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AI+일본 = ‘채권 극장’ 블랙홀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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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가 출렁이는 건 블랙홀 때문이다.
전쟁과 AI라는 근본적이고 혁명적 변화, 거기 더해 혼자 돌던 위험한 바람개비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제가 한데 모여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다.
이유는 일본은행(BOJ)이 금리 인상을 주저하고 있고, 일본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이어가고 있어 일본 경제 자체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즉, 미 국채 수요와 공급이 각각 AI와 전쟁 때문에 압력받는데, 일본이 이 압력을 더 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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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극장 블랙홀
증시가 출렁이는 건 블랙홀 때문이다. 채권시장이라는 블랙홀. 지금 이게 모든 경제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채권시장의 중심인 미 국채, 그중에서도 만기가 가장 긴 30년물 금리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지난 18일(미국 현지 시각) 30년물 금리는 5.3%를 넘어섰다. 2007년 6월 글로벌 금융위기 초입에 기록한 5.44% 이후 19년 만의 최고치다. 장중에는 5.33%까지 오르기도 했다.

국채 금리는 평소에는 다른 경제 지표의 뒤에 있다. 조용하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투자하는 대상이 아닌 데다가, 국가가 자금을 조달하는 안정적 시장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시 경제 상황을 좌우할 이벤트가 존재한다면 다르다. 그 이벤트는 결국은 국채금리, 그것도 미 국채 금리에 응축되어 표현된다.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
전쟁과 AI라는 근본적이고 혁명적 변화, 거기 더해 혼자 돌던 위험한 바람개비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제가 한데 모여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다.
채권 가격이 다른 모든 경제지표를 좌우하는 국면, 말하자면 '채권 극장'이 열린 셈이다.
■왜 문제인가
채권 금리가 급등한다는 것은 그만큼 돈을 빌리는 비용이 비싸진다는 뜻이다. 국채금리가 오르면 주택담보대출, 기업 대출 등 시중 장기 차입 금리도 같이 오른다. 이 구간에 들어서면 가계와 기업 모두 투자와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 블랙홀이 생긴 채권 극장의 주무대는 역시 미국이다.
지금 미국 경제의 문제는 유례없는 '특정 산업' 의존이다. 바로 AI 산업이다. 고용도 안 좋고 물가도 높은데 성장률이 나오는 건 AI 덕분이다. 특히 AI 투자다.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최근 미국 성장률을 사실상 떠받쳐온 축이다. 중간선거 앞둔 트럼프가 믿을 구석은 이것뿐이다.
그래서 금리가 문제다. 시장 금리를 결정하는 북극성, 미 국채금리가 너무 높다. 이에 따라 자금 조달 비용이 점점 비싸지고 있다. 더 뛰면 이 투자 사이클이 꺾일 수 있다는 공포가 한두 달 전부터 시장에 번졌는데, 이번 주 그 상단을 뚫고 있다. 이 때문에 AI 투자가 멈추면 그 여파가 곧바로 경기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핵심은 하나로 모인다. 물가가 구조적으로 높은 수준에 고착됐고, 앞으로도 쉽게 꺾이지 않을 거라는 걱정이다. 특히 장기적 물가수준과 미국 정부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는 '장기채'에 응축되고 있다. 이 우려가 채권시장을 수요와 공급 양쪽에서 동시에 짓누르고 있다.
수요와 공급, 양면에서 살펴보자.
■공급 측: 전쟁의 그림자

