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바다로 갔지만, 같은 해는 한 번도 뜨지 않았다… 빛을 기다린 화가와 바다를 건너온 감독의 ‘제주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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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대포 앞바다에서 허윤희는 해가 뜨는 쪽을 보고 그림을 그립니다.
허윤희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촬영하면서 한 번 빛을 받은 필름을 끝난 시간으로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수평선 위로 올라오는 해는 관광 홍보물부터 휴대전화 속 사진까지 제주를 상징하는 가장 익숙한 풍경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 사람은 빛이 오는 것을 기다렸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너머로 항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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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대포 앞바다 사계절 16㎜에 담아… NYFF가 주목한 ‘예술가의 협업’


제주 서귀포 대포 앞바다에서 허윤희는 해가 뜨는 쪽을 보고 그림을 그립니다.
수평선이 밝아지기 전 캔버스를 펼치고, 빛이 바다에 닿기 시작하면 물감을 올립니다.
그리는 사이에도 해는 움직이고 바다는 조금 전과 다른 색을 받아냅니다. 다음 날이면 다시 그곳으로 갑니다.
같은 자리이지만 어제의 그림은 오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구름이 달라지고 바람이 바뀝니다.
해가 떠오르는 자리도 계절을 따라 움직이고, 수면에 번지는 빛의 결도 매일 조금씩 달라집니다.
허윤희는 그렇게 이어온 작업에 ‘해돋이 일기’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풍경화라고 부르기에는 생활이 너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 바다에 16㎜ 카메라가 놓였습니다. 조나단 승준 리(Jonathan Seungjoon Lee) 감독입니다.
허윤희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촬영하면서 한 번 빛을 받은 필름을 끝난 시간으로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이미 노출된 필름을 다시 카메라에 걸었고, 다른 날의 해가 그 위에 들어왔습니다.
가을과 겨울, 봄과 여름에 각각 100피트짜리 16㎜ 필름 한 롤을 썼습니다. 한 롤에는 일곱 차례의 일출 촬영이 다중노출됐습니다.
하루씩 빛을 그리는 화가와 여러 날의 빛을 같은 필름에 머금게 하는 감독이 만났습니다. 그렇게 보낸 1년이 12분이 됐습니다.
‘빛을 향한 수행(Practice Towards Light)’.
제주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가 제64회 뉴욕영화제(New York Film Festival·NYFF)로 갑니다.
오는 9월 25일부터 10월 12일까지 열리는 영화제에서 ‘Currents Program 3: Surface Noise’에 초청돼 뉴욕 프리미어로 상영됩니다.

■ 검은 목탄을 오래 쥔 화가에게 제주가 가져온 색
허윤희는 부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서양화과와 독일 브레멘예술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30여 년 동안 회화와 드로잉, 조각을 오가며 인간 존재와 자연, 생성과 소멸을 작업해왔습니다.
오랫동안 손에 익었던 재료는 목탄이었습니다. 나무가 불을 통과한 뒤 남긴 검은 물질로 그리고, 문지르고, 다시 지웠습니다.
지운다고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손이 지나간 자리와 검은 가루, 희미해진 선이 남았습니다.
허윤희에게 그리기와 지우기는 완성과 폐기의 순서가 아니라 한 화면에 시간이 스며드는 과정이었습니다.
독일에서 보낸 시간은 인간 존재와 삶의 유한성을 향한 질문을 깊게 했고, 이후 시선은 자연과 생명의 순환으로 넓어졌습니다.
여러 차례 제주에 머물다 2022년 정착하면서 대포 앞바다의 아침도 생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제25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 ‘허윤희: 가득찬 빔(Beams of Emptiness)’에는 30여 년의 궤적을 아우르는 작품 240여 점이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해돋이 일기’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검은 목탄으로 존재의 흔적을 더듬어온 화폭에 제주의 색이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한 점만 보면 한 날의 바다입니다. 여러 점을 따라가면 다른 것이 보입니다.
시간입니다.

■ 매일 같은 곳에 갔지만,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해돋이 일기’의 수평선은 크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림 사이를 따라가면 해의 자리가 다르고 바다의 색도 같지 않습니다.
