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의 ‘성 접대’와 ‘한국 남성 문화’ [플랫]

플랫팀 기자 2026. 8. 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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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접대는 덜 창피하고 국가가 자국 여성의 성을 활용하는 건 더 창피한 일인가?
국가가 여성의 몸을 동원할 수 있는 문화에선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일상에서의 젠더폭력 구조와 연관되고 남성은 ‘구조적 가해자’가 된다
최근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 등 경찰의 수사를 받고 각종 비위 의혹이 드러난 대한축구협회가 지난 8일 팬과 축구 관계자에게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진은 9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 모습. 문재원 기자

1967~1968년 브루스 커밍스는 서울에서 평화봉사단(US Peace Corps)의 일원으로 근무했다. 한국에 대한 그의 첫인상은 성매매였다. 숙소에서도 일터에서도 그를 쫓아다니며 “한국 여자를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한국 남성의 끈질긴 성 구매 권유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국 여성을 외국 남성과의 관계에서 활용하려는 한국 남성 문화는 한반도 정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특히 한국 현대사에서 익숙한 풍경이다. “남성은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규범도 성평등에 어긋나지만, 이마저도 실제로는 실현되지 않는 이데올로기다. 한국 남성은 여성을 보호하지 않거나 보호할 수 없었다. 당대에도 빈발하는 다양하고 심각한 젠더폭력은 ‘남성이 여성을 보호한다’는 통념의 적나라한 반례다. 특히 미 군정시기 그리고 이후 한국전쟁을 계기로 성립된 한·미 동맹은 한국 여성과 외세(주한미군) 간의 성적 거래에 의해 유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랫]‘미군 위안부’ 그 때는 애국이고, 지금은 수치인가

1988년, 문학평론가 정현기는 미 군정기의 한국 사회에 대해 이렇게 썼다. “첫째,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당장 시급한 주택난과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세력은 미군이다. 둘째, 미군과 쉽게 선을 댈 수 있는 방법은 미군이 원하는, 미군이 필요로 하는 한국의 젊은 여자다. 셋째, 젊은 여자란 필연코 어느 한국인 가족의 딸이고 누나이고 여동생, 이웃일 수밖에 없는데 이런 관계로 매인 젊은 여성이 외국인 병사(혹은 외국인 문관)와 성관계를 갖는 것을 용인한다는 것은 한국인과 같은 단일 민족으로서의 민족적 자기 동일성이 뿌리째 훼손된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고 더더구나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입장에서 그런 풍경이 만연한다는 현실은 이중 삼중으로 한국인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위 글은 어쩔 수 없는 현실 같지만, 그렇지 않다. 외세에 의해 한국 여성이 겪는 폭력과 성적 착취는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다. 흔히 강대국은 ‘남성’으로, 약소국은 ‘여성’으로 재현되지만 이 역시 통념일 뿐이다. 캐서린 문의 <동맹 속의 섹스>에 의하면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관계는 성별적 의미를 갖지만, 그것이 약소국 여성에 대한 강대국 남성의 성폭력과 성매매가 필연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약소국 내부의 성별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남성 사회에서 여성의 몸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 주둔하는 미군 남성이 주로 구매하는 것은 이탈리아 여성의 성(sexuality)이 아니라 가죽 가방이나 의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는 미군은 그 누구도 사우디 여성과 접촉할 수 없다. 이슬람교의 영향도 있겠지만, 어쨌든 사우디 정부는 데이트든 결혼이든 성매매든 자국 여성과 미군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 자국 여성을 ‘보호한다’.

이에 반해 우리 역사에서는 여성이 국가 간 관계의 희생양이 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는 여성을 중국에 공녀(貢女)로 보내기도 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여성들은 ‘환향녀(還鄕女)’라 불렸으며, 이 말은 오늘날 ‘화냥년’의 어원으로 흔히 설명돼왔다. 남성 문화는 나라의 필요(?)에 의해 여성들을 물건처럼 활용했다. 국가의 변명대로 ‘어쩔 수 없이’ 여성의 몸을 필요로 했다면, 최소한 그들을 존중하거나 미안해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들은 모욕과 멸시 속에 숨어 살았다.

