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사진가 김호웅의 문섬 이야기

이준헌 기자 2026. 8. 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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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고리갯민숭달팽이. 사진가 김호웅 제공

누군가에게는 풍경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여행지인 바다가 김호웅 사진가에게는 조금 다른 곳인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바다는 오래도록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생의 현장이면서, 한때 멈춰버렸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한 곳이다.

김호웅 사진가는 30년 넘는 시간 동안 사진기자로 세상의 수많은 순간을 기록했다. 청와대와 국회를 비롯한 역사의 현장에서 사람과 사건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와 함께 또 다른 30년 동안은 무거운 장비를 짊어진 채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그 긴 시간 끝에 그가 이번에는 제주 문섬의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바다가 좋은 사람 김호웅의 문섬이야기. 사진가 김호웅 제공

처음 사진을 보면 먼저 색이 눈에 들어온다. 푸른 물속에서 피어난 산호와 작은 생명들, 그 사이를 비집고 내려오는 빛. 화려하면서도 이상할 만큼 고요하다. 같은 곳을 찍어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다르고 낮과 밤이 다르다. 그는 그 변화를 몇 번의 사계절에 걸쳐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진을 조금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색보다 먼저 다가오는 것이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이다.

바닷속에서는 태어나고, 자라고, 먹고 먹히고, 어느 순간 사라진다. 화려한 산호 옆에서도 죽음은 일어나고, 어둠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움직인다. 삶과 죽음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한 공간에 머문다. 문섬을 오랫동안 바라본 김호웅 사진가 역시 그곳에서 그것을 보았던 것 같다.

전시 시작일인 19일 김호웅 사진가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책에 서명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그에게는 쉽게 입에 올리기 어려운 두 번의 이별이 있었다.

아내와 큰딸을 먼저 보냈다.

그는 책의 첫 머리에 그 뒤의 시간을 두고 “시간은 흐르지만 삶은 멈췄다”고 썼다. 숨은 쉬고 있지만 살아가는 이유를 잃었던 때였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다시 바다로 향했고, 제주 문섬의 물속으로 들어갔다.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자신의 숨소리만 들리는 곳에서 마음속에 쌓여 있던 절망도 조금씩 가라앉는 듯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사진들을 단순히 ‘치유의 사진’이라고 부르기는 망설여진다.

어떤 상실은 치유라는 한 단어로 정리되지 않을 테니까.

대신 이 사진들은 한 사람이 슬픔을 지닌 채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에 더 가깝다. 문섬의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먼저 간 사람들의 흔적과 사랑을 발견하고, 다시 카메라를 들고, 한 번 더 셔터를 누르는 일.

1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를 찾은 시민들이 사진가 김호웅의 전시 ‘문섬이야기’를 관람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김호웅 사진가는 사진을 찍는 일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붙잡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기자에게 셔터를 누르는 일은 너무나 익숙하다. 현장에 도착하고, 상황을 읽고, 한순간을 골라 기록한다.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에게 카메라는 어쩌면 눈이나 손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익숙한 카메라가 세상을 기록하는 도구에서 자기 자신을 다시 세상에 이어주는 도구가 된 듯하다.

그래서 《문섬 이야기》의 사진들이 더 마음에 남는다.

아름다운 수중사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빛과 색, 그리고 수십 년 수중촬영을 해온 사진가의 숙련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조금 더 깊은 곳에는 한 사람이 견뎌낸 시간이 있다. 그에게 사진 한 장 한 장은 “다시 살아낸 하루하루의 증거”였다.

수많은 비극과 충돌과 죽음을 카메라로 기록해온 사진가가 자신의 가장 깊은 슬픔을 지나 다시 오래 바라본 것은, 문섬 아래에서 쉼 없이 살아 움직이는 작은 생명들이었다.

그곳에서 김호웅 사진가는 다시 빛을 보고, 생명을 보고,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 시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1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를 찾은 시민들이 사진가 김호웅의 전시 ‘문섬이야기’를 관람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문섬 이야기》를 보고 나오며 꼭 거창한 위로나 깨달음을 얻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잠시 멈춰 서서 푸른 물속을 들여다보면 된다.

흔들리는 산호 사이에서 작은 생명 하나가 움직이고, 빛 한 줄기가 깊은 곳까지 내려간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도 그런 일인지 모르겠다.

아주 천천히,

다시 움직이는 것.

김호웅 사진가의 바다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전시는 8월 19부터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02-722-6635)에서 열린다. 그의 책 “바다가 좋은 사람 김호웅의 문섬이야기” 역시 전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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