어떤 날에는 빛이 수면 깊숙이 가라앉고, 어떤 날에는 바다 전체가 밝아집니다. 수평선이 또렷한 아침이 있는가 하면 하늘과 물의 경계가 색 안으로 스며드는 날도 있습니다.
한 번 찾아갔다면 모두 ‘제주의 일출’이라고 모아 불렀을 장면입니다. 계속 시선을 두었기에 그 안에 원래 존재하던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어제 그림을 그린 사람은 오늘 다시 같은 곳에 앉습니다. 그 사이 하루가 흐릅니다.
오늘의 눈에는 어제 바라본 바다가 남아 있고, 손에는 그동안 그려온 시간이 배어 있습니다.
그림이 늘어날수록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해의 모양보다 하루와 하루 사이의 미세한 어긋남입니다. 계절은 달력에서 넘어가기 전에 그림 사이에서 먼저 움직입니다.
같은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같은 것을 다시 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곳에 있어야 보이는 다른 것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 한 사람은 바다 앞에 머물렀고, 다른 한 사람은 바다를 건넜다
이승준에게도 제주는 촬영 장소라는 이름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2000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영상예술가로, 가족과 디아스포라, 생태를 작업의 주요 축으로 삼아왔습니다. 수작업 16㎜ 필름과 디지털 이미지를 오가며 가족의 기억과 이동, 장소가 개인에게 남기는 흔적을 들여다봤습니다.
제주에서는 강정과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허윤희가 제주 남쪽 바다 앞에서 수평선을 바라봤다면 이승준은 그 수평선 너머로 움직였습니다. 한 사람에게 바다는 매일 돌아오는 자리였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건너가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대포에서 빛을 기다려온 시간과 강정에서 바다를 건너온 시간이 제주 남쪽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어졌습니다. ‘빛을 향한 수행’은 그 두 궤적이 만난 자리에서 시작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같은 풍경을 바라봤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시간을 다루는 각자의 방법이 서로의 작업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 화가를 바라보던 카메라가, 화가의 방법을 닮았다
허윤희가 그림을 만드는 방식은 카메라의 작동 방식으로도 이어집니다. 허윤희는 같은 장소로 돌아가고, 이승준은 같은 필름으로 돌아갑니다.
화가는 새로운 캔버스에 오늘의 빛을 올리고, 감독은 어제의 빛을 품은 감광면에 오늘의 빛을 더합니다.
한 롤에 일곱 차례.
첫 번째 날의 수평선 위로 다른 날의 파도가 들어오고, 그 사이로 또 다른 날의 해가 떠오릅니다. 허윤희의 몸과 캔버스, 붓도 서로 다른 시간 사이에서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빛이 겹칠수록 필름은 팔레트로 변합니다. 윤곽보다 색의 농도가 먼저 감돕니다.
바다인지 하늘인지, 어느 날의 해인지 구분하려던 눈도 어느 순간 그 일을 멈춥니다. 대신 필름의 입자와 번지는 색, 빛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갑니다.
카메라는 어느새 그리는 행위를 닮아갑니다.
회화를 가능하게 했던 시간이 영화의 재료 안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이어집니다.
■ 146개의 아침은 펼쳐졌고, 일곱 아침은 한 화면으로 들어갔다
대구미술관에서 ‘해돋이 일기’는 벽을 따라 놓였습니다. 한 아침이 하나의 화면을 가졌고, 관객은 몸을 움직여 다음 그림으로 갔습니다.
시간이 공간을 얻었습니다.
‘빛을 향한 수행’에서는 여러 날이 한 화면 안으로 들어갑니다. 회화에서 저마다 화면을 가졌던 하루들이 영화에서는 서로의 안쪽으로 포개집니다.
미술관의 시간은 옆으로 펼쳐지고, 필름의 시간은 안으로 깊어집니다.
뉴욕영화제는 바다와 일출, 물감과 셀룰로이드, 선과 색이 중첩되며 라일락과 금빛, 아쿠아마린이 뒤섞이는 화면을 작품의 특징으로 소개했습니다.