1971년 6월, 용산 미군기지 근처 유흥가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기지촌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외화를 벌어들이는 민간 외교관”이라고 칭송했고 동시에 억압했다. 성병 검사를 빌미로 ‘기지촌 정화 사업’을 벌이며, 기지촌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공식적으로 관리했다. 1970년대는 이전의 미 군정기와 달리 살 곳과 먹을거리 사정이 나았던 시기다. 그런데도 기지촌 성 산업을 육성한 한국 정부의 정책은 ‘약소국의 비애’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일제 식민지 시기 ‘일본군 위안부’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는 일본 제국주의의 조직적 전쟁 전략 중 하나였지만, 이에 협력한 한국 남성도 많았다.

[플랫]한국 정부 책임 인정받은 기지촌 ‘위안부’ 피해 여성들…미군 상대 소송 시작

사실 여성의 성을 매개로 한 남성들 간의 거래는 민족 문제나 과거사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남성 연대 문화의 중요한 작동 기제다. 내가 아는 가정폭력 가해 남성은 친구에게 도박 빚을 지자, 그 빚을 아내가 친구와 ‘잠자리를 갖게 함으로써’ 갚으려고 했다. 반면 여성 문화에서 남성의 몸을 물건으로 거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여성의 성을 상대방 남성에게 제공하는 것은 돈이나 과일, 정육 등의 뇌물과 다르다. 이때 여성은 시민/사람이 아니라 여성의 몸 자체가 물건이 되어 화폐 가치를 갖게 된다. 당연히 여성의 외모, 나이 등이 ‘품질’로 취급되고, 이는 몸에 등급이 매겨지는 노예시장의 작동 원리와 같다.

대한축구협회의 성 접대는 관행?

축구협회의 각종 부패는 한국 축구 전력의 근본적 원인이다. 이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 지난 8월6일 JTBC 뉴스의 단독 보도에 의하면, 축협은 ‘최소한’ 두 차례, 즉 2012 런던 올림픽 최종 예선전과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전에서 외국인 심판을 상대로 성 접대를 했다. 이는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 적발되었지만,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와중에서 검찰은 축협의 성 접대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종결해 공론화 및 형사 처벌을 하지 않았다. JTBC가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도한 것이다.

2012년 감사원도 이를 적발했으나 ‘국격 실추’를 이유로 감사에 착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의 여성에 대한 태도가 드러난다. 강제 동원이든, 자원이든 성 접대에 개입된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국격(한국 남성)만이 문제가 된다. “나라 망신” 여론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이런 문제가 빈발하는 한국 사회 내부에 대한 비판은 없고 국제사회에 ‘알려지면’ 망신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일련의 ‘성 접대 시리즈’에 대해 축협은 15년 전에는 그런 일이 “관행”이었다고 해명하고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관행이면 잘못이 아닌가? 철저한 진상 규명과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다. 미 군정기와 1970년대 한국 사회의 빈곤 ‘때문에’ 여성들이 가족 부양을 위해 미군에게 성을 제공했든, 지금처럼 한국이 잘살게 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자발성’을 가진 여성들이 스포츠 경기에서 이기기 위한 축구 지도자들의 애국심(?)에 의해 개입되었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가 국가 외부와의 관계에서 자국 여성의 성을 활용하는 현실과 사고방식이 문제다. 그리고 여성의 성을 활용하면서도 정작 당사자 여성을 멸시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가부장제 사회의 성 문화에서 남성과 여성에 대해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성의 이중 기준(double standard)을 넘어서는 문제다. 남성 문화에서 여성의 몸은 출산이나 가사 노동과 같은 자국 남성을 위한 성역할 도구이거나 외국 남성과 벌이는 협상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자원으로 기능한다. 한국의 여성과 남성은 같은 국민이 아니다. 남성이 국민이라면, 비(非)국민 여성은 국민인 남성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카드다.

[플랫]지극히 성별적인, 한국 남성의 성구매 문화

이러한 문화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 남성은 ‘구조적 가해자’가 된다. 축구협회의 성 접대를 국내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로 사유하지 않고, “(남성) 국가의 망신”으로 보는 관점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골프 접대는 덜 창피하고 국가가 자국 여성의 성을 활용하는 것은 더 창피한 일인가? 여성의 선택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가 언제든 여성의 몸을 동원할 수 있는 문화에서는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일상에서의 젠더폭력 구조와 연관된다.

2022년, 한국의 여성운동은 8년3개월간에 걸친 투쟁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기지촌 성 산업을 국가폭력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이는 한국 사회가 기지촌 성 산업 종사자를 빈곤·젠더·지역 등으로 인한 사회구조의 피해자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축구협회가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을 때 참조해야 할 중요한 판례다.

▼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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