먼저 공급 쪽을 보면, 미국 정부가 앞으로 국채를 더 많이 찍어낼 거라는 우려가 평소보다 훨씬 크다. 실제로 지난 13일 미 재무부가 실시한 250억 달러 규모의 30년물 국채 신규 발행 입찰에서 낙찰 금리가 5.22%로, 2001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여기에 지난 7월 미국의 월간 재정적자는 4323억 달러로 2021년 3월 이후 최대치를 찍었고, 미 정부 부채 총액은 이미 40조 달러를 넘어선 상태다. 국채를 계속 더 발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즉, 미국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은 (아래 그래프처럼) 근본적으로 미국 재정적자의 크기와 함께 갈 수밖에 없다. 같은 장기채 중에서도 10년보다 30년 물에 이 우려가 더 많이 반영될 수 밖에 없는데, 그 차이가 지난해부터 본격화했다는 점도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정적 변수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 60일간 휴전에 합의했는데, 이번에 그 기한이 별다른 성과 없이 만료됐다.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국제유가는 곧바로 튀어 올랐다.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유가가 비싸지고, 이는 물가를 직접 자극하는 요인이 된다. 다만 유가는 근본 질병이 표출되는 하나의 증상일 뿐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재정적자다. 전쟁 수행에는 돈이 든다. 단 한 발의 미사일도 공짜로 허공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이 전쟁 관련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계속 빚을 낼 수밖에 없고, 그 빚은 결국 국채 발행 확대로 이어진다. 공급이 계속 늘어나는 구조인 셈이다.
공급이 많아지면? 값어치가 떨어진다. 즉, 금리를 더 높여야 한다.
■수요 측: AI가 국채 수요를 빨아들인다
공급은 느는데 수요는 그만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당장 AI가 그 이유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은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 최근 회사채를 대규모로 찍어내고 있다. 이들은 신용등급이나 자금 조달 안정성 면에서 웬만한 국가 못지않은 '초우량 기업'들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미 국채와 비슷한 안정성을 가지면서 금리 조건은 더 매력적인 빅테크 회사채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셈이다.
결과적으로 원래대로라면 미 국채로 흘러 들어갔을 자금 일부가 AI 회사채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국채 발행량은 느는데 이를 받아줄 매수 수요는 분산되면? 국채 매력은 떨어진다. 그러면 금리는 오른다.
즉, 금리는 수요 압력에 의해서도 오를 수밖에 없다.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장기채 금리 급등 흐름은 미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같은 날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30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올랐고, 독일 30년물 금리는 2011년 이후, 프랑스 30년물 금리는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이걸 전부 '미 국채 수요가 AI 쪽으로 빨려가서 생긴 결과'로 묶어 설명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주요국이 저마다 독자적인 재정 부담과 국채 발행 확대라는 비슷한 문제를 동시에 앓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팬데믹 이후 각국 정부의 지출이 구조적으로 늘어난 상태에서, 고금리·고물가 국면이 길어지자, 재정건전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동시다발적으로 커진 것이다. 즉 미국만 아픈 게 아니라, 주요국 장기채 시장 전반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에 가깝다.
■ 일본 : 혼자 돌던, 이제는 미국을 골치 아프게 하는 바람개비
이 가운데서도 가장 복잡한 사정을 안고 있는 나라, 미국을 더 골치 아프게 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구제 불능의 장기 저물가, 저성장에 시달려왔다. 한때 미국을 위협했던 일본의 국력은 작아지기만 했고, 이제는 한국이나 대만 대비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상태까지 떨어져 버렸다.
다만 금융시장은 그동안 재미를 봐왔다. 일본의 장기 저금리를 이용해 싼 이자로 돈을 빌린 뒤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는 그동안 글로벌 자금시장의 큰 축이었다. 그런데 일본 채권 금리가 오르면서 이 거래를 유지하는 비용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물가가 전 세계적으로 오르는 데다 AI발 자금 경쟁까지 겹치면서, 일본으로 돈이 돌아가려는 힘, 즉 엔 캐리 청산 압력이 세지고 있다.
그동안은 이렇게 돈이 일본으로 돌아갈 경우 엔고가 유발됐다. 동일본 대지진 때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도 그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엔화 가치는 오히려 계속 약세다.
이유는 일본은행(BOJ)이 금리 인상을 주저하고 있고, 일본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이어가고 있어 일본 경제 자체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2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고, 내수 경기도 부진한 상태다. 엔 캐리 청산 압력은 쌓이는데 정작 엔화는 오르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세계의 시각이 변화하려 하고 있다. '그래도 경제가 강한 나라'에서 ' 성장은 미약하고 정부는 감당하지 못할 빚을 자꾸 내는 나라'로 바뀌려 하고 있다. 일본 경제의 체력에 대한 불신이다.
그 결과, 그동안 세계 경제 상황과 유리되어 혼자돌던 바람개비 일본이 위기로 향하는 블랙홀에 힘을 보태는 나라로 바뀌고 있다.
이게 걱정됐는지, 미국이 돕기도 했다. 일본 정부와 공조해 미국은 엔화를 사들이는 외환시장 개입에 나선 상태다. 그런데 엔저는 진정되지 않는다. 설상가상, 개입이 커질수록 일본이 보유한 미 국채도 함께 시장에 풀려 금리 압력을 더한다.
즉, 미 국채 수요와 공급이 각각 AI와 전쟁 때문에 압력받는데, 일본이 이 압력을 더 깊게 만든다. 악순환의 고리가 이렇게 완성된다.
■전쟁+AI+일본= '채권 극장 블랙홀'
장기 고물가가 고착되는 구조적 상황에 세 변수가 더해졌다.
전쟁 장기화와 AI 투자발 자금 경쟁, 그리고 일본 경제의 악화.

이 세 가지 힘이 여러 경로로 동시에 미국 채권 금리를 밀어 올렸고, 그 상승폭이 어느 임계치를 넘어서자, 채권시장이 모든 경제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그럼, 해법은 있을까. 지금으로선 뚜렷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시장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지금 미국이 그런 선택을 할 상황으로 보이지 않는다. 케빈 워시는 지금, 이 순간도 '어떻게 하면 금리를 안 올리고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AI 투자를 자발적으로 줄일 수 있을까? 그것이 AI 군비경쟁에서 퇴출당한다는 의미로 번역되는 한 그럴 가능성은 없다. 강제로 줄여야 하는 순간(즉 글로벌 경제 충격)이 오기 전까지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스스로 경쟁에서 물러날 조짐은 없다.
그러면 전쟁은? 현 상황은 미국이 먼저 물러서야 끝날 것처럼 보인다. 이란은 오히려 자신들이 더 오래 버틸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금리를 올리긴 하겠지만, 큰 폭의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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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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