날들이 겹쳐진다고 앞선 시간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먼저 들어온 빛은 다음 빛의 바탕이 되고, 그 위에 다시 다른 시간이 얹힙니다.
어느 것이 과거이고 어느 것이 현재인지 가르는 일도 무의미해집니다.
모두 한때는 현재였습니다.
12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들어앉습니다.

■ 뉴욕영화제가 굳이 ‘화가 허윤희’를 적은 이유
이번 초청에서 지나치기 아까운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뉴욕영화제는 올해 Currents 단편 프로그램에서 두드러진 흐름 가운데 하나로 협업(collaboration)을 짚었습니다. 공동 감독 사이의 작업, 서로 다른 분야를 넘나드는 예술가들의 만남, 영화 제작자와 피사체 사이에서 이뤄진 협업을 거론했습니다.
그 사례에 이들의 이름이 들어갔습니다.
‘Jonathan Seungjoon Lee and painter Huh Yun-hee.’
조나단 승준 리와 ‘화가 허윤희’입니다.
공식 프로그램에서 감독은 조나단 승준 리로 표기됩니다.
하지만 Currents 전체를 설명하는 글에서는 허윤희를 ‘painter Huh Yun-hee’, 즉 ‘화가 허윤희’로 감독과 나란히 호명했습니다.
그 한 단어, ‘painter’가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이 맺은 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누군가 그리고 누군가 찍는 데서 끝났다면 회화와 영화는 나란히 흘렀겠지만, 여기서는 한 사람의 작업 방식이 다른 사람의 매체 안으로 이동합니다.
허윤희의 반복은 촬영의 구조가 되고, 이승준의 다중노출은 물감을 포개듯 색과 시간을 겹칩니다. 각자의 언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서로 다르기에 상대의 작업 안으로 들어갈 여백이 생깁니다. 그 사이에서 어느 한 사람만으로는 만들 수 없었던 이미지가 태어납니다.
협업은 크레디트에 적힌 이름에서 나아가 작품의 형식이 됐습니다.
■ 홍상수의 장편과 허윤희의 12분, 같은 뉴욕의 다른 자리
뉴욕영화제는 1963년 시작돼 올해 64회를 맞았습니다. 상을 놓고 순위를 가르는 경쟁영화제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프로그래머들이 그해 세계영화 가운데 무엇을 뉴욕의 관객에게 보여줄 것인지 고르는 큐레이션의 무게가 큰 영화제입니다.
올해 한국영화의 존재감도 두드러집니다.
메인 프로그램인 Main Slate에는 홍상수 감독의 신작 두 편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홍상수는 NYFF가 여러 해에 걸쳐 꾸준히 소개해온 한국 감독입니다.
같은 영화제의 다른 자리에는 제주에서 만들어진 12분이 있습니다. ‘빛을 향한 수행’이 초청된 Currents입니다.
홍상수의 장편과 허윤희·이승준의 12분을 견줄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두 자리는 뉴욕영화제가 무엇을 동시대 영화로 받아들이는지 그 폭을 보여줍니다.
이미 자신만의 영화 언어를 구축한 작가의 장편이 한쪽에 있고, 회화와 16㎜ 필름 사이에서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방식 자체를 다시 만지는 12분이 다른 쪽에 있습니다.
Currents는 동시대 영화의 모험적인 작업을 국제적으로 조망하며 영화 형식의 가능성을 넓혀온 프로그램입니다.
제주의 해돋이가 아름답다는 사실은 새롭지 않습니다. 이인성미술상을 받은 화가가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의 자리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너무 익숙한 풍경을 어떻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간으로 바꿨느냐입니다.
뉴욕에 닿은 것은 희귀한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을 다시 보는 방식입니다.

■ 모든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시대, 이들은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16㎜라는 선택은 지금 더 묘하게 다가옵니다.
디지털 영상이라면 서로 다른 날에 촬영한 화면을 편집 단계에서 겹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촬영하지 않은 장면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해가 실제로 떠야 합니다. 빛이 렌즈를 지나 필름의 감광면에 닿아야 이미지가 생깁니다.
