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과 R&B로 되살린 90년대 뉴욕 풍경

구정근 기자(koo.junggeun@mk.co.kr) 2026. 8. 1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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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세대에 걸쳐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어우러진 도시. 재즈부터 힙합까지 새로운 예술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 뉴욕은 1990년대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종 갈등이 여전히 도시를 갈라놓던 시기, 역설적으로 거리에서는 힙합과 리듬앤드블루스(R&B)가 절정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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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헬스키친' 한국 초연
팝스타 얼리샤 키스 명곡들로
17세 소녀 성장기 생생히 그려
흑인 음악의 강렬한 사운드와
역동적 군무로 몰입감 극대화
뮤지컬 '헬스키친'의 배우들이 1990년대 맨해튼의 활기를 담은 오프닝 넘버 '더 가스펠'을 선보이고 있다. 에스앤코

수 세대에 걸쳐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어우러진 도시. 재즈부터 힙합까지 새로운 예술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 지금도 어딘가에서 무언가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기대와 설렘을 안기는 도시. 뉴욕은 1990년대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종 갈등이 여전히 도시를 갈라놓던 시기, 역설적으로 거리에서는 힙합과 리듬앤드블루스(R&B)가 절정을 맞았다.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와 우탱 클랜, 메리 제이 블라이지가 뉴욕의 사운드를 만들던 시절이다. 뮤지컬 '헬스키친'은 그 시기 뉴욕이 품었던 에너지를 가장 생생하게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헬스키친'은 그래미 17관왕 싱어송라이터 얼리샤 키스의 삶과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2024년 브로드웨이 개막 이후 토니어워즈 13개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 2025년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뮤지컬 시어터 앨범상 수상 등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이번 한국 공연은 브로드웨이 개막 약 2년 만에 성사된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다. 수록곡들의 원작자이자 뮤지컬 프로듀서인 키스는 한국 캐스팅과 보컬 디렉팅에 직접 관여했다.

작품은 키스가 실제 어린 시절을 보낸 1990년대 맨해튼 헬스키친 지역을 배경으로, 엄격한 싱글맘 저지의 보호 아래 답답함을 느끼던 17세 소녀 앨리가 피아노와 음악을 만나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성장담이다. 앨리가 처음 피아노를 접하고 설레는 사랑에 빠지며 예술가로 성장하는 들뜸이 1부를 채운다면, 2부는 피아노를 가르쳐준 미스 라이자 제인의 죽음과 연인 넉과의 이별, 아버지의 빈자리를 마주하는 상실의 시간을 담는다. 천재 아티스트의 영웅담이 아니라 보통의 소녀가 세상과 부딪히며 제자리를 찾아내는 이야기다. 무대를 이끄는 건 흑인음악이다. 정통 뮤지컬 문법의 넘버 대신 R&B와 힙합, 가스펠, 소울이 뒤섞인 사운드가 극을 끌고 간다. 1부의 문을 여는 넘버 'The Gospel'은 강렬한 비트와 라이브 드럼 사운드로 당시 헬스키친 뒷골목 예술가들의 자유와 창작 열기를 전한다.

댄스 앙상블과 노래 앙상블이 분리 운영될 만큼 춤의 비중도 크다. 전문 댄서들이 선보이는 힙합·재즈 등 흑인음악 기반의 군무가 작품의 분위기를 한층 더 뜨겁게 만든다.

히트곡을 그대로 얹은 주크박스가 아니라 극의 맥락에 맞게 곡을 재해석했다. 'Girl on Fire' 'If I Ain't Got You' 등 히트곡뿐 아니라 'Kaleidoscope'처럼 뮤지컬로 처음 공개된 곡도 포함됐다. 완성도 높은 가사 번안 덕에 익숙한 노래도 거북함 없이 한글로 전달된다.

무대 디자인은 화려한 대형 세트 없이 뉴욕의 상징인 검은 철제 화재대피 계단을 효과적으로 배치했다. 예술가들의 아파트를 표현하듯 각 층에 라이브 연주자들이 나뉘어 연주하도록 한 연출도 인상적이다. FUBU와 타미 힐피거 진, 팀버랜드 부츠 등 의상 역시 90년대 뉴욕의 공기를 그대로 살렸다.

주인공 앨리 역의 김수하는 난도 높은 곡들을 황홀한 음색으로 완벽하게 소화한다. 'Kaleidoscope'에서는 시원하게 뻗는 고음을, 'The River'에서는 나지막이 읊조리듯 전달력 높은 저음을 들려주며 넓은 음역대를 오간다. '미스 사이공' '하데스타운' '렌트' 등에서 다양한 역할을 거쳐온 배우가 이번 극에서는 힙합의 태도와 걸음걸이, 자칫 어색할 수 있는 미국식 제스처까지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첫사랑의 도취와 상실, 이별의 아픔 등 성장 과정의 감정선 연기도 섬세하다. 저지 역 최현선, 미스 라이자 제인 역 정영주 등 베테랑 배우들은 극의 중심을 단단히 지탱하고, 앨리의 아빠 데이비스 역을 맡은 케이윌은 폭넓은 음역대와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소울풀한 넘버를 들려주며 발군의 노래 실력을 입증한다. 공연은 11월 8일까지 GS아트센터.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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