부분 신중한 태도를 보여온 일본 외교 정책에는 새로운 일”이라며 “크렘린이 보기에 이는 명백하고 공개적인 관계 단절이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도발은 다음달 18∼20일 러시아 총선을 앞둔 정치적 노림수로도 읽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5년째 길어지며 러시아의 승전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이 일자, 러시아가 선진국 일본과 대치하는 모습을 연출해 국력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카네기재단 국제평화연구소의 알렉산더 바우노프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에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 우려로) 지난 한 해 중 대부분을 크렘린궁에 고립돼 지냈으나 최근 몇 달 새 대중 노출을 늘리고 있다”며 “그는 자신이 여전히 활동 중이며 상황을 통제하며, 돌아다니기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고 짚었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그의 핵심 지지층인 일본 내 강경 민족주의 진영이 쿠릴 열도 영유권을 강하게 주장하기 때문이다. 일본 ‘북방영토의 날’인 매년 2월7일이면 도쿄 등의 거리에 극우 단체 활동가들이 영토 탈환 구호를 외칠 정도다. 가디언은 “일본 정부의 대응은 극우 민족주의 단체들보다는 절제된 것이겠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러시아 정부를 상대로 계속 강경한 태도를 취하라는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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