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은행 현금 인출 ‘사상 최대 규모’···전쟁 격화로 국민 불안 고조

박채연 기자 2026. 8. 1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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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러시아 중앙은행(러시아 연방 중앙은행) 본부 앞을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최근 우크라이나의 대러시아 무인기(드론) 공격이 격화되고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러시아인들이 자국 은행에서 대규모로 현금을 인출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전쟁 자금 마련을 위해 예금을 국유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면서 사상 최대 수준의 현금 유출이 나타나고 있단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8일(현지시간) 이달 첫 2주 동안 약 34억 달러(2864억 루블)가 인출됐으며, 지난달에는 73억 달러, 6월엔 45억 달러가 빠져나갔다고 러시아 중앙은행 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올해 인출된 금액은 전쟁이 발발한 첫해인 2022년에 인출된 247억 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러시아 최대 소매 금융기관인 스베르방크의 고위 임원 타라스 스크보르초프는 올해 총 인출액이 2022년 총 인출액의 두 배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자본 통제와 금리 인상을 통해 예금 유출을 막았다.

전쟁 격화로 은행에 돈을 맡겨둬도 찾지 못할 것이란 공포가 확산하면서 대규모 자금 인출 사태가 벌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주요 에너지·유통 인프라를 집중 공격했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 최대 이커머스 기업인 와일드베리스 물류창고도 타격을 입으면서 일반 시민들의 전쟁 체감도가 더욱 높아졌다.

러시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도 더욱 깊어진 모양새다. 알렉산드라 프로코펜코 전 러시아 중앙은행 고문은 “사람들이 러시아 은행 시스템이나 러시아 금융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 모든 것은 예금 국유화 등 정부가 은행 시스템에 어떤 조처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결과”라고 말했다.

기업들도 자산 압류 가능성을 의식해 자금을 해외로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중앙은행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러시아에서 해외로 송금된 금액은 총 94억 달러가 넘었다. 러시아 억만장자의 한 측근은 WP에 “정부가 현금이 필요하면 푸틴은 자산을 싹쓸이할 것”이라며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러시아 억만장자들이 소유한 기업들은 이미 국유화 정책의 대상이 됐고 지난해에만 이들로부터 515억 달러 상당이 국가에 몰수됐다.

이러한 대규모 자금 인출은 금융권의 유동성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군수품 생산 증대를 위해 대출을 크게 늘린 탓에 부실채권이 급증한 상황에서, 예금 인출 사태까지 겹치며 금융 부문이 더욱 경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 러시아 중앙은행은 연료난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금리를 소폭 인하하는 데 그쳤다. 결국 유동성 위기를 맞은 은행들이 국채를 매입할 현금을 마련할 수 없어서, 러시아 재무부는 지난달 예정됐던 채권 발행마저 취소했다.

러시아 정치권에서도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스베르방크의 게르만 그레프 CEO는 지난 6월 모두가 전쟁이 최대한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고 공개 발언했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이달 초 러시아 타스통신에 “평화로운 삶을 꾸릴만한 경제적 상황이 마련되지 않으면 세금도, 국민 소득도 없고 정치 상황도 완전히 달라진다”고 했다.

최근 안드레이 클레파치 러시아 대외경제개발은행(VEB) 수석 경제학자가 해임된 사건은 러시아 정부의 재정 압박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는 지난 5월 연설에서 “(러시아 경제가) 중국과 미국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우크라이나에도 지고 있다”고 말했다가 최근 해임됐다.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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