이미 한 번 노출된 필름을 다시 카메라에 넣으면 다음 아침이 어떻게 포개질지도 모두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온 빛의 흔적을 가진 물질이 다음 빛을 받아들입니다.
허윤희도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 같은 바다로 간다고 원하는 하늘이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구름을 옮길 수도, 바다의 색을 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날 도착한 빛 앞에서 시작합니다.
화가는 기다렸고 필름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16㎜는 과거의 기술을 향한 향수보다 하나의 태도로 읽힙니다.
무엇이든 빠르게 만들고 고칠 수 있는 시대에 두 사람은 결과를 미리 확정할 수 없는 재료를 들고 사계절 동안 자연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빛을 향한 수행’이 배치된 ‘Surface Noise’에도 필름이라는 물질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작품들이 함께 놓였습니다.
16㎜ 필름 리더에 직접 패턴을 입히고, 빛과 그림자가 뒤섞인 풍경을 만들고, 35㎜ 촬영부터 광학 사운드트랙까지 포토케미컬 공정으로 완성한 작품들이 한 프로그램에서 만납니다.
오래된 영화의 재료가 동시대 이미지의 질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에 제주에서 온 필름 네 롤이 놓였습니다.
■ 제주를 보여주는 대신, 제주에서 시간을 보냈다
제주의 일출은 이미 수없이 이미지가 됐습니다. 수평선 위로 올라오는 해는 관광 홍보물부터 휴대전화 속 사진까지 제주를 상징하는 가장 익숙한 풍경 가운데 하나입니다.
익숙해진 풍경을 다시 보게 만드는 일은,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허윤희와 이승준은 더 희귀한 장소를 찾아 나서는 대신 한 장소와의 관계를 오래 가져갔습니다.
허윤희는 대포로 돌아왔고, 이승준은 강정에서 바다를 건너고 다시 제주로 돌아왔습니다.
잠시 머문 사람에게 바다는 하나의 장면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오래 지낸 사람에게는 계속 달라지는 시간입니다.
해가 뜨는 위치가 움직이고 빛의 각도가 바뀝니다. 바람과 공기의 밀도, 수면이 받아내는 색도 계절을 따라 달라집니다.
새로운 풍경을 찾아 이동하지 않고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며 차이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제주는 배경으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시간을 만들어가는 조건이 됩니다.
한 사람에게 바다는 매일 돌아갈 수평선이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수평선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빛이 오는 것을 기다렸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너머로 항해했습니다.
영화에서는 그 두 시간이 같은 필름을 통과했습니다.
제주는 그렇게 풍경에서 시간으로 옮겨갔습니다. 오래 머문 날들이 필름의 색과 겹, 이미지의 모양을 바꿨습니다.

■ 현실에는 없었지만, 그 안의 모든 빛은 현실에 있었다
‘빛을 향한 수행’은 국내 독립·실험영화의 무대를 거쳐 관객을 만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뉴욕입니다.
12분의 영화에 16㎜ 필름 네 롤이 쓰였습니다. 사계절마다 한 롤, 한 롤에는 일곱 차례의 일출이 들어갔습니다.
스물여덟 차례의 아침이 필름을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그것들을 다시 스물여덟 개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어느 날의 파도 위로 다른 날의 수평선이 지나갑니다.
먼저 들어온 빛은 다음 빛 때문에 없어지지 않고, 나중에 온 빛도 앞선 시간을 밀어내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날의 현재가 한 화면을 나눠 갖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제주에서 실제 존재했던 어느 하루와도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허구도 아닙니다.
허윤희가 바라본 빛이고, 렌즈를 지나 실제 필름에 닿은 빛입니다.
여기에 ‘빛을 향한 수행’의 아름다운 역설이 있습니다. 현실에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아침인데, 그 아침을 이루는 모든 빛은 현실에 있었습니다.
허윤희는 하루씩 그렸고, 이승준은 서로 다른 날들이 한 화면에서 만날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뉴욕의 관객이 만나게 될 제주도 그 사이에 있습니다. 한 번 보고 지나간 섬이 아니라, 오래 머물고 다시 돌아온 사람에게 조금씩 다른 모습을 내주는 제주입니다.
같은 해는 한 번도 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에도 바다로 갔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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